테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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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빈
테빈퇴임2.png
뿌우 뿌우제22대 길드장
임기 2012년 12월 19일 ~ 2013년 7월 28일
부길드장 키리바시
게임박
전임: 김늅(제21대)
후임: 찌르뢰기(제23대)

뿌우 뿌우의 제25대 길드장
임기 2013년 11월 24일 ~ 2015년 1월 19일
전임: 박수영(제24대)
후임: 쿠레늬(제26대)

뿌우 뿌우의 제18대 부길드장
임기 2012년 11월 15일 ~ 2012년 12월 18일
길드장 김늅
전임: 급선(제17대)
후임: 키리바시(제19대)

별명 좆빈, 쓰레빈, 인동초

일생[편집]

뿌우 가입 전[편집]

테빈은 불타는 성전 말기인 2008년, 사적으로 알고 지내던 와갤러 더러운역관절의 권유로 와우를 시작했다. 다만 테빈의 기대와는 달리 고대 와갤길드가 다 그렇지만극도로 배타적이었던 <막다른 골목> 소속이었던 더러운역관절은 테빈을 받아줄 수 없다며 일절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테빈은 포기하지 않고 무려 1년에 걸친 레벨업[1]을 하여 2009년 가을 마침내 80레벨을 찍었다.

만렙을 찍었지만 뭘 해야할 지 몰랐던 테빈은 아이언포지 다리에서 하루종일 죽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인생을 바꿀 일이 닥쳤다. 용사의 시험장 파티를 구하고자 파티 채널을 주시하던 테빈은 <뿌우> 소속 뉴비 두명이 버스 박휘를 구하는 것을 봤다. 버스 광고를 올리던 자는 바로 영원한 뿌우의 아이돌 매로나였다. 사실 뿌우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당시 와갤 길드의 배타성 때문에 선뜻 말을 걸기가 겁이 났던 테빈은 이를 기회로 삼아 '내가 가입시켜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저 쪽이 나에게 초대를 하게 하자' 라는 마인드를 갖고 당시 20레벨 전후였던 매로나를 아들마냥 80레벨까지 업어키웠다. 매로나는 버스를 받는 동안 계속 테빈한테 가입늘 권유했으나 테빈은 아직 뿌우에 가입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거절했다.

매로나가 만렙을 찍은 이후 그와 가시덤불 골짜기 낚시대회를 훼방놓으러 다니다 다른 뿌우 길드원들을 만났고, 그중 횡령의킹키뮤식이란 뭔가 있어보이는 길드원한테 초대를 받자 테빈은 마침내 자격을 갖췄다 생각하고 뿌우에 가입했다.

뉴비 시절 (2009)[편집]

테빈은 컴퓨터 렉 및 미흡한 장비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뉴비를 돕는 것에서 보람을 느껴 레이드를 등한시하고 버스 등 뉴비 지원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딸쿠기 및 후릉가부릉가 등 미래에 거물급 길드원이 되는 뉴비들을 육성했다. 이렇게 길드 내에서 평판을 쌓아가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그런지 테빈도 버스만 돌아주는 생활에 질리기 시작했고 뭔가 새로운 컨텐츠 탐구를 위해 그가 육성한 뉴비들 및 게임박과 불타는 군단 출신 이주민 공갈과협박 등을 설득해 뿌우콘텐츠연구소를 설립하고 2009년의 남은 기간을 혁명적인 실험을 하며 보냈다.

테빈을 비롯한 콘텐츠 연구원들이 채팅으로 계획만 세우는 걸 떠나 최초로 그들의 연구 결과를 실제로 적용한 건 바로 구루바시 투기장 처형식이었다. 부소장 게임박이 제안한 이 이벤트는 큰 호응을 얻어 뿌우 길드원을 제외한 일반인들까지 참여하게끔 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고 20명의 참가자라는 훌륭한 실적을 남겼다. 당시 조작도 힘들어 일베를 가기 힘들었던 와갤이었음에도 이 글은 정정당당하게 일베에 등극해 다른 와갤 길드와 차별화되는 큰 특징인 독자적인 컨텐츠를 사실상 처음으로 홍보한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테빈은 이후에도 꾸준히 버스를 돌아주어 미래의 콘텐츠 연구원들 육성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죽음의인남캐, 배고픈서리한 등 많은 뉴비들이 테빈의 문화적 혁명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과 함께 2009-2010 뿌우의 상징인 모호크단 콘텐츠를 확립하는 데 성공하여 테빈은 루키 시즌에 뉴비답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떠오르는 샛별과 민주화 운동 (2010)[편집]

테빈은 새해를 맞이하여 더욱 더 콘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구루바시 처형식에서 더 나아가 구루바시 투기장 자체를 뿌우가 자랑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하나의 쇼케이스로 발전시켰고 후릉가부릉가가 게임을 접자 이에 영감을 얻어 여태껏 없었던 장례식 문화 또한 뿌우에 정착시켰다. 불모의 땅으로 한정됐던 모호크단의 활동 영역 또한 매로나와 함께 힐스브래드 농장 매복 콘텐츠를 개발함으로서 동부 왕국으로 확장되었다. 이에 더해 근대 뿌우(2011-2012)에서 다른 콘텐츠의 대체재로 활용되었던 뿌럼버스 탐험대 또한 테빈이 2010년 카라잔 지하와 구 아이언포지 등을 원정대를 이끌고 탐험함으로서 기반을 닦아 놓았다.[2] 이에 더해 새로 영입한 수석 연구원 니밸룽의 도움으로 스랄마 또한 뿌우의 이벤트 장소로 바뀌었다. 테빈이 주도하고 니밸룽이 보조하는 형국으로 아웃랜드 곳곳에서 처치하기 곤란한 몬스터들을 끌고와 스랄마를 초토화시켰다. 당시 뿌우에서 스랄마를 초토화시키는 데 사용했던 몬스터로는 무시무시한 화력의 불의 비를 사용하는 지옥의 사령관[3], 악마 형태로 변신하면 절대 피해를 입지 않는 베레티스[4], 그리고 강하지는 않지만 발견하기 쉽고 한번에 복수의 개체를 활용할 수 있는 지옥절단기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여름에 스톤님의 도움으로 개발한 그롬골 타워 디펜스가 있다.

테빈은 이렇게 게임박이 정립한 이론인 '콘텐츠 2.0'의 포문을 열어 뿌우를 레이드 중심에서 독자 콘텐츠 중심 길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드 등 와우의 기본적인 콘텐츠를 원했던 뉴비들도 있었다.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을 와생의 목표로 삼았던 테빈은 이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당시 얼음왕관 성채 공격대의 아이템 레벨[5] 제한은 뉴비들이 감당하기엔 심각히 높았고, 게다가 현질 등으로 인해 골드 인플레이션이 극심하여 같이 현질을 하지 않고는 골팟에서 아이템을 입수하기가 힘들었다. 테빈은 이런 난관에 봉착한 뉴비들을 위해 주팟을 운영하였다. 기존에 있던 일반적인 파티들의 아이템 레벨 제한을 대폭 낮추어 얼왕 3종 영던 졸업 및 약간의 오닉시아 및 십자군 25인 파밍 정도면 참여할 수 있게 하였고 모든 아이템은 저득주사위 룰을 적용하여 돈이 없는 뉴비들도 질좋은 아이템을 푸짐하게 얻어가 상위 파티에 도전할 수 있게 하였다. 게다가 테빈의 얼왕주팟은 뿌우 길드원들만 데려가지 않고 사실 레이드가려는 뉴비가 없어서[6]일반인 뉴비들도 데려가 서버 내 평판이 굉장히 좋았다. 당시 테빈은 가로나 얼라이언스에서 유쾌하고 인간성 좋고 신규 유저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공장으로 알려졌다. 지금 줄라디언들의 시선으로는 차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2010년 전반기를 성공적으로 마감한 테빈은 그 어디에서도 즐길 수 없는 독자적인 콘텐츠에 생기를 불어넣었음에도 뭔가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 학자들은 이 공허함의 원인을 아마 진실하게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를 얻지 못한 탓이라고 판단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가입하여 함께 콘텐츠 확립에 힘써온 죽음의인남캐를 여름이 채 되기도 전 헬스크림에 철보지를 설립하러 뿌우를 등졌고 긴밀한 관계의 제자였던 후릉가부릉가는 재수 준비를 한다며 첫 장례식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렇게 테빈이 내부적으로 점점 우울해져가기 시작할 때 뿌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키리바시가 혜성같이 등장했다.

키리바시가 첫 숙주를 뿌우로 선정하고 와우갤러리를 사칭하여 어그로를 끌기 시작하자 테빈은 이런 병신이라면 내가 꿈꾸는 이상향을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와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다. 채팅방의 분위기를 개판으로 만드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키리바시가 드디어 동영상 제작에 손을 대자 테빈은 가장 먼저 무보수로 촬영에 임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원승, 보호박휘, 매로나, 인텔리한도둑놈 등이 참여한 뿌우 홍보 영상 촬영이 끝나자 뒤풀이로 구시가지 여관에서 술자리를 가질 때 키리바시 또한 테빈과의 만남이 운명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후 테빈은 키리바시와 자신의 오랜 동료 매로나와 함께 스톰윈드에서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뿌우 홍보 및 콘텐츠 개발 등에 대해 토론했다. 테빈은 키리바시에게 그롬골 타워 디펜스를 소개해주어 그의 마음을 붙잡는 한편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콘텐츠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또한 키리바시가 이끄는 뿌장일치 팀에 가장 먼저 참여했다. 하지만 키리바시와 테빈의 막 싹트려 하는 우정은 곧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다수의 뿌우 길드원들은 키리바시의 진정성을 왜곡하고 그의 존엄성을 모독하였다. 그는 키리바시가 진정 뿌우를 강력한 콘텐츠 풀을 자랑하는 최강의 독창적인 와갤 길드로 만드려는 꿈을 지원하기는 커녕 뿌우와 와갤 전체에서 '분탕질'을 친다는 어이없기 그지없는 허무맹랑한 죄목을 뒤집어 씌워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비록 키리바시가 처음에는 관심을 받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나 테빈과 매로나 등의 길드원들과 우정을 쌓아가면서 그의 대업은 더이상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과 길드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꿈은 공갈과협박과 아사키 등을 위시한 수꼴보수적인 관료들이 키리바시를 내란죄로 기소하면서 정체되었다. 안그래도 키리바시의 부상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김서스는 개인적인 커넥션이 있던 아사키가 키리바시를 처참하게 끝내려고하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를 길드를 해체하려는 역적으로 규정하고 추방하였다.

여기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키리바시는 뉴뿌우를 조직하고 김서스를 위시한 기존 친목종자들의 독재적이고 위압적인 구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항쟁을 시작했다. 테빈은 자신의 동료였던 키리바시가 매서운 공격을 견뎌내고도 자신이 꿈꾸는 풍족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뿌우를 끝내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 이때 테빈의 영혼에는 민주주의와 개혁의 씨앗이 심어졌다.

테빈은 9할에 달하는 길드원들이 키리바시를 비웃었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김서스를 따르는 신진 급진파들이 뉴뿌우의 길드 은행을 털어온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떠벌리고 다녔지만 테빈은 이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게임박과 함께 뉴뿌우 임시정부 청사인 황금 장미 여관으로 비밀리에 찾아가 김서스와 관료들을 배제한 채 독자적은 회담을 갖거나 뉴뿌우에 몰래 보라색 모자 및 맥주 등의 보급품을 전달하는 등 수면 밑에서 뿌우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리바시와 이런 저런 일로 만날 때마다 그의 꿈과 원대한 이상에 테빈은 갈수록 감화되어갔고 결국 그는 시간이 지나자 뿌우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독재를 비판함과 동시에 키리바시를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다만 이런 행동으로 인해 테빈이 길드를 위해 공헌한 것을 모르는 친김서스 뉴비들이 테빈을 "키리바시와 다를 바 없는 폭도 중 하나"라고 비난하는 등 그 또한 길드 내에서 조금씩 배척되어 갔다.

결국 2010년 12월 테빈과 뿌우의 수구 세력 모두 피할 수 없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테빈 v. 김서스 사건이 뿌우 민주주화 운동의 시작을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이다. 자신이 총리 등을 위시한 친김서스 뉴비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아 결국 더이상 잃을게 없어진 테빈은 대담하게도 김서스가 보는 앞에서 그를 격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김서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테빈이 김서스를 비난하며 온 스톰윈드 시민들이 들을 정도로 김서스를 "몸에 장애가 있어 군대를 빠진 공익"이라고 공개적으로 모욕하자 김서스는 테빈을 길드원수 모독죄로 기소했다. 본래 자신이 입법, 사법, 행정 권한을 모두 쥐고 있었지만 자기가 기소하고 자기 손으로 처단하기 뻘쭘했던 김서스는 허수아비 판사와 배심원단을 내세워 테빈을 키리바시와 마찬가지로 "뿌우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폭도"로 칭하며 길드에서 추방했다.

뉴뿌우의 항쟁을 직접 목격하고 또한 지원했던 테빈은 자신이 추방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매로나와 포우 등을 모아 우뿌를 조직했다. 뉴뿌우가 각종 동영상 제작 및 RP 성향을 지녔던 것에 비해 우뿌는 순전히 뿌우의 민주화를 위해 설립된 길드였다. 김서스 대 GIF 캐삭빵 사건으로 가뜩이나 김서스의 지지율이 상승해 정점을 찍고 있던 시기라 이 "신성 불가침한 [...] 뿌우의 영원한 수령"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시간을 거스르려는 가당치도 않은 폭동"을 일으킨 테빈에게는 무시무시한 욕설이 쏟아졌고 키리바시의 지원도 없어 더욱 좌절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테빈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무려 2달 넘게 이 경이로운 투쟁을 이어갔다. 이렇게 우뿌 항쟁이 지속되던 와중에 김서스는 대격변 출시와 함께 인터넷팩토리관리를 길드장으로 임명해 뿌우 민주화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이렇게 2010년은 격동의 시기 속에 저물어갔다.

민주주의의 승리와 1차 정계 은퇴 (2011)[편집]

새해를 맞이했음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뉴비들은 사람 많고 지원이 빵빵한 뿌우로 갔지 우뿌에는 단 한명의 뉴비조차 오지 않았으며 사실상 1인 길드화 되어갔다. 포우는 가로나를 떠났고 매로나는 뿌우로 돌아갔음에도 테빈은 김서스의 폭정이 막을 내릴 때까지 뿌우로 돌아갈 수 없다며 2011년 신년맞이 연설에서 선언하였다. 하지만 김서스는 거의 2주동안 부재중이었고 이로 인해 기존에는 금기시되던 민주화에 대한 토론이 뿌우 내부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1년 1월이 되어 김서스가 사실상 길드를 져버리고 부당한 방법으로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나자 그동안 "길드의 황금기를 이끈 작은 거인" 김서스를 비난한 테빈의 대한 뿌우 길드원들의 시선도 달라졌다.시즌 2호 재평가 대다수 길드원들은 테빈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했고 "진작 우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여 김서스를 하루라도 일찍 끌어내렸어야 했다"며 자책하였다. 눈에서 거짓의 장막을 걷어내고 진실을 알게된 뿌우 길드원들은 선견자 테빈을 다시 환영하였고 테빈도 사실상 김서스가 더이상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뿌우로 복귀했다. 비록 30일에 한번 김서스가 접속해 테빈을 추방하긴 했지만 이제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테빈은 이제 민주화를 갈망하는 뿌우 길드원들의 선두에 서서 횃불을 들고 김서스 타도를 외치는 길드의 영웅이 되어있었다.

테빈은 와우 공홈에 탄원서를 내고 삼일에 한번 GM을 소환해 시급히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융통성이라곤 개미좆만큼도 없던 블리자드 코리아는 테빈과 뿌우 길드원들의 김서스 해임 요구를 무시했다.이러니 한국에서 블리자드가 망해가지 결국 게임 구조적으로 김서스를 강제로 끌어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테빈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민주화를 외친건 정치적 개혁은 당시로선 무리였지만 뉴비들에게 민주주의 사상을 심어줌으로서 결국에는 뿌우를 근본부터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팩토리관리의 최종 접속일이 30일을 초과하는 날이 언제 다가올 진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이 사실이었던가. 결국 하늘은 극악무도하고 압제적인 독재자가 아닌 민중의 손을 들어주었다. 드디어 2011년 5월 11일, 김서스의 최종 접속일이 30일을 경과하자 멀린이 지체없이 GM을 소환하여 독재자의 가슴에 총탄을 박아넣고 1년에 걸친 기나긴 독재를 끝냈다. 또한 김서스를 종결한 자격으로 임시 길드장이 된 멀린은 뿌우 창설 이후 3년만에 첫 민선을 실시하여 당선자에게 길드장을 위임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침내 테빈이 심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인고의 세월 끝에 싹을 핀 것이다.

첫 길드장 선거는 원활히 돌아가지 않았다. 길드장을 노리는 거의 10명에 달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출마했고 선거 과정 또한 급조된 것이라 부정선거의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어찌됬던 찌꺼기들의 당선을 지지하는 자는 유권자 중에도, 선거 관리 위원회에도 없었고 결국 후보자 토론회 이후 나머지 후보는 사실상 떨어져 나가고 검증된 정치 경력을 자랑하는 테빈과 부상하는 뉴비인 밧떼리의 대결이 되었다. 당시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밧떼리와 함께 들어온 뉴비였기에 테빈의 과거 업적을 몰랐고, 테빈은 방심하지 않고 선거를 치러야했다.

그리고 5월 11일 저녁 투표가 시작되었다. 이 선거에서 가장 큰 논란이 생긴게 바로 이 시기이다. 테빈은 투표 시작 직전 약 12%의 지지율을 확보한 매로나와 단일화를 선언했다. 두 후보는 이상을 공유했고, 밧떼리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으며, 게다가 테빈이 뿌우에 가입하게 된 것도 매로나 덕분이었기에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단일화였다. 그러나 Ganden이 수장을 맡았던 선거 관리 위원회는 테빈과 매로나의 단일화를 무시하고 매로나를 후보에 등록시킨 채 선거를 강행했다.그러면 매로나에게 투표를 하지 말고 테빈을 찍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매로나를 지지하는 세력은 치매 노인들만큼이나 멍청하기 때문에 단일화를 했다면서 두 후보 이름이 동시에 올라오자 제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그리고 개표는 테빈이 우려했던대로였다. 밧떼리가 1표차로 테빈을 누르고 제13대 길드장이자 첫 민선 길드장에 당선된 것이다. 테빈과 매로나는 선거 관리 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급진 뉴비 세력이 테빈의 졸렬함을 비판하자 선거에서 패배하고 자신의 평판마저 더 깎아내기 싫었던 테빈은 결과에 승복했다.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테빈은 잠시 정치에 미련을 버리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리즈 시절이었던 2010년이 어땠는가를 노스렌드의 광활한 대자연을 여행하여 되새겼다. 그러다가 그는 숄라자르 분지의 한 파파야 나무 아래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테빈은 꿈에서 뿌우의 첫 부흥을 이끈 길드장인 병무를 만났다. 병무와 상상 속의 깊은 대화를 나누며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길드장을 잡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길드를 위한 일이 아닌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가 진정으로 길드의 부흥을 위해 해야할 일은 2010년과 마찬가지로, 뉴비들을 보살피고 일반인들에게 갖가지 이유로 소외받는 다수의 길드원들을 즐겁게 해줄 콘텐츠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테빈은 뿌우의 새 수도 스톰윈드로 돌아와 파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뿌우 길드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선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테빈은 뿌우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영웅이었고 비록 그가 만든 콘텐츠를 직접 경험한 길드원들은 상당수 게임을 접었지만 그의 일화 또한 하나의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정계를 은퇴했지만 깨달음을 얻은 테빈은 오히려 전보다 더욱 활기찼다. 2010년의 전성기가 지나 2011년이 된 시점에서 상당수의 길드원들이 레이드 중심 계층으로 전환되어 버스 돌아주기를 꺼려하는 길드원들이 많았는데, 테빈은 이들을 대신해 그 누구보다 열렬히 신규 유저들을 위해 버스를 돌아주었고, 대격변으로 리뉴얼된 던전을 돌아준 경험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 뿌우 버스박휘들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대격변과 효율적 버스에 대한 정리 (2011)이다.판다리아의 안개로 붉은십자군 수도원과 스칼로맨스가 리뉴얼됬지만 개정할 생각은 없다카더라 이외에도 티어 11 레이드의 너프를 맞아 뿌우 뉴비들 및 일반인 후발유저들을 위한 2010년의 얼왕주팟을 연상케하는 348+ 네바람/강림지/황요 주팟을 운영했다. 당시 너프가 됬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공장들이 360 이상의 아이템 레벨을 요구한 걸 상기해보면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덕분에 전멸도 상당히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중간에 쫑이 나지 않았으며, 뉴비들은 상위 공격대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질좋은 아이템과 '수번의 도전 끝에 강한 적을 쓰러트린다'는 진정한 레이드가 안겨주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이렇게 아낌없이 뉴비들을 위해 모든걸 바치던 테빈은 돌연 2011년 8월 22일, 게임을 접는다고 선언했다. 당시에 생존해있던 게임박, 후릉가부릉가 및 원승 등 테빈의 2년의 걸친 성장 과정을 지켜본 올드비들은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문화적 암흑기를 종결하고 키리바시와 함께 뿌우의 콘텐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은 테빈이 게임을 접는다는 것은 뿌우의 문화 발전을 이끌어갈 인물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교롭게도 8월 22일은 뿌우의 3주년 기념일이었다. 테빈과 신규 길드장 원승의 주도하에 3주년 이벤트가 끝난 후, 테빈은 자신이 2년전 확립한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어 8월 22일, 위대한 애국자답게 긴 생을 마감하였다.

그 땐 그렇게 끝이 난 것으로 보였다.

와우 복귀와 공화정 재건 (2012)[편집]

판다리아의 안개를 맞아 블리자드 코리아가 9월말 무료 이벤트를 실시하자 죽어있던 테빈은 돌아왔다. 물론 테빈뿐만 아니라 아사키, 뱌른 등 뿌우의 준레전드급 인물들도 대거 복귀했고 뿌우는 약 1주일의 부흥 아닌부흥을 맞이했다. 테빈은 자신의 클래스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판다리아 업데이트 전 3일 동안 길드원들을 이끌고 구 레이드 던전 공략을 나서 부족한 길드 업적을 채우는 등 뿌국자가 무엇인지 증명했다. 그리고 판다리아의 안개가 출시되자 테빈은 무시무시한 렙업 속도를 보여주며 김늅에 이어 뿌우의 4번째 90레벨에 등극했다.[7] 이전과는 다르게 빠른 템파밍 속도를 보여주며 뿌우에서 아이템 레벨 순위 탑3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다만 당시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만렙조차 찍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시하자

그리고 운명의 시간이 되었다. 와우 무료 기간이 종료되기 하루 전, 테빈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놈을 비롯해 무료 기간에 복귀한 다수의 길드원들과 스톰윈드 앞마당에서 송별 의식을 가졌다. 그가 자랑하는 농부 코스튬을 입고 달라란에서 직접 가져온 적포도주통을 깔고 치즈를 푸짐하게 준비하는 등 성대한 파티 끝에 테빈은 0:00이 되자 접속 종료를 당했다.

여기까지가 2012년의 다라면 이 문서는 작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약 1주일간 옛 동료들과 부대끼며 시끌벅적 떠들고 콘텐츠를 즐긴 사이 테빈의 마음 속엔 복귀하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다만 결제하기 귀찮았던 테빈은 원격 채팅으로 1주일동안 징징댔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액션가발이라는 30대 아저씨가 아무 대가도 없이 테빈에게 와우 1달 이용권을 선물하였다. 이에 감격한 테빈은 뿌우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와우로 전격 복귀했다. 그는 늘 하던대로 자기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을 도왔다. 85~89 레벨 유저들을 위해 탱커로 일반 던전을 같이 돌아준다거나 영던 파밍을 하고 싶은 딜러를 위해 탱노예를 자청한 등 실로 눈부신 관용과 사랑을 베풀었다. 다만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의 영원한 숙적 찔퍽킹도 와우를 결제해 돌아왔다.

사실 찔퍽킹과 테빈은 2010년에도 대차게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 찔퍽킹이 김서스의 이해할 수 없는 편애로 가입 1주일만에 부길드장 자리에 오르자 김서스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있던 다른 원로들을 대신해 테빈이 찔퍽킹을 비판하였고, 이 과정에서 격렬한 말다툼이 생겼는데 이를 방관하던 김서스는 갈수록 자기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자 결국 테빈을 강등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천만다행으로 찔퍽킹은 얼마 안가 다시 게임에서 사라졌다. 이번에도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대결했다면 이전과 별다를바 없는 말싸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뿌우 길드장은 정신병자 게임박이었는데, 10월의 어느 새벽 찔퍽킹이 게임박의 무능을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이용해 공격하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게임박은 뜬금없이 찔퍽킹에게 길드장을 위임했다. 뿌우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의 테빈 v. 찔퍽킹 사건에서 입증됬듯이 찔퍽킹은 권력욕에 눈이 먼 쓰레기였다. 그가 길드장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테빈을 길드에서 추방한 것이었다. 찔퍽킹은 전형적인 못배운 저소득층답게 어이없기 짝이 없는 이유인 "2년전 자신과 싸웠다"를 들어 뿌우의 영웅을 추방했다. 다만 테빈은 지나치게 저돌적이었던 2010년의 미성숙함을 어느정도 떨쳐낸 뒤였다. 찔퍽킹이 약을 한사발 했는지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들떴다는 걸 알아챈 테빈은 지금은 민주화를 추진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여 찔퍽킹에게 그럴싸한 앙망문을 올려 길드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는 찔퍽킹과 동조하여 떡고물을 주워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단지 적당한 틈이 생기면 한방에 관통시켜 독재를 종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빈틈없이 굳건했던 김서스 정권을 정면에서 공격하여 2달동안 성과없이 힘만 뺀 경험에서 배운 것이었다.

테빈은 때를 노리며 채팅을 완전히 삼가는 등 침묵을 지키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민중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굳이 그가 손을 쓰지 않고도 찔퍽킹의 감출 수 없는 천박함이 반영된 독재는 급선, 노옹이 등 2008년부터 독재에 익숙했던 화석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길드원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다가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는 데, 바로 듀로탄 길드 이전 투표였다.

길드원들은 일부 씹하드레게들을 제외하고는 5년 역사를 자랑하는 가로나의 명문길드 뿌우를 타 서버로 옮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는 유료 이전이었기 때문에 최소 길드원들의 75%는 이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통계 또한 있었다. 다시 말해 찔퍽킹의 길드 이전 투표는 비록 결정이 아니라 투표였음에도 뿌우와 그 길드원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심하게 훼손하는 반인륜적인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였다. 게다가 익명의 제보자가 본래 찔퍽킹이 새벽에 세 명의 레게들과 비밀 회담을 가진 뒤 투표조차 하지 않고 몰래 길드를 이전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된 것이 밝혀지면서 찔퍽킹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다 들어먹었다.

결국 처참한 저소득층답게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찔퍽킹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숙청을 시작했다. 테빈과 비슷한 시기에 복귀한 키리바시를 길드의 암이라고 부르며 가장 먼저 처단했다. 테빈은 찔퍽킹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한 이때가 바로 행동할 때란 것을 알았고, 정치적 침묵을 깨고 찔퍽킹을 매섭게 비난했다. 그리고 그 또한 예상대로 추방당했다. 키리바시, 매로나와 다시 규합해 뉴뿌우, 우뿌의 뒤를 잇는 뿌지스탕스를 창설한 테빈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자신의 순교가 불을 붙인 도화선이 다 타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폭탄은 쿠레늬가 추방당했을 때 결국 터지고 말았다. 단지 홍할에게 길드장을 위임하는 것이 모두가 만족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던 쿠레늬가 가차없이 추방당하자 길드원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액션가발, 얌생이는얌생얌생, 롯데치킨, 쿠레늬, 김거강 등 대다수의 길드원들이 뿌우를 탈퇴해 뿌지스탕스 항쟁에 합류했다. 혼자만의 투쟁으로 끝난 우뿌와는 달리 뿌지스탕스는 테빈의 계획대로 되간 것이었다.

결국 뿌우에는 씹하드레게 및 중도파만[8] 남게 되었고 동시 접속자 수는 뿌지스탕스에 압도당하는 비참한 꼴을 맞이하고 말았다. 찔퍽킹을 추종하는 이들 세력[9]과 뿌지스탕스 저항군이 매일 wg 채널에서 혈투를 벌였다. 찔퍽킹의 홍위병 급선이 이와중에 채널에서 뿌지스탕스 길드원들을 모조리 추방하는 등 사태는 악화되어갔지만 테빈은 오히려 안심했다. 이렇게 사태가 격화된다는 것은 찔퍽킹이 여기 더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2012년 11월 14일 찔퍽킹은 마침내 항복했다. 테빈의 지도력과 뿌우 민중의 불굴의 의지가 마침내 독재자를 무너뜨린 것이었다. 찔퍽킹은 중도파 김늅에게 길드장을 위임하고 홀로 듀로탄으로 떠났고, 그를 따르던 지지 세력도 듀로탄, 하이잘 등으로 뿔뿔히 흩어졌고, 일부는 아예 게임을 접었다. 반대 세력은 사라졌고 자유의 투사들 앞에 남은 장애물은 없었다. 이제 그들이 해야할 직무는 내전으로 상처입은 길드를 재건하는 일이었다.

김늅의 임시 길드장으로서의 직무 수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되려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의 행정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는 찔퍽킹에게서 길드장을 위임받은, 비민주적인 길드장이었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민선 길드장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를 12월 19일,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와 겹치는 날에 개최할 것을 공표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듯이 테빈은 1년 전의 못 이룬 꿈을 끝내 이루기 위해 출마했다. 이에 맞선 경쟁자는 쿠레늬로, 비록 찔퍽킹 앞에서 단독 시위를 함으로서 추방당해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출중한 인물이었으나, 정치 경력이 전무했고 테빈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테빈은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병무가 폐쇄한 뿌우 카페를 새로 열고 선거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자신이 자랑하던 미디어의 힘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침내 12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개표에 몇시간 앞서 뿌우 길드장 선거가 실시되었다. 테빈은 자신의 승리를 낙관했고, 예상대로 그리 되었으나 충격적으로 1표차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하는 예상 외에 상황이 일어났다. 비록 이런저런 해프닝이 있었지만 오랜만의 길드장 선거이자 길드 이벤트인만큼 다들 화기로운 분위기 속에 끝났고, 테빈은 스톰윈드 왕궁에서 김늅에게 길드장을 위임받음으로서 2009년부터 그토록 고대했던 뿌우의 최고 통수권자 자리에 오른다. 그의 눈 앞에 4년간 뿌우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 - 이를테면 모호크단, 5.11 혁명 등 - 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고, 마침내 가로나 얼라이언스 뿌우의 제22대 길드장 테빈이 탄생했다.

길드장 재임과 2차 은퇴 (2013)[편집]

길드장에서 퇴임한 현재는 키리바시, 매로나 등과 친목질을 하며 뿌우에서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본래 찌르뢰기와도 연락망을 유지했으나 그가 통제를 벗어나 뿌우를 붕괴시킨 이후는 연락이 두절됬다카더라. 또한 구스위키에 뿌우 역사를 남기는 일에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쏟아붓고있다.잉여롭기 짝이없다

찌르뢰기가 세컨드 임팩트를 일으켜 길드를 말아먹은 이후 사정상 와우에 접속하지는 못하지만 외부에서 뿌우 재건을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고 있다. 일단 11월 말 길드를 정상화한 이후 확장팩 출시와 함께 본격적으로 재건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영입한 조력자들 중 김서스, 노옹이 등의 역대급 길드장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그 때까진 넬쥴을 흡수한 아서스가 리치왕의 분노 출시 전까지 앉아있던 것마냥 길드장을 탈환하고 길드가 자생하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듯.

길드장 복귀와 뿌우의 부활 (2014)[편집]

이는 판다리아의 안개가 망한 확장팩이고 접은 길드원들이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전까지 복귀하지 않을 것임을 전제하고 실행한 계획이었으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혹시나 해서 이런 복귀자들을 기다리며 2014년 봄까지 홀로 길드를 지켰지만 돌아오는 길드원들은 없었고 테빈은 그냥 놔둬도 되겠다는 판단 하에 다시 와우 접속률을 급히 낮추었다.

그리고 테빈이 다시 자리를 비우자마자 수번의 시도에 걸쳐 뿌우를 파괴하려한 반란수괴 쿠레늬가 복귀했다. 여기까지는 타격이 없었다. 문제는 바로 이 때부터 복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실로 뿌우 입장에선 악운이었다. 쿠레늬는 이를 틈타 복귀자들을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꾀어내어 1인 길드 눈썹달의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본래 뿌우가 건강할 때는 누구도 그 길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동등한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는 처지였다. 사람들은 쿠레늬의 말에 홀려 뿌우를 버리고 눈썹달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주일에 한번 정도는 접속하며 길드를 살피고 있던 테빈은 익숙한 이름들이 자꾸 탈퇴하는 기록을 보고 이상한 조짐을 느끼고는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이탈자들이 모두 눈썹달로 옮겨갔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하며 1년 동안 은퇴 길드원들의 노인정으로 사용되던 뿌우보완위원회를 본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태세를 전환하였다. 책략가 키리바시와 다수의 길드원들을 소집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눈썹달 박멸 및 뿌우 재건을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 길드는 현재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상태로 대치 중이다. 눈썹달은 길드장 쿠레늬가 고졸백수폐인이기 때문에 하루종일 와우에 접속해 뿌우의 동시 접속자 수가 낮은 틈을 타 길드원을 빼갈 수 있다. 이에 더해 기본적으로 인원수 자체가 뿌우에 비해 약 1.5배 정도 우세한 상황이다. 하지만 상당히 큰 약점이 길드장의 병역 문제이다. 쿠레늬는 1994년 출생으로 아직까지 미필인데 병역을 더는 연기할 수 없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고, 만약 쿠레늬가 입대한다면 길드원 수급을 쿠레늬의 '24/7' 초대에 의존하는 눈썹달은 길드원들이 로테이션을 돌며 초대를 하는 뿌우의 시스템에게 서서히 무너질 것이다. 이는 쿠레늬가 길드장을 물려주고 평화롭게 떠난다는 가정 하의 상황이고, 만약 권력을 내주기 싫어 김서스처럼 먹고 사라진다면 눈썹달의 멸망은 확정적이다. 즉 현재 눈썹달은 젠가와 비슷한 상황으로 중심 축인 쿠레늬가 빠진다면 한번에 무너질 수 있는 상당히 연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모든 구성원들이 길드에 대한 충심이 아닌 기회주의와 여론몰이로 인해 가입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이는 자명하다.

이에 반해 뿌우는 동시 접속자 수에서 상당히 뒤지고 있으며 쿠레늬처럼 하루종일 상주하며 초대를 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뿌우가 크게 밀리지 않는다는 게 학자들의 여론이다.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출시를 전후해 블리자드 코리아의 무료 기간 이벤트가 예상되는 데 이는 뿌우에게는 크나큰 기회이며 놓쳐서는 안되는 역전의 발판이다. 전통적으로 이런 행사에서 대규모의 길드원들이 복귀하는데, 이때 다수의 길드원들이 복귀하면 순식간에 병력 차이가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눈썹달이 줄곧 사용해오던 수적 우세가 무용지물이 되고, 더군다나 브랜드 가치가 있는 뿌우는 서서히 유리해질 것이다. 한명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 또한 뿌우의 강점이다. 비록 테빈이 주도하고 있기는 하나 남은 길드원들은 각자 승리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이는 쿠레늬를 잃으면 순식간에 와해될 눈썹달의 모래알 군대에 비하면 큰 이점이다. 현 시점에서 남은 길드원들은 배신자들처럼 여론을 따라가지 않고 뿌우의 대한 충심으로 인해 남았기 때문에 사기 면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비록 친목질로 지탄받기는하나 효율적으로 전략을 짤 수 있으며 유기적인 대처를 가능케한 뿌우보완위원회 또한 소중한 자산이다. 애초에 보완위원회가 아니었다면 소집된 길드원도 없었을 것이고 아주 가뿐히 눈썹달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테빈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없다는 것 또한 현 시점에서 작은 이점이며 최고의 책략가 키리바시를 보유한 것 또한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더군다나 비록 전례가 없지만 테빈이 현금 사용이란 강력한 처방까지 염두에 두고 있고, 가능성은 낮지만 사용된다면 전략 핵무기 급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현재 눈썹달의 우위는 쿠레늬의 24시간 상주와 이로 인한 숫적 우세로 인한 것이며, 이를 제외한 무형의 분야에서는 뿌우가 유리하다. 뿌우의 브랜드 가치와 확장팩으로 인한 대규모 복귀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뿌우에게 힘이 될 것이며, 유사 시 은퇴한 유명인사를 소집할 수 있고 와우 외부에서 전략 구상이 가능한 보완위원회의 존재 또한 큰 변수이다.

과거 라즈뿌순당 사태의 재림이라고 볼 수 있는 내전이 또한번 발발했다. 두 사태 다 길드장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들이 앙심을 품고 저지른 일이며, 반란군의 초기 우세까지 유사하다. 결말까지 동일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4년 10월 게임박과 밧떼리의 복귀가 확인되자 더이상 좌시하기 힘들다고 판단, 뿌프콘 1을 발령하고 총력전 형태로 전환했다. 테빈과 측근 죽음의대스의 눈부신 활약으로 눈썹달 사태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었고 뿌우는 마침내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다.

새해를 맞이한 지금 돌아보는 테빈의 역대 업적은 독보적이라 봐도 큰 이견이 없다. 리치 왕과 비슷한 존재인 뿌우의 길드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종전 김서스의 최장 집권 기록을 갱신한 테빈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 지도력이 검증되었으며, 찌르뢰기에 의해 괴멸된 뿌우를 다시 끌어모아 종전보다 더욱 발전된 상태로 복구하고 쿠레늬 등 반대 세력 등을 포용한 점은 전례를 찾기가 힘들다.

3차 은퇴 (2015)[편집]


테빈퇴임.png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의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뿌우를 이끌어오고 가장 빛날 때 내려온,
뿌우 8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길드장.


2015년 1월 19일, 협상 당시 약속한 대로 길드장을 이양하고 후손들에게 뿌우의 미래를 맡긴 채 정상에서 내려왔다.

평가[편집]

일단 뿌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상주의자라는 평가에는 모두 공감한다. 다만 그게 뿌우에 독이 됐는지 득이 됐는지에 대해 지금도 많은 사학자들이 토론 중이다.

긍정적인 면[편집]

명확한 장점으로 용병술과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다. 이 부분에 한해서는 역대 길드장들 중 가장 우월한데 젊을 때부터 인터넷에서 온갖 병신들을 상대하며 키운 것으로 테빈이 만난지도 얼마 안돼 불길함을 느낀 자들은 모두 끝내 파멸했다. 극명한 예로 세르켄과 찔퍽킹이 있는데, 둘다 가입 직후부터 김서스의 가호 아래 승승장구 했으나 테빈은 이들의 독선적인 면과 융화되기를 거부하는 일종의 '선민의식'을 간파했는데 당시 누구도 테빈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알다시피 각각 손에 꼽히는 비극인 라즈뿌순당 사태와 11.14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문제는 이게 단 한번 빗나간 적이 있는데 그게 세컨드 임팩트와 1년이 넘는 뿌우의 몰락을 일으킨 찌르뢰기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면[편집]

친목질[편집]

많은 비평가들이 테빈의 가장 큰 실책으로 키리바시를 감싸준 것을 들고있다. 키리바시 특유의 정신병적 행동을 장려한 끝에 빡돈 다수의 길드원들이 서버를 옮기거나 다른 길드로 이적했다는 것이 그 이유. 그러나 이건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게, 첫째로 키리바시는 테빈의 철학인 민주주의 때문에 단 한번도 중책에 오른 적이 없고, 애초에 누군가 소송을 걸지 않는 한 모든 일을 방임하는 철저히 자유주의적 정책이 테빈이 내세운 민주주의의 기조였기 때문에 이건 테빈이 키리바시를 싸고 돌았다기 보단 과도할 정도로 방임, 자유주의적 정책에 집착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뿐이다.

대줄진 전쟁[편집]

비판[편집]

빛뿌우 정책 폐지가 뿌우 몰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홍할이 빛뿌우 정책을 최초로 도입한 이후 뿌우의 동시 접속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구시대적인 정책으로 회귀한 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행위였다. 게다가 기반이 잘 갖춰진 가로나에서도 이런 행위는 결코 안전하지 않았는데 줄진으로 막 이전하여 길드가 어수선한 상태에서 전 서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여 길드원들이 정상적으로 컨텐츠를 즐기는 것을 방해한 것은 길드장답지 못하다.

게다가 자신은 2010년과 2012년, 각각 김서스 정권과 찔퍽킹 정권에 대항하여 새 길드를 구축했음에도 쿠레늬의 눈썹달 길드를 폭동으로 매도한 것은 "내가 하면 혁명, 남이 하면 폭동"이라는 통베충과 흡사한 이중적인 짓이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뿌우의 황금기인 2010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 이루지 못했던 꿈을 길드장이 된 이후 당시와는 크게 달라진 현실에서도 그 이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길드원들과 서버 전체에 피해를 준 이기적인 길드장이었다.

옹호[편집]

뿌우가 망한 것은 테빈의 탓이라기 보다는 와우 자체가 몰락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테빈은 오히려 홍할 등의 극좌파가 빛뿌우 정책 등으로 뿌우를 일반인 길드와 다를 바 없는 곳으로 바꾸려고 한 시도를 저지한 영웅이었다. 줄진 이전 이후 그의 '뿌수주의'는 배수진을 치고 길드원들간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줐으며 오히려 이후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였을 경우 쿠데타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충성심 낮은 길드원들을 사전에 걸러냈다. 게다가 테빈의 뿌수주의 정책에 찬성한 길드원들은 이벤트 참여율과 접속률이 높았고 이에 반해 빛뿌우 정책을 반기던 길드원들은 이벤트 참여율이 저조했고 개인 플레이를 즐겼다는 통계도 있다.

줄진 이전 직후의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전 서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은 뿌우의 강인한 의지를 전 와우 커뮤니티에 알린 용맹한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테빈은 줄진의 텃세에 휘둘려 아무것도 못하는 찌질한 길드가 되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싸우다 전사하여 뿌우의 긍지를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테빈은 얼마 남지 않은 뿌우의 온힘을 쥐어짜내 와갤얼라수도 뿌우의 긍지가 무엇인지 마지막 불꽃을 태워 보여주고 아름답게 스러지게끔 한 최후의 영웅이었다.

기타[편집]

수상 경력[편집]

2011~2012년 올해의 민주 투사
키리바시 테빈 쿠레늬
2013년 뿌우 MVP
홍할 테빈 죽음의대스
2011년 뿌우 죽박 골든클래스 수상자
김서스 테빈 게임박
2013~2014년 뿌우 죽박 골든클래스 수상자
게임박 테빈  
2011년 뿌우문화대상
키리바시 테빈 홍할
뿌우 역대 콘텐츠 진흥원장
키리바시 테빈(2011) 홍할

  1. 다만 레벨업만 한 것은 아니고 20레벨에 노스렌드 구경을 간다던지 하는 기괴한 이유로 외도를 하기도 했다.병신짓의 싹은 이때부터...
  2. 사실 뿌럼버스 탐험대는 근대 뿌우 길드원들이 새로 만든 컨텐츠라기 보단 뿌우의 모든 이벤트를 주도했던 테빈이 죽고 난 이후 묻혀있던 컨텐츠 중 탐험을 누군가가 다시 꺼내온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3. 어둠의 문
  4. 어둠달 골짜기
  5. 당시 용어로는 기어스코어
  6. 언제나 그랬지만 뿌우의 계층은 보통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극도로 레이드 및 투기장 등 와우 기본 콘텐츠에 올인하여 다른 길드원들과는 벽을 쌓아놓고 유명 공장들과 친목질 하는 계층과 아카본 등 라이트한 레이드만 즐기고 나머지 시간은 채팅질 및 길드 콘텐츠에 할애하는 계층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7. 기존 순위는 리치왕의 분노 측정 불가, 대격변 10위였다.
  8. 이들이 남은건 지금 보면 천만다행이었다
  9. 보통 서버 이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20대 중반의 현실적으로 부유한 길드원들이었다. 참고로 뿌우에서 가장 환영하는 길드원들은 게임박과 같은 백수 폐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