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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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金九
Kim Gu in 1949.jpg
틀:나라자료 대한민국 임시정부제9·10대 국무령
임기 1926년 12월 14일 ~ 1927년 8월
부통령 없음
전임: 홍진(제8대)
후임: 이동녕(제11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18·19·20대 주석
임기 1940년 3월 13일 ~ 1947년 3월 3일
국가 부주석 김규식
전임: 이동녕(제17대)
후임: 이승만(제21대)

국적 조선 (1876년 - 1897년)
대한제국 (1897년 - 191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 1945년)
대한민국 (1948년 - 1949년)
출생일 1876년 8월 29일(1876-08-29)
출생지 조선 황해도 해주군 백운방 텃골
現 벽성군 운산면 오담리 (대한민국 기준)
現 태탄군 지촌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준)
사망일 틀:사망일과 만나이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평동 경교장 2층 거실에서 암살됨.
정당 한국독립당 (1928년)
한국국민당 (1935년)
통합 한국독립당 (1940년)
종교 유교(성리학) → 천도교(동학) → 불교(법명: 원종) → 개신교(감리회)
배우자 최여옥(약혼 중 사망), 최준례(재혼)

정의[편집]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일제시대 동안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했다. 해방 후에는 남북한 별도 정부수립에 반대하며 단일 정부 수립을 주장했다...라고 했지만 김구는 장덕수 암살 전까지는 이승만과 함께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찬성했었다. 하지만 장덕수 암살 이후 이승만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자 그에 대한 미움으로 남한단정수립 반대를 하면서 북한에 갔었다.

박정희 시대부터 부풀려졌는데 사실 그의 아들 김신(당시 공군 중장이자 군단장)이 5.16 군사정변에 참가하면서(명단에도 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자 박정희는 김신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를 담아 마구 띄워주었다. 그리고 김구의 개입 의혹이 의심되는 여순 사건에서도 극우 부분이 삭제되고 오동기는 무죄받았다. (오동기도 김구와 같은 중국 국민당 군대 출신이다.) 미국군 정보국에서 의심했다고 한다

킬구[편집]

민간상인 쓰치다 살해[편집]

킬구2.jpg
킬구.jpg
백범.png

실제로도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쓰치다 조스케가 일본 군인이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는 근거가 없다. 백범일지 이외에는 일본 군인이라는 근거가 적혀있는 서술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쓰치다 조스케를 김구가 살인했는데, 이에 대한 재판은 일본이 하였다. [1] 하지만 진술은 조선에서 했다. 당시 1896년은 을사조약 체결 전이다. 당연히 저 진술이 조작되었을 리 없다.

만약 쓰치다가 실제로 군인이였다면 일본 측에서 좋은 떡밥을 놓칠리가 없다는데, 실제 재판문에서는 상인(약재상)이라고 나와있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는 쓰치다 조스케가 대마도 이즈하라 출신의 상인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은 이 근거에 대한 뒷받침이 된다. 일본으로서는 쓰치다의 신분을 과장시키는게 재판에서 더 유리했을텐데 왜 상인이라고 기록했을까? 다만 이 만화는 일부러 김구를 깎으려고 약간의 감성팔이가 섞여있다. 이 만화는 역갤러 어그러왕 '황룡' 이라는 갤러가 원작자다. 김구에 대한 관심이 없던 역갤에 돌연 황룡의 만화가 올려지는 동시에 킬구의 전설이 시작됬다. 지금도 여러 역갤러가 패러디하고 올리고있다.

하지만 이 시기 '일본상인'이라는 사람들은 평화적인 교역보다는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경제적 수탈의 한 방편으로 역할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 시기 일본상인에 의한 국내 물자 유출은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기에 조선 국민. 특히 서민들의 일본인에 대한 반감은 상당히 심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사람죽이는게 말이되냐? 그리고 김구 재판문에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흩어졌다고 나오는데, 이는 아무리 반감을 가졌더라도 백주대낮에 엄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미화 논란[편집]

박정희 때 정권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띄워줬으며 이유는 김구의 차남인 김신이 5.16 중요 협력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도적인 스탠스를 가진 독립운동가로 미화됐지만 다분히 민족주의적 우파 성향이었고, 매카시즘의 등장 이전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뭔가를 극히 혐오했던 것 같다.

1946년 3월 1일에 3.1절 기념식에 때맟춰서 백의사 단원들을 북한으로 올려보낸 일이 있다. 이때 죽은 김일성의 외증조부 강양욱의 아들 딸 며느리와 강양욱 목사 집에 심방온 다른 목사까지 all Kill. 도진순의 1997년 저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관계에 의하면 김구의 전 약혼자였던 안신호가 김구에게 강량욱 암살에 대해 물으니 김구가 몹시 난처해했다고 한다.

1980년대 브루스 커밍스나 리처드 로빈슨은 해방 정국에서 발생한 각종 암살 사건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했다. 미군정은 김구를 의심했고 이는 덮어버리려던 이승만과 의도적으로 미화한 박정희 때에 쉬쉬되다가 1980년대에 다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의문의 끝판왕[편집]

송진우[편집]

미소 신탁통치안이 발표됐을 때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관했다. 그러나 미국과 싸우다가 주도권을 빼앗긴다는 송진우의 설득이 있었고 그 다음날 새벽 송진우는 자택에서 백의사 단원의 총에 맞고 죽는다. 미군정 외에도 후에 브루스커밍스나 리처드 로빈슨은 김구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반대운동을 한 이유는 여러가지 썰이 있는데, 신탁통치의 경우는 미국은 북한애 대해서 미국이 아닌 소련에게 신탁을 맡기겠다는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썰도 있다. 향후 김일성새끼가 신탁통치에 반대를 하다가 갑자기 신탁통치에 찬성을 했던 꼴아지를 보니 김일성이 소련에게 나라를 쳐넘길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참고로 그 김일성이 반대를 주도했던 것은 조만식의 입깁이 있었다는 썰로 볼때는 조만식 선생과 뜻을 같이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로 미국의 저러한 행동은 그 이후 대통령인 지미 카터의 행동과 다를게 하등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오죽하면 미국 내부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을까?

사찰요람에는 김구는 동단원 전백(대한보국의용단을 의미한다)이란 자에게 지령하여 송진우 암살을 지시했는데, 전백은 한현우를 현장에서 지령하여 죽였다고 한다.

전백은 송진우 암살사건때 살인방조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한현우의 밀서에 의하면 한현우는 여운형, 박헌영 암살을 주장했는데 전백이 송진우 암살을 주장해서 죽였다고 하며 권총과 돈도 주었다고 한다. 김구와 송진우 암살

이 사건이 터진 이후로 우파들의 결집력이 붕괴되는 결정타를 남기고 좌파들의 준동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한가지 반론을 하자면 송진우의 암살의 뒷배가 김구 선생이라는 신빙성도 의문이 되는데, 장택상을 비롯해 한민당 측에서 이를 제기했고, 임시정부를 극찬한 것도 고하 송진우라는 점에서 보면 마냥 믿을 수 없다. 아무래도 김구 선생과 송진우 선생의 갈등은 사실이나 김구 선생 측에서 누군가가 풀발기해서 고하 송진우를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장덕수[편집]

미소공위 참가 여부를 놓고 싸웠고 보수파 정당 통합을 놓고 장덕수가 김성수에게 임정한테 통째로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반대하던 장덕수도 1947년 12월 2일에 그의 집에 쳐들어온 현직 초등학교 교사와 현직 군정청 경찰관.. 이들은 모두 한독당원이었다. 이들의 총에 맞고 갑자기 사망. 뒷일로 미군정에서는 장덕수 암살의 유력한 용의자로 김구를 불러냈으며, 더 이상의 테러 활동을 자제할 것을 경고하였다.

장덕수 암살 김구는 장덕수 암살재판 때 나갔는데 김석황, 손정수, 조상항, 신일준의 공통적인 증언은 김구는 이박사가 주도하는 미소공위에 나간다니 죽일놈이라서 처치하기 원한다고 나왔다.

김립[편집]

1921년에 레닌이 이동휘 한형권 등에게 2백만 루블의 자금을 내려줬다. 조직원인 김립과 한형권이 40만 루블씩 나눠서 들고 왔다가 상하이에서 발각된다. 그런데 임정에 상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무국 부하들을 보내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김립을 빵야 빵야. 그리고 백범일지에는 김립이 향락을 즐겼다고 썼지만 김립이 향락을 즐긴 여자 이름이나 증거는 Nothing..[2] [3], [4] 그리고 한국근현대사학회의 한국근현대사연구 제32집 참조

김립을 죽인 바람에 2백만 루블 중 김립이 나눠 들고 온 금액을 제한 나머지 백수십만 루블은 구경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임시정부에서 이동휘를 비롯한 좌파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이탈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이 일로 임정은 신용이 실추되어 이후 가난을 면치 못하게 되어 변변한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김립도 까여야할 점이 공산당이라는 이름이나 쳐달면서 군벌들처럼 사조직으로 놀아 김일성, 박헌영,마오쩌둥 놀이나 했던 놈이었다. 김립의 애초 목표는 임시정부를 쌩까고 마오쩌둥처럼 세력 확대에 열올리는게 목적이라는 점에서 김립의 죽음은 김립 스스로가 자초했던 일이다.

안공근[편집]

1936년에는 중일전쟁이 터지자 측근인 안공근(저 유명한 안중근의 동생)은 자기 가족도 내버리고 김구의 어머니부터 먼저 모시고 빠져나온 뒤 점령 직전에 겨우 자기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 그러자 김구는 형수 일가족을 데려오지 못했다고 심히 질책을 했다. 토라진 안공근은 독자적으로 행동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중국계 마적단 나검북에게 납치되어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김구의 최측근인 모 독립지사의 짓이라는 썰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오영섭의 한국사를 수놓은 인물들 참고.

안공근 사건을 보면 김형욱 실종사건의 임시정부 버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참고로 이 사건이 터진 이유로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금이간 복선을 깔았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애초부터 이런 실종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임시정부의 몫이라고 보여진다. 해방기 이후 이 사건으로 좌파는 물론 우파들끼리의 분열의 시작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든다.

사실 안공근에게 사기를 친 인간이 광동인이라고 말하는 단어 자체도 이상하다. 독립운동의 의거를 하기 직전에 사기를 친것은 보통 의문이 드는 것이 아닌데, 사기를 당했다고 나무라기 이전에 사기를 친 인간들을 잡기 위해서 총력을 다하는 것도 임시정부를 지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 사기가 단독범의 소행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묘했다. 그리고 훗날 사기죄에 대해서도 기틀을 마련했다고 보여진다. 지금도 해외에서 사기를 당하는 교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때의 역사가 되풀이 되게된 셈이다. 결국 본질은 사기범을 잡는게 본질인데 피해자를 사돈이 나무라는건 대체 뭔지?

한간에는 중국 여러 군벌들과 손을 벌린 상태였다는 설이 제기가 되곤 하는데, 당시 중국의 상황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매우 무정부상태였다는 점도 있기에 이런 사건이 터졌다.

쿠데타 기도[편집]

미소 신탁통치안이 발표된 45년 12월 27일 이후 국자 1호와 국자 2호를 내려 미군정을 상대로 접수를 기도하다가 실패했다.

사찰요람[편집]

1955년 자유당에서 발행한 책자인 사찰요람에서 김구가 영등포에서 경무대를 포격할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무대 포격

그러나 영등포에서 경무대까지의 거리는 9~10km에 달하는데, 한국전쟁 이전까지 국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포인 105mm M3포의 사정거리는 유효 6526m, 최대 7584m로, 당시의 국군 보유 무기로 한강 이남에서는 뭔 짓을 해도 경무대를 맞출 수 없다.

사찰요람에는 "김구는 김학규를 통하여 그의 부하 안두희로 하여금 이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안의 번의로 1949년 6월 26일 시내 경교장에서 도리어 안에게 피살되었다"고 나오는데 경무대 포격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안두희가 야전차 포병단이기 때문에 사정거리안으로 이동해서 쏘면된다.

김구 암살 당시 헌병사령부의 발표에 의하면 안두희는 김구의 한국독립당 비밀당원이었다. 안두희 공판기에 의하면 포병대대에 세포를 심어두고 8.15를 전후해 중대행동 명령을 비밀지령으로 내린다고 한다.

훗날 공개된 실리 보고서에서도 안두희는 김구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있는백의사 암살특공대였다고 한다. 안두희는 암살특공대 제1소조의 구성원이었고 또 다른 구성원들이 더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낑낑거리면 옮겼을까? 그게 아니다. 당시 포병은 지금보다 규모가 작아서 중령이 포병사령관을 했고 야포는 총91개밖에 없었고 소위가 높은 보직을 맡았다. 결정적으로 저 20명은 포병 병사가 아니라 장교들이었다.

실리보고서에서는 김구의 반 이승만 쿠데타가 나오는데 반 이승만 쿠데타를 하면서 암살을 한다면 목표는 당연히 이승만이고 포격으로 암살한다면 목표는 당연히 경무대일밖에 없다.

그를 부르는 명칭[편집]

  • 킬구
  • 뷁범
  • 테러리스트
  • 전과백범
  • 개구
  • 빨갱이 (정작 김구는 빨갱이를 '스탈린 후빨을 꿀 핥듯 한다'며 매우 싫어했다. 번지수 잘못 붙은 별명, 아마 김구의 통일정부 수립에 노력을 한 것과 북측 김일성과의 접촉에 대해 비꼬는 듯 싶다.)

같이 보기[편집]


  1. 국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사유는 알 것이다. 강화도 조약때문이다.
  2.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9000/2007/04/0211090002007041206550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