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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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전라북도전라남도를 합친 말이다.

전라도의 주요 역사[편집]

1946년 제주도전라남도에서 별도의 도로 독립되었다.
1963년 금산군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이관되었다.
1986년 전라남도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으며 광산군 송정읍을 송정시로 승격시키었다.
1988년 송정시와 광산군을 광주직할시에 편입 되었으며 광산구가 설치되었다.

지리[편집]

호남 지역을 일컫는다. 광주를 맡고 있는 광역시, 목포를 맡고 있는 항구, 나주를 맡고 있는 , 진도를 맡고 있는 진돗개 등이 있다.

‘전라’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 지명으로, 고려 현종 때의 전라주도(全羅州道)에서 비롯 된다. 전라도는 본래 마한의 땅으로 백제의 영역이었다.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망한 뒤 당나라가 이곳에 웅진(熊津 : 지금의 공주)ㆍ마한(馬韓 : 지금의 익산)ㆍ동명(東明 : 지금 의 부여)ㆍ덕안(德安 : 지금의 은진)ㆍ금련(金連 : 지금의 金溝)의 5개 도독부(都 督府)를 설치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철수한 뒤 신라의 경덕왕은 전주(全州)와 무주(武州)에 2개의 도독부 를 설치하여 군현(郡縣)을 관할하였다. 이 곳은 진성왕 때부터 후백제의 근거지가 되 었고, 936년(태조 19)에 고려가 이곳을 차 지하였다. 성종 때강남도(江南道)와 해양도(海洋道)로 나누어졌다. 현종 때 이를 합 쳐 전라주도라 하였고 조선 시대부터 전라 도라고 하였다.

인조 때 전남도(全南道)라고 하였다가 복 구하였고, 다시 광남도(光南道)로 고친 적 이 있다. 영조 때에는 전남도로 고쳤다가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의 23부제(府制) 실시 때 전주부ㆍ남원부ㆍ나주부ㆍ 제주부의 4개 부로 세분되었다.

부제 실시로 종래의 지방행정 구역을 군(郡)으로 통일하고 군수의 품계를 1등에서 5등까지 나누었다. 1896년에 13도제(道制)가 실시되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나 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도의 56 개 군이 전라북도는 1부 14군, 전라남도는 1부 22군으로 통폐합되었다. 1946년제주 도가 도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에서 분리되 었다. 1986년에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 되고 1995년 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어 전라도는 1개 광역시와 2개 도로 나누어 졌다. 전라도를 호남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호강(湖江 : 지금의 금강) 남쪽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벽골제(碧骨堤)의 남쪽을 호남 지방으로 부른다는 설 그럼 익산시, 군산시, 전주시는 호남지방이 아닌가? 도 있지만 금강 남쪽이 옳은 견해이다. 금강 하류는 오래 전부터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어왔다. 지리적 으로는 소백산맥 서쪽이 전라도에 해당된다. 육십령(六十嶺)과 팔량치는 예로부터 호남과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구실을 하였다.

인터넷 욕설[편집]

전라도.jpg

일베식 표현에 따르자면 사실 욕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라도라는 단어는 전라도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욕설이라 카더라. 야당의 극렬 지지자들의 자매품으로 호남라는 단어가 뒤를 있고 있다.

하지만[편집]

사실 전라도 지역에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무조건 라도드립을 해대는 일베충이 쓰는 말. 물론 씹선비나 아고라디언들도 경상도에서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쌍도드립을 하기 때문에 서로 쌤쌤이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드립은 4.29보궐 선거 참패이후 야권의 한 계파인 문베충들도 쓴다고 한다. 단 이쪽은 점잖게 호남이라는 말을 쓴다. 때에 따라서는 정부나 여당을 비판해도 전라도 역시 정부나 여당과 다를게 없어서 호남 자민련이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육탄 10용사 중에 전라도 출신이 있고, 특히 일베충들 중에 전라디언이 있거나 혹은 장세동이라던가 이정현같은 인물이 나오거나 나라의 구한 영웅들이 있으면 탈라도라고 말한다. 실제로 고려왕조에서 전공을 세운 안우, 유탁을 바롯해 이성계에 대항했던 정지라던가 혹은 조선왕조에 협력하고 대마도정벌에 앞장선 유탁의 아들 유습의 경우가 그러하다. 송희립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반골 기질보다 진충보국을 한다거나 덤으로 이들이 우파에 편에 서면 탈라도라고 한다. 실제로 육탄 10용사와 관련된 유언비어에도 제일 적극적으로 논파하며 나선게 일베이다. 반대편에선 변절자라고 하고, 혹은 너무 미화시킨다고 싫어한다. 왜 전라도를 싫어하면서 전라도의 영웅을 좋아하냐고 한다. 근데 참 어찌보면 웃긴게, 박원순과 이재명과 문재인과 안철수도 영남 출신인데, 또 여기선 영남의 변절자라고도 한다. 여기선 탈쌍도라고도 한다.

근데 고려왕조나 조선왕조를 보게 되면 생각만큼 무골들이 많이 나왔는데, 특히 신흥무인의 한 축이었던 안우, 유탁 두 장군이 후일 조선 개국공신이 되는 신흥무인들에게 존경을 받던 무장들이었고, 함경도 출신에 이성계와 경상도 출신에 배극렴도 이들의 부하이자 후배들이었다. 조선왕조에서도 대마도정벌을 추진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전라도 출신이다.

물론 박위, 김사형등과 같은 사람은 영남 출신의 신흥 무인이었고 이들의 후배이다.

실제로 전라도를 제일 싫어하고 멸시했던 왕조는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신라가 아니라 실은 고려였다고 한다. 얼마나 핍박이 심했으면 씨받이 여인이라는 이야기가 전라도 출신 왕비에게 나오고(공예태후), 훈요 10조 8항 이야기도 나오고, 그로 인해서 혜종이 불과 2년만에 죽고 그 외가도 멸문지화나 당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이것은 왕씨 고려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공산 전투때 당한 수모와 혈구진은 안키우고 청해진이 큰것에 대한 사감이었다. 얼마나 고려에 대한 반감이 막강했냐면 여몽전쟁때도 민란을 터트려 나라를 뒤집으려고 했는데 이때 도원수로 삼으려고 했던게 경주 출신에 전주로 이사를 했던 김경손이었다. 물론 무신의 난과 하등 다를게 없는 민란인 백적의 난도 평시가 아닌 전시에 했던 반란이라서 걍 주동자는 물론 가담자까지 죄다 쳐죽여도 할말이 없을 지경이다. 제 아무리 왕씨 고려가 자신들을 핍박하고 미워해도 무신정권이 싫어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몽전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란 중에 그짓을 했기에 이건 무신정권이건 왕조시대건 근대화 시대건 전쟁 중에 했던 짓으로 죄다 극형으로 사형 내지는 무기징역이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