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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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봐라


원래 문서 내에서 조목조목 비판하려고 했는데. 워낙 문서가 개판이고 필력이 종범이라 못 배워먹은 티가 역력해서, 문서 내에 비판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비교적 정상적인 관점에서 임나일본부설을 분석한 문서를 보고 싶다면 임나일본부설/반박 항목을 참고바람. 뭐 싫으면 임나일본부설/반박/반박의 반박 문서라도 만들든가...


병림픽[편집]

일본인 : 한국인은 믿기싫으면 믿거나 말거나 하세요. 일본사학계[1][2],한국사학계[3][4],미국사학계[5][6],중화인민공화국[7]

한국인 : 쓴 사람은 일본사학계, 미국사학계, 중국사학계, 한국의 가야, 일본 갑주 전공자들에게도 통한다고 주장하고는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명칭 표기[편집]

임나任那,미마나Mimana,일본부日本府,야마토부府[8]님나,주포主浦[9]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명칭에 대한 한국측의 오해[편집]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한반도 남부의 가야 지방에 설치된 야마토 제국의 관청이다. 글자로는 임나일본부지만 읽을 때는 '미마나 야마토부府'라 읽게 일본서기에 읽는 법 표기가 다 되어있다. 예를 들자면 일본서기 경행천황기의 일본무존日本武尊은 '야마토타케루 '라고 읽어야한다. 그러니까 당시에 일본이란 국호는 없었으니 임나일본부는 구라라는 한국사학계의 우기기는 말이 안된다. 머 한자를 음독만 하지. 훈독은 할줄도 모르는 한국인에겐 고차원적 지식이다.

더군다나 백제 말 묘지명에서 야마토를 일본日本이라고 직접 글자 표기한게 나와서 현재 일본 2ch에선 임나일본부란 표기 조차 아무런 문제가 없네하고 환호하고있다.

하지만 국뽕 사학계는 "백제의 원래 국호가 일본日本이었군!"하며 정신승리를 하고있다.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고고학적 증거[편집]

야메떼.png대가야임나군.jpg야마토갑주.png

그들에 따르면, 서기 4세기 후반부터 서기 6세기에 이르기까지 전라도~경상도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는 충각투구,미비부주 투구,대금식판갑은 몽땅 야마토가 원산지라는게 한일사학계 정설이다.[10] 이에 대해 일본사학계는 야마토군이 한반도로 파견되어 가야 상인들을 지켜주는 혼마찌를 김해,고령에 설치하고 가야상인 보호해주는 대신 세폐를 받고 고구려 약탈병들을 맴매하고 고구려도 지속적으로 약탈 괴롭히기하며 전라도에 열쇠모양 대형무덤을 잔뜩 짓고 전라도에서 야구빠따를 득템하여 규슈 일본인을 마구마구 이주시키고 신라를 꼬봉으로 삼고 가야의 쓸만한 도자기.. 도공.. 심지어 철기장인들,반도 노예들까지 강제로 데려가는 등 많은 업적들을 이루어 발달된 고대왕조로 쑥쑥 진화했다 하는게 정설이다. 물론 개뻥이다.

광개토호태왕이 증언하는 임나일본부[편집]

신묘년.pngWww.jpg
광개토태왕비 원문,번역문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가라,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국뽕 한국인들의 광개토태왕비 번역 :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오자 (고구려가) 백제와 가라,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국뽕 한국인들은 신기한 한문 해독 스킬을 터득했다. 중국,일본의 어느 사학자들도 이런 국뽕 한국인들의 해독법은 절대로 쓰지않는다.

응 원문에도없는글자만들어서 해석하고

바다를넘어왔다는기록도없을뿐더러

ㅁㅁㅁ라 인데 고구려는 가야를 임나가라라불럿다

왜가 가야신라를 먹었다면 저 3글자는 임나라가를너면 신라가빠지고 신라를넣으면 임나가라가없다

둘을같이묵었다는건 york랑 new york이랑 같은도시란급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반도 관리 노예들[편집]

신라왕.jpg
신라 464-02 일본서기 웅략천황 08년 신라왕은 밤에 고려군이 사방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를 듣고 적군이 모두 신라 땅에 들어왔음을 알았다. 이에 사람을 시켜 임나왕에게 “고려왕이 우리나라를 정벌합니다. 지금의 시기는 깃대에 묶어놓은 술과 같고 나라의 위태로움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보다 더하여 나라 운명의 길고 짧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일본부 행군원수(日本府 行軍元帥)에게 구원을 청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임나왕이 선신반구, 길비신소리, 난파길사적목자에게 권하여 가서 신라를 구해주도록 했다.

"(신라왕이 왜왕에게 왕자 미사흔을 인질로 바쳤고 그래서 박제상이) 드디어 곧바로 왜국에 들어가 마치 고국을 배반하고 온 사람처럼 하였으나, 왜왕이 그를 의심하였다. 한편 백제인이 앞서 왜에 들어와 참소하기를 ‘신라와 고구려가 왕의 나라를 침입하려 모의한다.’고 하였다. 왜가 마침내 군사를 보내 신라 국경 밖에서 순찰하게 하였는데, 때마침 고구려가 침입하고 아울러 왜의 순찰병을 잡아 죽였다. 이로 인하여 왜왕은 백제인의 말을 사실로 여겼다."-삼국사기 박제상전


백제 554-12 일본서기 흠명천황 15년 (신라에 침략해 온 백제의 성왕을 죽인 뒤)... 이 때 신라 장수들이 백제가 지쳤음을 모두 알고 드디어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한 장수가 “안 된다. 일본 천황이 임나의 일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백제관가를 멸망시키기를 꾀한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임나의 일이란 527년 이전 어느 때인가에 신라가 임나의 남가라와 탁기탄을 차지한 것을 말한다.)

임나일본부 지도[편집]

케임브리지.jpg케임브리지2.jpg케임브리지3.jpg
"야마토의 영향력은 국가의 서부에까지 미쳐져서 먼 코리아의 남부의 미마나Mimana(임나任那의 일본식 발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A History of Japan' :저자 R.H.P.Mason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John Caiger - 시드니 대학교, 런던대에서 공부하고 마찬가지로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호주국립대)에서 박사학위

답이 없는 문서[편집]

이 문서은 리그베다 위키구스위키 소개 글에서 언제부터인가 답이 없는 항목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적절하다

사실 구스위키의 이용자들도 역갤에서 자주 쓰는 이런 류의 일뽕맞은 내용들을 재미도 없고 진지병에 빠진 똥같은 글이라 하고 있기 때문에 괜시리 진지해질건 없다. 근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 자체가 씹노잼. 어차피 여긴 이제 똥밖에 없어.. 사실 역갤빼고 아무도 이 문서를 좋아하지 않을거 같다.


  1. "한반도 남부 출토 대금식 갑주의 제작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일본인 연구자들이 야마토 왕권의 중심지 카와찌 지역을 제작지로 파악하고있다."- 가야사정책연구회위원,한일역사공동연구회위원 박천수의 새로 쓰는 고대한일교섭사
  2. "3세기 말부터 4세기 초 왜倭는 야마토를 중심으로 북부 규슈를 포함하여 통일국가 체제를 갖춘 후 한반도로 출병하였다. 한반도 경상도 남부,전라도에 야마토의 상비군이 주둔하여 현지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동경대학 고고학연구실 교수 역임 사이토 타다시 "4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야마토의 조선 원정은 백제,신라를 야마토의 지배 하에 두고 임나 열국을 속국으로 삼았고, 이 때 귀화인과 함께 대륙의 선진 문화와 기술,물자가 일본에 들어오며, 또 4세기 말에서 5세기 전반 오진,닌토쿠 왕조가 융성한 것은 조선 정복에 성공했기 때문으로 이에 따른 대륙문화의 수입이 일본문화를 고양하였다." - 저명한 문헌사학자 나오키 코지로 "야마토 왕조로의 마구,승마 습속의 이입은 야마토 왕조의 한반도 남부 경영에 의한 것이다." - 교토대학 고고학연구실 교수 역임 오노야마 세쯔 "야마토는 한반도에서의 패권을 획득하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 중국을 본뜬 독자적인 제국帝國을 형성을 지향하였다. 야마토는 중국 왕조를 대신하여 야마토 왕王의 덕화德化를 통해 한반도의 정치적 질서를 수립하려 하였다. 한반도 남부 김해시 대성동고분군 수장묘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일본열도산 문물(야마토의 신물 파형동기 방패)은 이를 증명한다."- 야요이.고분시대 고고학자 테라사와 카오루 "지금까지도 일본 고고학계는 한국사학계,일본의 일부 문헌사학자의 야마토의 한반도 남부 경영 불가不可 설은 고고학적 출토 결과에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하고있으며 한반도로부터 야마토로의 문물 도입은 야마토 왕권에 의해 이루어진 임나 경영 혹은 침략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래 일본 사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 란 명칭은 안보이지만 4세기 후반 야마토 왕권이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통하여 철을 포함한 필수 물자와 유통기구를 장악함으로써 일본열도 내의 패권을 확립하여 고대국가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각지 전방후원분들에서 발굴된 한반도산 문물들 ,한반도 계열 금동제 장신구,마구는 야마토 왕권이 한반도를 경영 또는 침략해서 반입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야마토 왕권은 5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지역을 거점으로 한 군사활동을 통하여 기술자 집단과 금동제 장신구, 철소재,무구,마구 등 물자의 유통을 장악하고 이를 가신들과 일본열도의 호족들에게 분여함으로써 국내 지배를 더욱 강화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동제 장신구와 마구 등의 한반도산 금공품을 부장한 야마토 왕조 전방후원분들의 무덤 주인공들은 야마토 왕권의 한반도 경영 또는 군사적 활동에 참여한 무장武將이라는 것이다. 이는 문헌으로도 증명되는데. 그것이 광개토왕비 신묘년 기록,삼국사기의 왜倭의 한반도 남부 침공 기록,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등의 야마토의 한반도 남부 경영 기록,송서 왜국전의 왜왕들의 한반도 남부 영토 주장 상표문이라고 주장.." 출처 : 가야사정책연구회위원,한일역사공동연구회위원 박천수의 새로 쓰는 고대한일교섭사
  3. "일본열도에서 대금계 갑주인 판갑,충각부주,미비부주 등의 중기형 갑주 ....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금계 갑주의 제작지를 일본열도로 보고자 한다. ... ..대금계 갑주가 한반도산이라 가정하였을때 발생하는 3가지 의문... 첫째. 열도에 들어온 갑주가 모두 대금계 갑주뿐인 점, 둘째, 한반도 내에서 대금계 갑주가 소수인 점, 셋째, 종장판갑과 대금계 판갑과 같은 다른 계보의 갑주가 왜 한반도에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대금계 갑주를 한반도제로 이해하기 곤란하며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로의 이입을 상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금계 갑주의 제작지를 일본열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한반도 출토 왜계 갑주의 분포와 의미' - 부산박물관 '김혁중')
  4. "필자는 종장판계 갑주에서 대금식 갑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형식이 현재 한반도 내에서 확인되지않고 대금식 갑주가 시기에 따라 일본열도와 교류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열도에서 제작되어 반입된 것으로 본다." - 가야사정책연구회위원,한일역사공동연구회위원 박천수의 새로 쓰는 고대한일교섭사
  5. 세계 50개국에 출판되는 옥스포드대학 출판사 제작 교과서에는 "5세기의 일본 세력은 조선반도 남부까지 지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프렌티스홀사의 미국 교과서 세계문화에는 "서기 400년정도, 일본은 일정한 씨족이 연계하여 일본의 대부분을 통일하고 조선남부의 지역을 통치하기에 이르렀다"고 기술, 캐나다, 호주 마찬가지. 또한 콜롬비아 대학의 온라인 백과사전이나 미의회도서관에는 "고조선은 12세기에 중국인 기자가 와서 세운 나라였는데, 당시 남부에는 일본 야마토정권의 지배하에 있었다"라고 쓰여 있다.
  6. "야마토의 영향력은 국가의 서부에까지 미쳐져서 먼 코리아의 남부의 미마나Mimana(임나任那의 일본식 발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A History of Japan' :저자 R.H.P.Mason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John Caiger - 시드니 대학교, 런던대에서 공부하고 마찬가지로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호주국립대)에서 박사학위
  7. 중화인민공화국 상해인민출판사가 펴낸 [세계사강]은 " 신라는 반도남부에서 이른 시기부터 장기간에 걸쳐 왜인의 기반이 된 임나 지구를 회복했다" 고 기술
  8. 일본서기
  9. -삼국유사 가락국기,한국 언어학계의 임나의 어원에 관한 설
  10. 1번 2번 3번 4번 주석 참조

주석다는데 진지병 걸린거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