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이동: 둘러보기, 검색

충무공[편집]

g_lee.jpg

남한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매우 위대한 장군. 그 이름 충무공 이순신

생애[편집]

1545년에 태어나 덕수 이씨로 무과에 급제하여 처음 발령난 곳이 녹둔도[1]였고 거기서 이일의 부장으로 종군했다. 그 때 오랑캐가 쳐들어왔는데 이일은 도망가고 이순신은 남아 싸워서 이겼다. 하지만 이일은 이를 정반대로 날조해서 장계를 올렸고 이 때문에 이순신은 이일의 모함으로 첫 백의종군을 한다. 하지만 다른 군공을 세워 백의종군에서 벗어났다.

이와중에 류성룡은 당대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 칭송받던 이일신립을 잡장이라고 깠다. 이일은 위의 일로 잡장이라 깠고 신립은 직접 대면해서 왜군들은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서양에서 들여왔는데 류성룡이 신립에게 대조총전술을 연구해보라고 조언했으나 신립은 자기가 무조건 이긴다며 이를 생깐 일로 잡장이라 깠다. 그 류성룡이 이순신, 원균, 권율을 천거했는데 선조는 권율만 육군에 남기고 이순신은 전라도에, 원균은 경상도에 각각 배치했다.

전라좌수사가 된 이순신은 한산도에 출병하기 하루 전날 밤 탈영병 황옥현을 잡아 참수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한산도에 출병해서 왜군을 복날 개패듯 쳐패버렸다. 이걸 시작으로 그야말로 전설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왜병 중 하나가 고의로 상투를 조선식으로 틀고 참전했는데 이에 조선인이 왜구의 앞잡이가 된 걸로 착각한 이순신이 열폭하다가 조총에 어깨를 맞고 만다.

계속되는 승전보를 올려 조선측의 사기를 드높였다. 이 덕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진급했고 결국 일본쪽에서는 휴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 사이에 이몽학이라는 왕얼자 새끼가 반란을 일으키다 잡히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게 원인이 되어 이순신은 선조의 질투와 의심을 사게 된다.

휴전한 사이에 명과 일본이 협상을 하는데 협상이 결렬돼서 일본은 또 전쟁을 일으켰다. 근데 애초에 협상이 결렬될만 했다.

  • 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황후로 보내라.
  • 조선 8도 중 4도를 일본에게 내놔라.
  • 무역증서제를 부활하라.
  • 조선의 왕자와 대신들을 볼모로 보내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런걸 협상조건이라고 디밀었으니 누구인들 결렬이 안될까? 당연히 결렬될 수 밖에 없다.

전쟁을 재개했지면 일본은 여전히 이순신에게 얻어터지기만 무한반복했다. 결국 고니시 유키나가가 계략을 짜서 간첩 요시라를 시켜 김응서에게

나 씨팔 조선 정벌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 가토 기요마사 씨팔쌔끼부터 죽여버려야겠다. 아오 씨팔! 가토 새끼 때문에 도저히 못살겠다. 제발 가토 새끼를 좀 죽여줘라. 때마침 가토 새끼가 칠천량에 출몰하는데 너네들의 만병통치약인 이순신을 시켜 가토를 토벌해라. 물론 이건 정이대장군한텐 비밀로 하고 가토만 죽여주면 내 큰 상금을 주겠다. 이오 씨팔! 가토 기요마사 그 이름만으로도 성질뻗치네 씨팔!


라고 말하며 고니시 유키나가의 심정을 전달하게 했다. 이를 전해들은 김응서는 그걸 또 하필이면 좆병신 형제인 윤근수 윤두수 형제에게 말했고 이 윤씨 형제는 선조에게 그걸 또 그대로 전달했다. 눈이 돌아간 선조는 이순신에게 무조건 토벌하러 가라고 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노가리나 까는 어린이들이 현장 상황을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당시 칠천량은 지역도 암초인 데다가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출병이 불가능했다. 가면 무조건 깨지는 거였다. 그래서 이순신은 출병을 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었는데 윤씨 형제는 이를 선조에게 고자질해서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시켰다. 이 때 이순신을 죽이네 사네 온갖 지랄 생쑈를 벌였으나 정탁이 상소를 올려서 자기가 보증할 테니 살려두라고 해서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다. 이 때 권율은 이순신을 자기 부하로 쓰겠다면서 자기네 집 텃밭에서 농사나 짓게 했다. 이 시기가 이순신 생애 최악의 순간인데 본인은 파직당하고 아들 이면은 전사하고 거기에 모친상까지 당했다.

문제는 원균이 자기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면 다 이길 수 있다고 구라를 쳐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뒤 먹튀했다. 이에 열받은 도원수 권율은 원균에게 조정을 갖고 논 죄로 곤장을 팼다. 궁디팡팡을 당한 원균은 더 얻어터지기 전에 무리하게 출병해서 홀라당 다 까먹고 만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이순신을 다시 복직시켰으나 조정은 이순신에게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순신은 포기하지 않고 수군에 남아있으면서 12척밖에 안되는 배로 명량 앞바다에 나가서 130척이나 되는 일본 수군을 복날 개패듯 쳐패버렸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남해의 조류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조류가 일자마자 일본 수군을 유인해서 모조리 수장시킨 것이었다.

1598년.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임진왜란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당연히 이순신은 나라를 패탄낸 이들을 곱게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이에 시마즈 요시히로가 와서 이순신과 맞섰으나 패해서 죽었고 이 사이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도주에 성공했다.

이순신의 최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 진두지휘하다 총에 맞아 죽었다.
  • 당시 이순신은 전쟁이 다 끝나가니까 갑옷을 안입고 있다가 총에 맞았다.
  • 이일, 윤근수, 윤두수 등에게 하도 시달려서 그냥 물에 뛰어들었다.
  • 사실 이순신은 안죽었는데 죽었다고 뻥치고 몰래 빠져나와서 여생을 농부로 살았다. 그 증거로 15년 뒤인 1613년에 이순신의 묘가 아무 이유없이 800m나 이장했다.

어록[편집]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무의공[편집]

1554~1611

전주 이씨로 양녕대군의 직계 후손이라 하마터면 임금이 될 뻔할 수도 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촌수가 너무 멀다. 위의 충무공 이순신의 부장으로 종군하면서 군공을 세웠고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흉탄을 맞자 이름이 똑같다는 것을 이용해서 자기가 충무공 행세를 하면서 진두지휘해 노량해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1. 백두산 기슭에 있는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