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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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갤의 영원한 감동님
이만수(李萬洙), Lee Mansu
이만수팬티쇼.jpg
생년월일 1958년 9월 9일
국적 라오스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지 강원도 철원군
학력 중앙초 - 대구중 - 대구상고 - 한양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프로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2~1997)
프로경력 1983 한국프로야구 MVP
1983~1987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지도자경력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포수 (2000~2006)
SK 와이번스 수석코치/2군감독 (2007~2011)
SK 와이번스 감독 (2012~2014)
삼성 라이온즈 종신감독 (2015~)
별명 헐크, 감동님, 유다, 돌만수, 감통님, 개만수,
좆만수, 통만수, 감돌님, 종신감독

개요[편집]

이만수는 前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이며, SK 4대 감독으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前 야구 감독이다.

한국 최초 메이저리그 스탭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한국 최초 종신감독
감동니뮤ㅠ의 창시자
하지만 SK 와이번스 팬들에게는, 인천야구의 역적이며 금지어

별명[편집]

원조 별명으로는 헐크가 있고, 떠벌이라는 별명도 선수들사이에선 통한 편. SK의 감독직을 맡고 나서는 유다, 다중이, 감돌님, 개만수, 좆만수 등의 비속어가 주류를 차지했으나 야갤에서 사랑하는 감독인 만큼 감동님, 종신감독 등의 별명 또한 많다.

임경완, 진해수 등의 영입으로 인하여 팔도폭탄 수집가라는 별명도 붙었으며 자신의 이름도 폭탄화되어 이만수소폭탄으로 불리는 날도 허다하다. 2014년엔 용병 루크 스캇과의 언쟁에서 기인한 코워드(카워드, Coward), 거짓말쟁이(Liar) 라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하지만 주로 불리는 표현은 갓동님.

그 외에 쓰는 별명이라면, 공을 쇠똥구리처럼 비비면서 올라와서 갓똥구리라든가, 다음 행선지랍시고 삼동님, 겆동님, 쥐동님, 칰동님 등을 붙인다든가, 매일 진다고 메이저 야구가 아닌 매일져 야구 따위의 별명이 있다.

선수 시절[편집]

현역[편집]

한국 프로야구 원년멤버 중 하나로 무려 16년을 활약. 원년선수 중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선수이다. 당연히 통산 성적도 어마어마하다.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박경완과 더불어 '누가 포수 원탑인가' 가 꽤 오래 썩힌 떡밥이기도 하다. 삼성 라이온즈의 80년대 전성기를 함께한 포수인 만큼, 구단 차원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

수비 포지션이 수비부담이 굉장히 높은 포수이지만, 그의 공격스탯은 실로 놀랍다. 홈런왕 3번, 타격왕 1번도 모자라서 통산을 놓고 보면 5034타석에서 타율 .296, 타점 861, 홈런 252, OPS .907을 기록했다. 통산 OPS가 9할이다. 포수인데! 거기다 조정OPS는 1.55. 그야말로 괴물 타자였다. 그리고 굉장한 선구안의 소유자로, 삼진도 적게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수비 능력은 논란이 많은데, 역대 감독들은 줄지어 그의 수비 능력을 저평가했다. 백인천이 한국시리즈에서 다음 경기에 이만수를 선발 포수로 출장시키려고 일부러 홈런을 맞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성근 또한 이만수 팔뚝의 근육의 움직임을 보고 사인을 간파할 정도였다고 강연에서 귀에 딱지가 얹도록 말한다. 하지만 클래식 스탯으로 보면 도루저지율, 실책율 등 여러 레전드 포수들과 여타 다를 게 없으며, 블로킹 또한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다만 지금의 투수와 당시의 투수에 수준차이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은퇴 이후[편집]

저런 레전드 선수이지만 의외로 은퇴식도 없이 구단을 쫒겨나다시피 나왔다. 90년대로 들어가면서 그의 기량이 점점 하락하자 지명타자로밖에 쓸 수가 없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중용되었지만, 대타로 들어서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무릎부상이 나면서 1997년을 끝으로 은퇴. 구단은 재계약을 포기했다.

저런 전설적인 선수를 은퇴경기는 커녕 은퇴식도, 심지어는 별도의 환송 행사도 없이 내 쫒아버렸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아직도 이 사건을 떠오르면 이를 바득바득 간다. 이는 선수의 성적만을 토대로 선수를 평가하여, 노쇠한 레전드를 홀대하는 삼성 프런트가 문제였고, 그로 인해 이만수가 삼성과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또다른 레전드인 양준혁의 은퇴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뤄졌으며, 다시는 저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지도자 입갤[편집]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포수 (2000~2006)[편집]

그렇게 쫒겨나듯이 떠나간 미국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준비하였다. 마이너리그에서 코치 생활을 했으며 여기서 발굴한 선수가 한국에서도 활약한 틸슨 브리또 선수이다.

또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화이트삭스의 불펜캐쳐[1]로 활동하면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하였다. 이 때 A급 공신으로 뽑혀서 무려 4억 원이라는 보너스를 받았다. 거기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원정경기에서 포수 엔트리에 결원이 생겨버려 비상대기용 선수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등록까지 되었다. 뭐 출전은 없었지만.

사실, 2003년쯤에 삼성 쪽에서 감독직 제의가 왔으나, 그 당시 김응용-선동열 라인이 너무 강력해서 삼성 쪽에서 없던 일로 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화이트삭스 측에서 급히 만들어준 자리라나 뭐라나. 이러나 저러나 레전드를 너무 함부로 굴리는 삼성이다. 그리고 저 때 이만수를 감독으로 선임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SK 와이번스에서 증명해낸다.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2군감독 (2007~2011)[편집]

2007년 김성근이 SK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구단 측은 스포테인먼트를 위해 이만수를 수석코치로 할 것을 명시했다. 수석코치 시절에는 팬 사이의 평가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차기 감독감으로 꼽는 팬도 많았다.실로 멍청이임을 알 수 있다. 스포테인먼트 정신에 입각하여 '팬을 우선' 하여 여러 이벤트를 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일화는 팬티쇼 사건이다.

좋은 시설에도 불구하고 문학구장이 만원이 되지 않자 속상한 이만수는 갑자기 가발을 쓰고 응원단석으로 난입하여 막춤을 췄는데, 갑자기 마이크를 들고 열 경기 이내에 문학이 만원이 되면,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돌겠다라는 폭탄 발언을 감행. 결국 8번째인가만에 진짜로 매진이 되자 진짜로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경기장에는 외인구단 주제가가 흘렀고 KIA 타이거즈 팬들도 저 사실을 알고는 박수로 화답했다. 김성근 감독은 나는 안 하고 싶었다 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저 위에 프로필 사진으로 띄운 것은 누군가가 팬티쇼를 반쯤 진심을 담아 삼성 버전으로 합성해 놓은 사진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도 끝나가는데, 바로 김성근 성적이 너무 좋자 재계약을 한 것. 당연히 차기감독으로 생각했던 이만수는 삐뚤어지기 시작했으며 김성근-이만수-프런트 간의 삼자갈등이 시작된다. 김성근은 이만수와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만수를 자꾸 2군 감독과 1군 수석코치로 잦은 보직이동을 시킨다. 2011년은 아예 2군에 짱박아뒀으며 결국 구단은 이에 반발했고 김성근을 짤라버린다.

2군 감독 시절에서는 선수들에게 대놓고 화를 내며 면박을 주는 모습이 팬들에게 자주 잡혔으며, 대구에서 내려온 팬들이 오면 갑자기 웃는 얼굴로 돌변하면서 대하는 장면까지 목격되었다. 그리고 2군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사실 2군성적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SK 와이번스 감독대행 (2011), 감독 (2012~2014)[편집]

구단은 김성근을 짜른 즉시 그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했다. 감독대행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일장연설을 하며 "SK 와이번스를 뉴욕 양키스, 보스턴, 그리고 시카고 컵스같은 구단으로 만들겠다" 며 망발을 떨었다.[2] 그리고 경기장에 나와서 훈련하는 선수들보고 무슨 365일 훈련만 하고 있냐. 쉬어라 라며 훈련하는 선수들을 혼내키기도 했다.

쉬만수.jpg

문제의 쉬만수 사건. 자신은 '코치가 없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고 증언했으나, 정작 옆에 정경배 코치가 있었다. 코치마저도 무시해버리는 대행의 위엄이다.

그리고 팬들은 김성근을 짜르고 이만수를 감독에 선임한데 대해 불만을 터트렸고, 결국 문학구장에 방화까지 나고, 이만수는 유다란 영 좋지 않은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팀을 어찌어찌 잘 추슬러 가을야구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고, 5연속 코시 진출 위업 달성. 결국 다음 해 3년 계약, 정식 감독으로 취임한다.

2012년은 초반에 팀이 삽을 대량으로 푸고 한때 6위까지 떨어진데다 과도한 리액션으로 타팀과 언론의 포화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6연속 코시 기록 달성. 또 삼성에게 져서 준우승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재활중인 김광현을 무리하게 끌어다 써서 줄창나게 까였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성준 코치에게 니가 감독하든가 그러면이라며 폭언까지 했다.

2013년은 이만수의 무능함이 제대로 드러난 해였다. 지난 시즌에서 빠진 불펜멤버는 정우람 하나밖에 없는데 불펜진은 연일 방화를 일삼으며 무너졌고 타선은 완전한 물타선화. 선발투수는 세든과 윤희상을 제외하면 부진에 부진을 일삼았다. 결국 6위까지 추락, 가을야구 희망이 사라졌다. 시즌 막판에 보여준 개병신같은 모습에 힘입어 경질설이 나돌고 기업 고위층에서 이만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흘러나왔으나 어쨌든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2014년은 전년도의 문제점이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팀 케미를 저해시키는 행동까지 여기저기서 속속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이 감독은 레임덕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특히 용병타자 루크스캇이 대놓고 항명을 하면서 더더욱 이 설은 신빙성을 얻고 있다. 불펜투수들은 그간 혹사에 못이겨 하나둘씩 나자빠졌으며 박희수를 시작으로 박정배가 부상으로 이탈. 진해수는 체력에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필승조라는 세 놈들은 지들끼리 분식을 하는 써커스에 가까운 상황까지 일어났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비 역사까지 8개 구단 팬들의 찬양 속에 새로 쓰고 있다. 팀의 구심점을 못 잡고, 선수단을 장악하지도 못했으며, 그것을 운영하지도 못하는 병신3콤보가 작렬하는 해다.

이 때 올스타전에 코치 신분으로 출장했는데, 다른 감독들이 박수를 받는 반면에 이만수 혼자 간간히 야유가 터져나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아무 관계없는 기아 팬들까지 '저런 감독은 수준미달이야' 라면서 야유에 동참하기도. 근데 그쪽 선동열 각동니뮤ㅠ부터 신경쓰시지?

후반기 기적같은 스퍼트로 야갤의 만리타들은 하나같이 재계약을 염원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열차는 떠났다. SK에서 재계약 불가 의사를 밝히며 후임으로 제 5대 김용희 감독을 선임하였다. 현재는 선교 겸 야구 전파 목적으로 라오스로 떠났다.라오스가 한때 불교국가라는 건 논외로 둬야 하나[3]

삼성 라이온즈 종신감독 겸 라오스 명예국민(2015~ )[편집]

결국 라오스로 귀화했고 모든 삼성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종신감독으로 취임하였다.

해설자로 (2015 ~ )[편집]

2015시즌부터 MBC SPORTS+ 객원해설로 제 3의 야구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5년 4월 17일 kt 위즈 vs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로 데뷔를 했다.

세줄요약[편집]

  1. 이만수 병신
  2. 이만수 돌대가리
  3. 이만수 삼성 종신감독 앙망



  1. 한국에서의 인식과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정식 코치로 취급해주는 팀이 많다.
  2. 시카고 컵스는 100년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구단이다. SK가 3년간 못했으니 이제 97년 남음 개꿇ㅎㅎ.. 거기다 자신은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 구단 화이트삭스에 있었다. 자기가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는 듯
  3. 물론 공산화된 후 한때는 종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이루어진 후부터는 다시 그들이 믿었던 소승불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