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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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출생 1982년
북한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 정치범수용소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인권 운동가

신동혁 (출생 당시 이름: 신인근, 1982년 ~ )은 유일하게 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고 그곳을 탈출한 북한인권 운동가이다.

신동엽인줄 알았네ㅡㅡ

생애[편집]

가족[편집]

그의 부모인 아버지 신경섭과 어머니 장혜경은 수용소 내에서 상으로 주어지는 '표창결혼'이라는 것으로 맺어졌고 자식으로는 형 신희근과 신인근(당시 신동혁의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신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가족은 '가족'이라고 할수 없는 이상한 구조였다. 가족들은 각자 분리수용 되었고, 이들은 일을 열심히 했을때만 유일하게 서로 만날수 있었으며 그 외에는 절대 만날수 없었다. 어릴 적 신동혁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신동혁은 그저 어머니를 "먹을 것을 위한 경쟁자"로만 보았고 어머니의 음식을 뺏어먹기도 했다.

최소한 신동혁의 아버지 신경섭씨를 제외하고 이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수용소 생활[편집]

신동혁은 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 그가 9살때 학교에서 주머니에 밀 이삭 다섯개를 숨겼다는 이유로 군복 입은 '선생님'에게 몽둥이로 죽을 때 까지 폭행한것을 목격했으며, 대략 10살때 모내기 작업에 투입된 신동혁은 아픈 그의 어머니를 돕다 일을 제대로 할수 없었다. 간수는 신동혁의 어머니를 점심시간인 한시간 반동안 논두렁에서 손을 들고 있으라고 시켰으며, 신동혁의 어머니가 기절하기 전까지 강제로 일을 시켰다. 신동혁와 그의 어머니는 '사상투쟁회의'에서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약 40명에게서 비판을 받았다.

12살이 된 신동혁은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이때부터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매일 모내기나 거름을 운반하는 강제노동을 당했다. 1998~1999년 신동혁은 발전소 건설작업에 투입되었다. 하루에 네다섯명이 죽는 위험한 환경에서 그는 심지어 한번에 8명이 죽는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또한 콘크리트 벽 공사 작업에서 다섯명이 깔려 죽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멈추지 말고 일을 하라는 보위부원들의 지시 때문에 시체를 수습하지 못했다.이런 일들은 수용소 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라고 신동혁은 말한다.

2004년 그는 보위지도원들이 이가 많아 약을 줄테니 그 약으로 목욕을 하라며 수용자들에게 약을 나눠준것을 목격했다. 신동혁의 증언에 따르면 그 약으로 목욕을 한 사람들은 1주일 후 붉은 반점이 생기다가 약 한달 뒤엔 살이 떨어져 나갔으며, 그들이 죽기 직전 트럭 한대가 와서 그들을 전부 '치워'갔다고 한다.

"민족 반역자 장혜경과 신희근을 처단한다."[편집]

1996년 당시 14살이었던 신동혁은 그의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계획하는 것을 엿듣게 되고, 포상을 받기 위해 수용소 간수에게 밀고한다. 그러나 간수들은 신동혁을 고문하였다.[1]신동혁은 불 위에 매달려졌으며, 배에 꼬챙이를 찔렸다.[2] 고문 후 신동혁은 작은 감방으로 이감 되었는데 그 방에 있던 김진명이라는 나이 든 수감자가 "너는 어리니까 살려면 더 먹어야 한다" 라고 하면서 그의 식량을 몇달간 덜어주고 고문당한 신동혁의 상처를 치료해줘 신동혁은 건강을 회복할수 있었다. 그는 신동혁에게 바깥 세상의 이야기를 해줬으며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등 신동혁에게 친밀한 감정을 느꼈던것 같다. 신동혁은 지금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하며 자신을 낳아준 부모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한다고 회고했다. 신동혁의 증언에 따르면 김진명은 다른 수감자와 달리 머리를 깎거나 음식을 더 받는 등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 김진명은 수용소 밖에 있을때 '특별한' 사람이었던것 같다. 간수의 명령으로 지하 감옥에서 나가기 전 김진명은 그에게 언젠간 다시 만날수 있을것이라며 손을 한번만 잡아보자고 말했다. 그 이후로 신동혁은 김진명을 다시는 만날수 없었다. 지하 감옥에서 풀려난 신동혁은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신경섭은 고문당해 다리가 부러졌다. 이 고문 때문에 신경섭은 숙련공에서 비 숙련공으로 강등당했다.

차를 타고 처형장으로 이동한 신동혁과 아버지 신경섭은 어머니 장혜경과 형 신희근이 공개 처형당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민족 반역자 장혜경과 신희근을 처단한다." 이 말이 끝나자 그의 어머니는 교수형을 당해 죽었고, 형 신희근은 총 세발을 맞아 죽는다. 이때 신동혁은 슬픔을 느끼지 못했으나 탈북 후 자신이 어떤 일을 한건지 알게 되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신경섭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밖에서 온 사람과 만나다[편집]

2004년 10월 신동혁은 평양에서 온 박영철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수용소 밖에 있을때 동독과 소련에 유학을 다녀 온 엘리트였으며 평양 태권도수련전당의 최고 책임자였고 평양의 넒고 큰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북쪽으로 여행을 하다 국경을 넘어 중국에 잠시 체류하다 선거기간이 다가오자 투표를 하기 위해 평양으로 오던 중 검거되어 기독교로 개종한 남한의 첩자라고 몰려 개천 정치범수용소에 잡혀오게 되었다. 그는 신동혁에게 평양, 소련, 중국,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려 주었으며 돈의 개념도 알려주었다. 또한 돼지고기소고기, 닭고기, 쌀밥과 같은 음식 이야기를 자주 했으며 신동혁은 이 이야기를 듣고 수용소 탈출을 갈망하게 된다. 그는 신동혁과 단둘이 있을 때 노래 하나를 자주 불렀으며 신동혁에게 가사를 알려 주기도 했는데, 이 노래가 신동혁이 처음 들은 노래라고 한다.

탈출[편집]

박영철과 신동혁은 탈출을 계획한다. 탈출하기 하루 전 2005년 1월 1일 설날 신동혁은 아버지 신경섭을 마지막으로 만나러 갔다. 그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인 아버지를 증오했다. 헤어질때 까지 그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2005년 1월 2일 철책 보수작업에 투입된 박영철과 신동혁은 탈출을 시도하였다. 박씨가 먼저 탈출을 시도했으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책에 닿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신동혁은 죽은 박씨의 몸을 방패로 삼아 철책을 통과했으나 다리에 화상을 입게 된다.

탈출에 성공한 신동혁은 민가에서 쌀 한가마니를 훔쳐 담배와 음식으로 바꿨다. 그는 주민들이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 대해 많이 대화하는걸 본 신동혁은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했고, 국경 경비대에게 담배와 음식을 뇌물로 줘서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중국을 떠돌며 일을 하다 상하이의 한국 음식점에서 그를 본 한국 기자가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상하이 주중 한국 영사관으로 그를 데려갔다.

한국으로[편집]

주중 한국 영사관에서 6개월을 지내다 한국으로 도착한 신동혁은 2주 동안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후 미군 정보부에서 조사를 시작해 매튜 E. 맥마흔 병장의 질문을 받았으며, 그는 신동혁이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맥마흔 병장은 서둘러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 보고서 덕분에 그동안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국 정보공동체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조사를 마친 후 신동혁은 모든 탈북자들이 필수적인 교육을 받는 하나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자동차 운전부터 세계사까지 매우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적응 중 수용소 시절의 악몽을 계속 꾸게 되었고 결국 교육을 중단하고 그는 인근 병원의 정신과에 입원해 몇달 동안 치료를 받았다. 치료 덕분에 그는 악몽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동혁은 하나원에서 교육을 수료받은 후 자신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출간했다. 그러나 3000부를 찍었는데 정작 팔린건 500부 밖에 안됬었고, 설상가상으로 그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한 신동혁은 미국으로 가게 된다.

미국으로[편집]

미국으로 건너간 신동혁은 NGO '링크'에서 일하게 된다. 링크에서 그는 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을 청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는 말 하기 어려운 매우 중요한 부분에서 '아주 가슴 아픈 이야기이며 여러분을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강연을 멈추는 등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링크에서 나오게 된다. 그는 미국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현재[편집]

2013년 6월 6일 신동혁은 국제 인권상을 수상했다.

과장된 회고록[편집]

신동혁은 자신이 개천 수용소에서 태어나 탈출할 때까지 계속 수감되어있었고, 그곳에서 어머니와 형의 탈출모의를 고발해 죽게 만들었는데 오히려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신동혁은 개천 수용소에서 태어난것이 맞기는 하지만, 6세 때 북창 수용소[3]로 이감되었고 어머니와 형의 탈출모의를 고발한 것도 북창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가족을 고발했는데 모진 고문을 가했다는 기존의 주장또한 사실이 아니었고, 받은 고문의 상당수는 2001년 1차로 탈북하여 중국에 갔다가 다시 북송되었을 때 받은것이라고 한다.관련기사
일단 확실하게 언론보도가 된 건 회고의 과장이지만, 신동혁의 수용소생활 전체가 거짓이라는 북한[4]과 종북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을 하기 힘들정도로 신동혁의 주장은 신뢰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신동혁의 회고가 모두 거짓이라고 가정해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실존한다는 것이다. 이미 인공위성 사진으로도 몇차례 확인된 바 있고, 신동혁을 빼도 정치범 수용소나 교화소에 수감되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많다.

기타[편집]

  • 정치범수용소의 학교는 매우 간단한, 노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매우 기초적인것만 교육시킨다. 이 때문에 신동혁은 간단한 돈 계산도 잘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적이 있다.
  • 신동혁의 손가락 중 유난히 짧은 손가락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수용소 내 피복공장에서 일하던 신동혁이 실수로 재봉틀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간수에게 절단당한 것이다.
  • 신동혁은 어릴 때 부터 강제 노동을 당해 감정을 습득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탈북 후 한국에서 한 검사 결과에 따르면 신동혁은 긍정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잘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사랑같은 감정은 무엇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 14호 수용소 탈출에 따르면 신동혁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개천 정치범수용소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1951년 신동혁의 숙부가 월남해서 그렇다고 한다.
  • 신동혁이 그의 어머니와 형을 고발 했다는 것은 최근 2013년에 '14호 수용소 탈출'과 CNN의 60minutes 인터뷰에서 공개된 것이다. 그 전까지 그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마 죄책감 때문에 그런것으로 추정되며 신동혁은 인터뷰에서 만약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갈수 있다면 형과 어머니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했다.
  • 신동혁은 형을 본 적이 3~4번 밖에 없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에도 형의 기억은 없었다고 한다.
  • 신동혁의 친척들은 대부분 수용소 안에서 죽었으며 사라져 갔다. 사촌누나와 숙모가 있었는데 사촌누나는 숙모가 보는 앞에서 성폭행 당한 후 죽었으며, 이 사건 후 숙모는 정신을 잃어 통곡하다 끌려 갔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이렇게 사라져 갔다.
  • 신동혁의 증언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수용소 주변 지형같은 정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나 60minutes 인터뷰에서 신동혁은 구글 어스로 자신이 태어난 곳과 공개 처형이 시행되는 공터를 찾아냈으며 '14호 수용소 탈출'에서는 그가 보위부원 자녀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한 위치, 공개 처형이 시행되는 공터, 경비 초소, 철조망, 신동혁이 일하던 피복 공장 및 기타 장소들을 그대로 지도에 표기했다. 또한 수용소 내의 생활이 매우 폐쇄적인 것을 감안해야 하며 그의 수기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그의 몸에는 아직도 고문으로 받은 상처들이 남아있다.[5] 이것을 거짓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것 같다.
  • 그는 14호 수용소에서 외운 규칙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인터뷰와 책[편집]

인터뷰를 한번 보는걸 추천한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47308437&rtes=y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3292618

세상 밖으로 나오다. 부제: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 통제구역

안타깝게도 이 책은 초판 3000부를 찍었으나 고작 500부 밖에 팔리지 않아 재정난에 빠진 신동혁이 한국 사람들은 북한 인권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하고 더 찍는것을 중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 가 구할 수 없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79929

14호 수용소 탈출. 부제:자유를 찾아 북한에서 서방까지 한 남자의 놀랍도록 긴 여정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오다의 실패 때문에 먼저 미국에서 Escape from Camp 14이라는 제목으로 판매되었으며, 최근 2013년 한국어로 번역 되어 한국에 출판되기 시작했다.


  1. 블레인 하든은 저서 '14호 수용소 탈출'에서 간수 하나가 공을 독차지 하기 위해 신동혁을 고문하였다고 추측한다. 실제로 신동혁이 다른 간수에게 밀고했다는 사실을 고문 중 알리자 신동혁의 공을 가로챈 간수는 다시는 볼수 없었다고 한다.
  2. 이때 생긴 흉터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고 한다.
  3. 평안남도 북창군에 소재해있다. 요덕 수용소나 개천 수용소에 비해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으며, 현재 폐쇄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 신동혁의 아버지를 얼굴마담으로 이용해서 우리민족끼리(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이지만, 북한의 대외선전사이트다)에 영상을 뿌린적이 있다. 관련기사
  5. 주의! 이 항목은 그의 인터뷰와 진술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전제로 하고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