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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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승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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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은 득도하여 욕심이 없으며 미천하여서 친척도 없으니, 대사로 임명하면 반드시 정실에 구애되지 않고 일을 마음먹은 뜻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인정하고, 드디어 일개 무명 승려인 그를 발탁하여 국정을 위임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 [고려사] 열전 신우


어린 시절[편집]

신돈(辛旽, ? ∼ 1371)은 당대의 혁명가와 요승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평가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출생은 미천하여, 화왕산 옥천사의 여종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이 성장한 절에서 자연스레 중이 되었다. 당시 법명은 신돈이 아니라 편조(遍照)였는데, 신돈이란 이름은 나중에 공민왕을 만난 뒤에 만든 속명이다. 사찰 여종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중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했다. 이때부터 삐뚤어진듯. 그랬던 그가 개경에 온 것이 언제인지, 또한 어떤 경위로 왕실과 접촉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신돈이 공민왕을 처음 만나게 된 시기는 1358년(공민왕 7년)인 것이 확실하다.

요승[편집]

삼단 변신 막장 땡중

1단계[편집]

공민왕의 눈에 들어 1365년(공민왕 14년)부터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호를 받고 국정을 담당하게 되지만 귀족들에게는 요승이라는 평판을 받게 된다. 그가 벌였던 개혁정책 때문인데,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설치하여 불법으로 노비가 되었던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양민으로 신분 상승시켜 주었던 것이다. 권문세족의 경제기반을 뒤흔드는 정책을 벌였기에 당연히 귀족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될 수 밖에 없다. 공민왕은 신돈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존의 과거 제도를 개혁하여, 관리를 뽑더라도 기존 권문세족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젊은 사람들 위주로 발탁했다.

요약 : 기존 권문세족의 밥상을 엎어버림.

2단계[편집]

[고려사]는 신돈을 요승으로 평가했다. 당시 항간에 ‘진사(辰巳)에 성인이 나온다.’라는 참설이 돌고 있었는데, 신돈은 자기가 개경에 다시 나타난 1364년이 갑진년이요, 이듬해인 1365년이 을사년이니 ‘참설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것이 내가 아니면 또 누구겠느냐?’며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카더라. 입으로는 성인인 척하면서 남을 중상모략하고 양가의 부녀자들을 갖은 구실로 유인하여 음행을 하는 인물로 보았다. 주지육림 속에 지내다가도 공민왕을 만나면 갑자기 돌변하여 좋은 말만 하고 채소나 과일만 먹으며 술 대신 차를 마시는 이중인격자로 묘사했다.

신돈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이 계속되자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어 왔던 권문세족들은 신돈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먼저 간관들이 일어나 신돈을 탄핵했고, 엄부흥과 이존오는 신돈을 이상한 인물인 양 소문을 내었다. ‘신돈은 양기를 북돋우기 위해 백마의 신장을 회 쳐 먹는다.’ 혹은 ‘지렁이도 산 채로 먹는다.’라는 소문을 퍼트렸고, 결국에는 ‘늙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했을 것’이라는 말도 흘렸다. 소문에 힘입어 이존오는 죽을 각오로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요약 : 스스로 성인이라고 소문내고 다님. 공민왕이 안보이면 술 마시고 고기 먹음.

3단계[편집]

이 무렵 신돈은 공민왕과 마치 허물없는 친구처럼 행동하였으며 선왕이나 왕후의 능에 배알할 때 백관이 모두 왕을 따라 무릎을 꿇고 절을 해도 신돈만은 홀로 우뚝 서 있을 정도였다. 원로 중신인 이제현이 나서서 “신돈의 골상은 옛날의 흉인과 유사하니 가까이하지 마십시오.”라고 간청까지 할 정도였다. 이 일로 이제현은 간신히 죽음은 모면했으나, 그의 문도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화를 당했다. 당시 신돈은 이제현의 문도들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과거시험 자체를 아예 폐지해 버렸는데, 이 때문에 제사를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소지나 축문 한 장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요약 : 자기와 친한 세력이 아니면 아예 벼슬도 못하게 막음. 왕 앞에서 버릇없게 절도 안함.

참살[편집]

공민왕은 왕위에 오른 이후로 권력이 한곳에 몰려 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부원세력뿐만 아니라 자기의 심복이라 할지라도 그 권세가 너무 강해지면 제거해 버리는 성향이 있었다. 신돈이 사심관제를 부활시켜 5도 사심관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자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하던 공민왕의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신돈은 왕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는 명분이 찾아졌다. 하지만 이 일은 곧 발각되었고 신돈은 체포되어 수원으로 유배되었다가 곧 참살당하고 말았다. 신돈은 “전에 대왕께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소승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세서까지 써 주신 일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오늘 소승을 닦달하시니 대왕의 맹세가 부끄럽지 않으신지요?”라며 죽기 직전까지도 역모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돈이 죽은 뒤 대궐 뒤켠 숲 속에서 꼬리가 아홉 달린 늙은 여우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런 소문 때문이었을까? [고려사]는 신돈을 반역 열전에 올리고 다음과 같이 그의 인물됨을 평했다.[2]


신돈은 사냥개를 무서워했으며 활 쏘고 사냥하는 것을 싫어했다. 또한 호색 음탕하여 매일 검정 닭과 흰말을 잡아먹고 양기를 돋구었다. 당시 사람들이 이러한 신돈을 늙은 여우의 요정(妖精)이라고 했다.

사극[편집]

하여튼 이 막장 땡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61부작으로 2005년 9월 24일에서 2006년 5월 7일까지 방영했다.[3]

짤 하나로 설명[편집]

신돈.jpg

신돈이 누군가를 농락하며 이리저리 순간이동을 하는데 그와중에 그를 보면서 "하하하하하" 하고 웃는 장면이다. 그 웃음소리가 매우 괴이하고 메아리같고[4] 비웃는 표정이 절묘하게 캡쳐되어 합성요소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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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내용의 출처는 네이버캐스트-신돈
  2. 물론 '고려사'라는 책 자체가 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건국세력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는걸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각색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3. 불멸의 이순신 제작을 위해 일찍 종영한 걸로 추정.
  4. 실제로 음향효과를 넣긴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