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근조.jpg 이제는 없습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죽었습니다.

노무현
노무현.jpg
대한민국 대한민국제16대 대통령
임기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4일
전임: 김대중(제15대)
후임: 이명박(제17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일 1946년 9월 1일(1946-09-01)
사망일 2009년 5월 23일 (62세)
사망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양산부산대학교병원
거주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정당 통일민주당 (1988년 ~ 1990년)
민주당 (1990년 ~ 1995년)
통합민주당 (1995년 ~ 1996년)
민주당 (1996년 ~ 1997년)
새천년민주당 (1997년 ~ 2003년)
열린우리당 (2004년 ~ 2007년)
학력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종교 무교
배우자 권양숙
서명 Roh Moo-hyun Signature.png
야~ 기분 좋다!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인권 변호사, 로동운동가 그리고 제16대 대통령이자 판사, 발명가, 국회의원, 농부, 다이빙 선수, 가수, 래퍼, 걸그룹이다. 시계받고 우리마음속에 살아계신 바보병신이다

사실 일베에서 아직도 살아남아 소스를 녹음하고 계시다고 한다. 이상한건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적인 사진도 합성사진으로 보인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또 일각에서는 노무현이 아직 살아있는거 아니냐? 라는 음모론도 나돌고 있다. 저 사진도 합성짤 같다.;;

목차

관련 정보

죽은 것은 거짓말이며 ilbe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일하고 있다카더라.

일대기

대통령 이전의 노무현

어린 시절에는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에서 재학하였다. 학력이 우수하였으나 집안 형편의 어려움으로 인해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해서 상병으로 전역했다. 당시에는 베트남으로 파병가거나 분대장이 되어야 병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죄다 상병으로 전역했다.

노무현은 고졸출신임에도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4번째 도전끝에 합격하여 1977년에 대전지방법원 법관(판사)이 되고, 1978년 말에 사직하여 변호사가 된다. 이때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도중 권양숙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후에 변호사 사무소를 차리고 탄탄대로를 걸을수있는 기회를 얻으나 제 5 공화국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후로는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게 된다. 이에 힘입어 노무사제도가 도입되었다 카더라.

노무현의 경우에는 현재의 좌파 인사들처럼 대통령이전에는 독재와 맞서싸우는 민주 투사였었다. 전두환 청문회 당시에는 장세동과 같은 제 5 공화국 당시의 인사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대었고 감정이 격해져 명패를 집어던진 사건으로 전국민에게 "청문회스타 노무현"이란 이름을 새기게 된다. 그뒤로 변호사활동을 하면서 여러 불이익을 받기도 하면서 차차 입지를 쌓아가고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정치인 노무현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2000년 당시 표밭이나 다름없는 종로 지역구를 포기한 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가 결성되면서 노무현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된다.

낙선한 정치인들끼리 하로동선(夏爐冬煽)이라는 음식점을 개업했으나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또한 변호사들을 위한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기도 했다.

낙선후에는 2000년 8월부터 2001년 4월까지 김대중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냈다. 참고로 김대중 정부때 일본에서의 독도 영유권주장의 근거인 중간수역이 체결됐으므로 노무현도 그 문제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새만금 개발사업을 반대했으나, 훗날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때는 "나는 반대했는데 이미 결정이 나버렸다"라며 반대에서 입장을 선회해버렸다.호남 표 잃을까봐 그런거지. 본격 말바꾸기의 달인...

그리고 그 이후 2002년 선거때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한후 이회창 후보를 간신히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 노무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대미문. 물론 좋은쪽말고 대통령 임기 초반에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탄핵당한 최초의 대통령이 될뻔 하였다. 솔직히 탄핵당한 것이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실행하지 못하여 타격을 입었으며, 이라크 파병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여 노무현을 지지했던 지지자들이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렸고 조선일보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메이저 언론과 임기 내내 대립하였고 우파들로부터는 친북좌파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심지어 좌파들까지도 노무현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한 좋은 평가중 하나는 권위주의를 타파하였다는 것인데 그로 인하여 후임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이 좋은 꼴 나쁜 꼴 다 당했다. 그로 인하여 후임 대통령 모두 고생하게 생겼다.하지만 그로 인해 노무현이 볼꼴 못볼꼴 다 본건 함정이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계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로 판문점을 지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것도 좀 오락가락했다.새누리당이 요구한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해서 전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은 대기업같은 청와대 비서실장이든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북한 문제로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기업을 검찰 수사가 아닌 그것도 특검을 추진한 일례는 이례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와중에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고 이러한 수사는 이후 정몽준 의원과 홍사덕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의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홍사덕 의원은 재조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또한 북한인권법에 대해서 북한쪽에 좋은 이미지를 표시하기위해 기권을 주장하다 이후 찬성을 했다.

한편 현재까지의 대한민국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인 5.7%를 기록한 대통령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통령 지지율 여론 조사는 매우 잘함, 잘함, 못함, 매우 못함으로 4개로 물어보는데 노짱의 여론 조사는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못함, 매우 못함으로 무려 5가지로 나왔었기 때문에 그대로 비교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오늘의 유머 등지에서 반박하고 있다. 또한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때리기가 너무 심해서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견해가 있다. 그 후, 2016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가 최저 지지율 4%를 달성 했으니 옛말이 되었다.

탄핵소추

사실 노무현은 대통령에서 한번 짤렸었다. 그래서 고건이 대통령 대리임무를 수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국민들이 그런 노무현이 불쌍하다며 다시 대통령에 복직시켜줬다.

그리고 그 이후 치뤄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복날 개패듯 얻어터졌다. 총 299석중 152석을 열린우리당이 확보했고 한나라당은 121석을 차지할 정도로. 덕분에 열린 우리당은 여당이면서 다수당인 여대야소 형태의 집권기를 이루게 된다. 대통령이 권한을 박탈당한 상태였지만..

퇴임후의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에는 봉하마을로 돌아가 민주주의 2.0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하여 소통을 시도했었다. 본격 공돌이 노무현 봉하마을 인근의 화포천에 가서 환경정화사업을 돕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통령 기록물 복사본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화근이였다. 이에 관련해 수사를 진행하는 중 친인척들의 비리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본인까지 치욕적인 검찰수사를 받게 되자, 굴욕을 많이 당한 사람 답지 않게프라이드가 엄청났던 노무현은 마누라에게 삼일한을 시전하였다.[1]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운지하기에 이른다. 중력 가속도를 몸소 실험하신 우국의 과학자.

"우~ 우우우우~ 중력으로 죽었소~'(장기하와 얼굴들 버전으로)

타고난 말빨

한번씩 논리적으로 앞뒤가 이상한 말을 해도 정말로 타고난 말빨의 소유자라 막상 연설하는 걸 듣고 있으면 그 설득력 있는 어조 탓에 감언이설에 홀랑 넘어가기 쉬웠다 카더라.

흔한 뜬금없는 그의 말빨
1.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다.

문재인삼단논법.jpg

2. 문재인을 친구로 둔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문재인삼단논법2.jpg

3.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다 문재인삼단논법3.jpg

분명 말이 안되는 소린데 말이 되는것 처럼 느낄 수 있다.

MC무현이 흥하는 것만 봐도 그의 말빨은 대단하다는걸 알 수 있다.

ㅇㅂ

명언

  • 이쯤가면 막하자는거지요?
  • 제가 뭐 경제 살리겠다고 말이나 했습니까? 말 안했지만은!
  •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했노 이기지!
나도 군대 갔다 왔고 예비군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사람한테 세금 내라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에 사람들은 뭐했어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군대 작전 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맨들어 놔놓고 “나 국방장관이요!, 나 참모총장이요.” 그렇게 별들 달고 꺼드럭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된다고 줄줄이 모여가가지고 성명내고,.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 미국한테 매달려가지고 바지 가랑이 매달려가지고 미국 응딩이 뒤에서 숨어가지고 형님, 형님, 형님 빽만 믿겠다.
  • 나는 모택동을 존경한다.
  • 대통령 못해먹겠다.
  • 임기시절 노인들은 뭐 잘못된 일이있으면 이게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러기도한다. 그만큼 살기가 나빴다.
  • 경제 호황기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저의 경제성장수치 IMF터질때만 못하다.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경제위기였는데 세계국가들에비해 상당히 선방했는것과는 대조적.
  • 군대 경찰력동원 도청 등이 5공 시절보다 심했다.
  • 국민들은 경제와 외교 잘 할 거라 나를 뽑은 게 아니다
  • 북한은 인도의 상황과 비슷한데 인도는 핵 보유가 용인되고 북한은 왜 안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그래도 남자한테는 여자가 서너 명은 항상 있어야지. 한 명은 가정용. 또 한 명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뺑뺑이용, 그리고 또 한 명은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오솔길용, 이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 예 좋습니다.
  • 잠시만요 이거 오햅니다
  •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 Can you hear them? Can you see them?
  • 국민 여러분 미사일을 쐈습니다 라면사십쇼 방독면챙기십쇼
  • 마마 매끼놔라 고마~
  •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
  • 주권의 일부를 북한에 양도할 수 있다
  • 한총련을 언제까지 이적(利敵)단체로 규정해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
  • 호남 뭉치자는 말만 하며 저급한 말만 쓰는 호남지역 국회의원들과는 답답해서 일을 못해먹겠다. 그래서 슨상 패거리들이랑 사이가 저질이 되었다.
  • 남북 군사를 NLL에서 철수시키고 조성할 공동어로(평화수역)에 대해서 김정일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대한민국 정부)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동안에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을 길게 하니 맛있게 먹은 밥도 소화가 안되더라. 그래서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대통령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라
  • 호남 사람들이 내가 예뻐서 찍었나? 이회창이 싫어서 찍었지...
  • 내가 정권을 재창출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까?
  • 노무현은 죽어도 노사모는 살아있다

실책

부동산 정책

진성 골수 노빠가 아닌이상 좌우 가릴것 없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노무현 정치 최대의 실책으로 인정하는 참여정부의 뼈 아픈 실수.
이 정책으로 인해 이 땅에선 집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되었다.

노무현은 부동산 투기꾼들을 잡겠다며 투기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여러가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이는 추후 엄청난 헬게이트를 몰고오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집값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아올라버리고 말았다. 수도권의 경우엔 집값이 48.26%나 상승했으며 강남 지역에선 매매가가 일주일에 몇천만원씩 뛰어오르는 미친 현상까지 벌어졌었다.

결국 이 집값 폭등의 여파는 지금까지도 남아 좀처럼 정상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질 않으며 현재 20~30대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원인이 되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었으며 한국의 내수 시장이 부동산에 기형적으로 의존하는 기형적인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북정책

북한에 막대한 조공을 갖다바쳤다는 점에서 김대중이랑 같이 욕먹는다. 남에서 쌀은 퍼줄 대로 퍼줬는데 북에서 은 개발할대로 개발하고 말았다.

그러나 맨 처음 대북송금특검 문제를 받아들이고 시행할때는 김대중식 햇볕정책을 동의하지 않았다는 측면도 많이 보인다. 정몽헌 회장의 자살로 연결이 될 정도였으니 말 다한셈이다. 애초부터 대북송금특검을 받아들였을때 그깡으로 임기말까지 대북정책을 했으면 원조가카와 맞먹는 반공 지도자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대북정책에 관대한 것이 아니라 중력차이가 너무 심하게 났던 것이 문제다. 일관성이 심하게 결여된 대북정책이 문제였다. 그래서 탄핵 이후 민주노동당같은 좌파 정당이 사상 최초로 진입하면서부터 기조가 바뀌게 되었다는 측면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북송금특검 수용을 함으로써 그 충격의 여파가 상당부분 컸었고,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일이 빚어지면서 햇볕정책을 다시 계승한 측면이 강하다.

성형수술 조장

성형조장하는 나라 대한민국 1.jpg 성형조장하는 나라 대한민국 2.jpg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로 서울대병원 의사들을 불러들여서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대한민국노짱을 본받아서 성형수술을 받은 성괴들이 늘어났다 카더라.노무현이 주도하는 질서

낙하산 인사

정권 각료 상당수가 공무원 출신, 전문가 집단(교수 등) 출신이 아니라 노무현이랑 같이 민주화 운동, 데모를 하던 386 세대 출신이었다.

이 아재들은 실력은 좆또 없고 경력도 좆또 없으면서 노무현 응딩이 뒤에 숨어서 나라를 말아먹는 데 일조했다. 부동산 잡는다고 벌인 정책이 오히려 전세가를 올려버리고 그 거품이 다시 빠지면서 수많은 하우스푸어들이 양산되고 말았다. 결국 중산층 숫자는 줄고 서민 숫자가 늘어버렸다.

노슬람교

혹자들에 의하면 노무현이는 사실 별다른 공약 없이 감성팔이로 대통령이 되었다.

이 때문에 민주당 안에 노슬람교를 믿는 신자들이 늘어났으며 결국 홍어먹는 민주당노슬람교 믿는 열린우리당의 분당 사태를 초래하고 만다.

민주당에서는 열린우리당을 친노 패권 주의라고 비난했으며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을 호남 패권 주의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남은 노무현이 임기 내내 싸우기만 했다.

이 싸움은 지금도 친노와 비노의 싸움으로 계속되고 있다. 사실 김대중과 노무현의 관계는 매우 좋지않은 숨겨진 비밀이 있다. 같이 묶어 찬양받기 곤란한 상황이다.

김구 비판 발언

노무현이는 김구를 독립운동은 잘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일본에서 발언했다. 그러자 한나라당한테 많은 욕을 먹었다. 자신과 동지이자 고향 선배인 장기표에게도 욕을 처먹었다.

노동자 탄압

노동 변호사 출신이 노동자를 학살하다니,모순이 아닐 수 없네

가 튀는 시위 진압사진이므로 열람시 주의 요망
노무현 대통령의 폭동 진압.jpg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자 탄압은 반발이 매우 심했다. 좌파 노동계 언론에 따르면 김영삼 정권보다 더 탄압이 심했다고 한다.

민간인 사찰

노조 사찰

노무현이 사찰한 노조들:

이래놓고서 5년 후 민주당박영선 의원은 노무현 시절 사찰 자료를 갖다놓고 이명박 시절 사찰 자료라고 우기다가 빈축을 샀다.

이명박 대선후보 사찰
[충격]노무현의 민간인 사찰.jpg
노짱식 민주주의.jpg

북방한계선 논란

빨간 B 선을 따른 노짱

노무현이는 2007년에 뽀그리랑 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북한한테 팔아치우려고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이는 김정일이한테 이렇게 말했다 카더라는 설을 특정 당에서 주장한 바 있다.


남북 군사를 NLL에서 철수시키고 조성할 공동어로(평화수역)에 대해서 김정일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른쪽 그림에서 A가 원래 북방한계선이고, B가 김정일이가 주장한 선이다.

근데 원래 저걸 대놓고 까발리는 것도 웃긴게, 저것도 사실 기밀사항으로 까발리는 순간 양지보다 음지에서 일해야할 국정원을 양지로 끌어들이는 결과도 낳기때문에 국정원이 언론에 부각되게 되는거고, 국정원의 비밀 누설 논란에도 빠질수도 있고, 실제로 노무현 시절 국정원장인 김만복은 되려 잘했다고 허세떨다가 저 문제로 까발릴거 다 까발리려다가 김만복은 여러차례 욕바가지 먹었었다.. 실제로 고소도 들어왔다.

그 이유는 국정원의 양지화 방지다. 흡사 쥐들이 사람들이 보이는 순간 도망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쥐덫을 설치하는 원리나 비슷하다. 또 그 바퀴벌레의 어디에 움직이는가를 대략적으로 보기도 하고, 그걸 하는게 국정원이다. 결국 김만복같은 자들이 저걸 대놓고 까발려버린 바람에 항상 국정원은 일을 처리해도 언론에 오르락 내리락 하게된 결과만 만들게 되었다. 결국 국정원이 간첩 수사를 하게 되어도 언론에 알려져 어떤 간첩은 잡혔는데 몸통들이나 공범들이 그 틈을 타서 도망가는 일이 한두번 일어난게 아니였다. 더구나 간첩들의 특징이 정보에 능한게 간첩들의 특징인데, 저런 것들에 대한 공개만 하면 되려 도망가는 일만 마련할수가 있다. 국정원의 주 임무는 정보수집들이나 이런건 무슨 무슨 회사나 차려서 잡고, 정보를 포착을 하는 것이 주 임무고 경우에 따라선 수사도 하겠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수사하는건 검찰과 경찰같은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 참여정부는 저걸 만들었고 참여정부의 국정원장이라는 자가 저 NLL을 까발린 것도 문제다.

이석기 사면

이석기는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우리나라 지하정당 민족민주혁명당 당원이었다. 민족민주혁명당 당원으로는 이석기 말고도 주체사상을 우리나라에 전파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가 있었다. 김영환은 1991년 잠수함 타고 북한에 가서 김일성이도 만나고 왔다. 이후 북한의 실상을 깨닫고 전향하게 된다.

1998년 전라남도 여수시 앞바다에서 북괴 간첩들의 잠수함(8명 탑승)이 우리 해군에게 격침당한다. 우리 측이 여수 앞바다를 뒤지면서 물고기밥이 된 간첩들 시신을 찾다가 우연히 민족민주혁명당 명단이 적힌 문건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9년 국정원이 민족민주혁명당에 가입한 빨갱이들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고 이석기, 김영환 등에게 수배를 때린다. 김영환은 바로 잡혀서 전향하고[2] 이석기는 도주를 했다. 이후 3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02년 검거된 것이다. 검거 이후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는다.

근데 노알라2003년 8월에 이석기를 감방에서 석방해줬고 2년 뒤 피선거권이 복권까지 되었다. 원래 공안사범 같은 경우 선거에 못 나가게 되있는데 바보 병신 노짱 때문에 이석기국회에 진출한 것이다. 이석기는 돌아가신 노짱 묘지에 절이라도 한 번 해야 할 것이다.

재계인사 사면

반대로 보수적이고 자본주의를 지향하지만 비리로 소환된 기업가들도 사면했는데,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이 고인이 된 성완종의 사면이다. 현 친노측에서는 화합이란 명분과 우익측의 요청으로 사면을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노무현 스스로가 우익의 2중대대중이당리누새?라는 걸 시인을 한셈이고 그리고 요청도 확인된 팩트가 현재로는 밝혀진 상황이 아니다. 민노당 지지자들이 두고 두고 비난했고 법무부는 4번이나 거절을 했는데 특별사면을 했다. 뭐지? 간첩도 사면하고 비리 기업가도 사면하고?

현충일 당시 일본 방문

정말이지 개념없기 짝이 없는 방일로 그것도 현충일날 날짜를 잡아서 갔다. 제 2연평해전 당시에 김대중은 월드컵이라는 결승전이라는 1%의 변명이라도 통하지만 이건 단 1%의 변명도 안통하는 짓거리중 하나로 현충원에 잠든 6.25참전유공자들 독립운동가들 등등 많은 사람들을 비롯해 제 2연평해전 전사자들 모두를 모욕한 짓이었다. 김머중이 고인드립을 제 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 시전했더라면 뇌물현은 현충원에 잠든 이제까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 모두를 일본 방문을 그것도 6월 6일날 가면서 모욕하는 짓거리를 시전했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노당과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난이 쏟아지고 청와대 게시판 자체도 장난이 아니였다. 인간적인 소탈함? 애초부터 대통령이 되고나서 사람이길 포기한 인간이다.

대연정 제안

진성 개노빠가 아니고는 절대로 쉴드칠수 없는 또 최고의 개뻘짓. 이회창 통치론이 아닌 박근혜 통치론을 실질적으로 실행했던 자폭 중에 자폭.

박근혜가 이끄는 한나라당 대주도 연정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정작 박근혜는 거절하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얼마나 병신같은 제안이라면 이후에 정동영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내에 의원들조차도 이거는 아니라고 했다. 민노당과 민주당도 포함되어 있었다곤 하지만 실질적인 주도권은 한나라당에게 주려고 했으나 박근혜조차도 이건 거절을 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과거 DJP의 악몽이나 정몽준-노무현 협의로 김대중과 노무현이 당선되어 2번 연속 이회창 후보가 고배를 마신 것때문에 거절했다고 보여진다. 저걸 찬성했더라면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폭락하는 결과가 되었던 것을 염두한 셈이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도 지금은 정태호를 비롯한 노빠들이 박근혜 심판론을 떠든다. 정작 저러한 주장이 다시 한번 나오면 수구꼴통 취급이 아니라면 정동영계나 동교동계 취급이나 당한다. 정작 본인들은 DJP연대에 대해서 비난을 해왔고, 그걸 적극적으로 비난한 노무현의 충복 유시민을 옹호하는 주제에 무슨 할말이 있는가? 그리고 지금 노빠들은 박근혜 심판론을 부르짖고 있다. 이건 결론적으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거부로 인하여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노무현 최악의 정치적 흑역사 중에 하나이다.

이 사건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썰이 있다. 박근혜가 이걸 받아들였더라면 박근혜는 친노와 묶여서 일치감치 새되고 지금 대통령이 안되었고, 이명박의 대선도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이명박도 저건 반대했다. 사실 이걸 십어버린 덕택에 박근혜가 대선에 나와도 당선확정이고, 총선도 선거의 여왕답게 개헌선은 그냥 장악했을 것이다. 이명박이 경선에서 매우 추잡하게 놀아서 대선을 먹어버리고 총선때는 공천권으로 추잡하게 놀아서 개헌선 장악에 실패했던 것이다. 근데 사실 이명박도 서울 시장때 저걸 씹어버린 덕택에 대선 후보로 올랐던 것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2&aid=0000110239

이게 실패로 돌아서 언변력 병신에 문재인이라던가 말만 잘하지 말에 실천은 전혀 못하는 유시민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대통령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 사실 죄인이나 시민이나 다 저때 말릴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대선후보로 나간 정동영이 저걸 대놓고 극딜했다. 고로 대연정 제안을 박근혜나 이명박 2사람 모두가 받아들였더라면 정동영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리고 이 대연정 제안이 실패로 돌아가서 사학법이 통과가 되었다. 받아들였더라면 박근혜가 그 대행으로 씹어버릴 위험이 존재했던 것이다. 결국 박근혜가 저 반대투쟁을 한 덕택에 한나라당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내려가는 결과가 생겼으나 열린우리당이 대연정 제안을 구상하다가 실패한 덕택에 결국 결집력을 한순간에 붕괴시키게 된 원인이 되었다. 대연정 발언에 대해서 문재인은 문제의식도 못느끼고 정권을 장악하려고 후단협과 비슷한 안철수-문재인 연대도 했었다. 그리고 이게 또 문제가 뭐냐면 지가 거절한 3당합당과 다를게 한치도 없다. 한나라당한테 대통령빼고 다 주겠다는 것인데 했더라면 3당합당으로 이후 정치적 분열이 마구 일어나며 금융위기가 터진 그때와 한치도 다를게 없었다는 것이다. 당장 지금의 국회선진화법으로 정부와 여야가 복지부동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다는 점을 볼때 대연정 제안은 곧 그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오히려 대연정 제안이 더 심각한 것으로 국회선진화법은 입으로라도 주도권을 쥘수가 있지만 대연정 제안을 받아들인 한나라당은 그 모든걸 씹어버릴수가 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그 연정으로 묶여서 분열이 일어날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게 성공했다면 자기가 과거에 거절한 김영삼과 노태우가 했던 3당합당 이후 정치적 혼란을 겪은 시절로 돌아가는거다.


평화의 바다 제안

참고로 이 제안은 아베조차도 반대를 했던 제안으로 동해와 일본해 두개 다 포기하고 평화의 바다로 통일하잔 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였는데, 참고로 이건 한일회담과 다를게 하나도 없는 제안이었다. 그것도 민주주의 시대에 이제 먹고살만한 시기에 1965년과는 달리 일본과 격차를 크게 좁힌 시기에 결국 아베 총리가 어이가 없어서 단칼에 거절했다. 참고로 아베한테는 좋은 기회였으나 의외로 단칼에 거절을 했다. 또 한번 대연정 제안과 더불어 열심히 개망신당한 사건이다. 참고로 이걸 아베가 승낙하지 않아서 오히려 아베는 지금도 총리를 해처먹고 있다. 그래서 노완용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일본 총리 앞에서 동해의 명칭을 저런 식으로 삶아쳐먹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207223

근데 동해라는 명칭은 국제적인 명칭으로 밀기엔 여러모로 문제가 있간 하다. 한국에서는 동해 명칭을 밀면서 유라시아 동쪽의 바다라고 선전하고 있긴 한데 정작 그 구성국들이 생각하는 동해는 서로 각기 다르다. 노무현의 경우 명칭이 구리다고는 할 수 있더라도 뭐라도 어떻게 해 보려고 했던 거라고 봐줄 수 있는(양국 국민의 심리로는 이게 어떻게 안되겠지만) 구석이 있는 것이다. 인기를 위해서라면 기존의 입장을 밀어붙이는 강경발언이 더 괜찮았겠지만.

그리고 사실 이걸 맨 처음 깐건 일베충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현재 여권의 경기도지사인 남경필 새누리당 경기도지사다. 뭐 사실 이 인간은 단통법하고 도서정가제 2개 동시에 찬성한 인간 중에 하나라서 일반 국민들도 별로 안좋아하고, 당명만 새누리당만 달지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라고 보면 된다.

한미 FTA

한미 FTA를 종결 지은 것은 이명박이지만, 시작한 것은 노무현이었다. 물론 이명박이 조약 내용을 더 굴욕적으로 바꾼 것은 변함이 없지만, 노무현 시절에도 무지막지하게 말도 안되는 조항이 있었는데, 22.17조가 바로 그 조항.

제 2 2 .1 7 조

대체적 분쟁해결

1. 각 당사국은 제1.1조(자유무역지대의 창설)에 따라 설립된 자유무역지대 에서 사적 당사자 간에 국제상사분쟁의 해결을 위하여 중재와 그 밖의 대체적 분쟁해결 수단의 사용을 가능한 한 최대한 장려하고 촉진한다.

이 조항에서 사적 당사자는 사실상 대한민국의 기업과 국민을 뜻한다. 그리고 대체적 분쟁 해결 수단에는 국제재판도 포함된다. 기업이 마음대로 국민 상대로 국제재판을 걸 수 있다는 뜻이다. 사법부의 권한은 축소되고!

이 조항이 그대로 통과되기는 했어도 실제로 이런 미친 짓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매우 우려스러운 독소조항이 아닐 수 없다.

좌파들의 비판

[3]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물려받아 노동자를 학살하고 미제국주의[4]에 휩쓸려 이라크에 파병해서 서민들을 뒤지게 만들었다,

헬조센에 좌파대통령은 아직까지 단한명도없다. 당장유럽좌파정당들만 비교해도 답나온다.

고로 좌파정당인 노동당(구 진보신당)좀 뽑아라 개새끼들아

알바아니다, 어차피 노동당은 예산부족해서 알바쓸돈도없어 개새끼들아

허지웅이 지지하는 그 정당 맞다

이 밖에

뇌물현 덕택에 죽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남상국 회장, 정몽헌 회장, 이수일 전 국정원 간부, 안상영 부산시장 등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세치혀와 정책들로 죽어나갔다.

일베충들이 재미나게 희화화를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소름이 끼친다. 노무현 개새끼

멜론 실시간 검색어 1위의 가수

2013년 9월 7일, 멜론에 가수로 등록된 사실이 일베저장소에서 알려지자 엄청난 속도로 검색어 순위가 올라 17시 40분에는 검색어 1위 가수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아티스트 노무현 멜론 링크

멜론1위노무현.PNG

MC무현 활동에 대한 내용은 MC무현 참조해라. 거기서 니같은 병신들이 좋아하는 명곡들을 들을 수있다.

MBC의 거짓 사망 보도

MBC는 기분 좋은 날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95년에 악성 림프종으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욕을 시원하게 쳐 드신 MBC는 오보였다고 발표했다.

노간지


노무현
미화짤.jpg
대한민국 대한민국제16대 대통령
임기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4일
전임: 김대중(제15대)
후임: 2MB(제17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일 1946년 9월 1일(1946-09-01)
사망일 2009년 5월 23일 (62세)
사망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양산부산대학교병원
거주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정당 통일민주당 (1988년 ~ 1990년)
민주당 (1990년 ~ 1995년)
통합민주당 (1995년 ~ 1996년)
민주당 (1996년 ~ 1997년)
새천년민주당 (1997년 ~ 2003년)
열린우리당 (2004년 ~ 2007년)
학력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종교 무교
배우자 권양숙
서명 Roh Moo-hyun Signature.png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인권 변호사, 노동운동가 그리고 제16대 대통령이자 판사, 발명가, 국회의원, 농부이다. 대통령 이전의 삶은 윗문단에 나와있으므로 생략.

군대

현재까지의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사병 출신이다. 그래서 군대가서 썩지마라같은 발언이 가능했던 것.

병사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군대생활은 인생의 낭비임을 잘 알고 있었고, 군대병력을 줄이고 무기를 개발하자는 정책을 떠올릴수 있었던 대통령이었기도 하다. 혹자는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라고 일컫기도.

모에 요소

동글동글한 인상(사실 이 양반도 쌍수 하기 전까진 살기등등한 얼굴이었다.)에 너그러운 말투.

혹자는 노무현이라는 이름 자체가 모에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름이 노무현이니까 일베 아이돌이 됐지, 만약 이름이 김성택이나 정성민같은 이름이었으면 그만큼의 인기는 못 누렸을 것이라고. 하다못해 이름이 김무현, 이무현이라도 이렇게는 모에하지 않을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근데 성이 봉씨였다면 더 웃겼을지도...

동글동글한 얼굴이 노자랑 매치가 잘 되고, 노무현이라는 이름도 노무 귀엽다는 평이 대다수. 심지어 아예 성이 밥그릇[5]이라는 게 더 웃기다는 사람도 있다.

청문회 스타 노무현

1988년 11월 전두환 정부, 즉 5공의 비리를 수사하는 제5공화국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전 국가 안전 기획부장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 안현태, 전 법무부장관 이종원,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등을 대상으로 한 심문해서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의, 치밀한 추궁으로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5공 천청문회에서 전대갈이 죄가 없다고 주장하자, 전통에게 명패를 던지는 등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각종 발언들

모택동 발언

종종 노무현이 모택동을 존경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친중파이며 매국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발언은 2003년 7월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립서비스로 했던 말로, 노무현 본인이 존경했을거라 믿는다면 오류이다.[6] 진정 친중파였다면 한미FTA 계획이나 제주 해군기지를 세울 생각은 안했을 것이다

김정일 발언

김정일이 오래 살아야 한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007년 10월 2일 김영남 최고회의 상임위원장이 주최한 만찬에서 건배를 제의하며 한 말인데, 역시 외교에서 립서비스 한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발언

아래 동영상은 일명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알려져있는 사고 당시 한 발언이다. 이는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그와중에 문재인은 졸고있다

여수의 기름유출 사고때의 행동으로 인해 재조명되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발언의 진실

이러다간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 전문[7]

말 그대로 노무현의 반대파들이 대충 짤라먹은 허위 날조에 불과한 것이다.

김대중 발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을 길게 하니 맛있게 먹은 밥도 소화가 안되더라. 그래서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대통령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라" 2003년 연합뉴스와 인터뷰

이건 우회적으로 김대중을 비판한 내용으로 이 발언의 수위를 더 올려버리면 공업용 미싱이라고 발언한 전 한나라당 의원인 김홍신과 매우 유사한 발언이 된다. 참고로 김홍신은 유시민과 재수없게 엮여서 노무현이 만든 정당에 들어갔다. 결국 낙선했다. 그리고 노무현의 충복인 유시민은 저거보다 더한 발언을 했다.

업적

60.jpg
뭔가 허전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은 분명 눈의 착각일 것이다.
노무현이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분야 대부분이 박정희가 1위라는 게 함정. 근데 박정희가 1위먹은 분야가 알짜배기이고 노무현이 1위 먹은 분야는 그닥 필요없는 분야라는 게 더 함정이다.(는 멍청한 소리다. 도대체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덕성과 소통력이 그다지 필요없다는 건 무슨 개소리인가? 심지어 독재체제에서도 나라가 썩지 않고 잘 굴러가려면 도덕성이 중요하고,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민의 대표로서 항상 국민의 뜻을 받들어 행동해야하는 대통령의 소통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의식수준과 사고수준을 가진 국민에게는 민주주의가 사치이긴 하다. 우리 주인님 주인님거리면서 노예로 살아가야하는 독재체제가 딱이다.) 게다가 진짜 중요한 분야에서는 김영삼이 꼴찌를 석권했다.

대북송금특검

원래 한나라당 의원들이 당시 강행을 했고 결국 받아들였는데, 근데 그 과정에서 조사를 졸라 빡시게 한 나머지 대기업 회장까지도 자살로 이어져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홍사덕 의원은 "정 회장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청문회든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모든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북 송금 과정을 밝혀 내겠다." 라고 말힐 장도였다. 참고로 북한과 관련한 조사에서 대기업과 비서실장까지 조사를 빡시게했던 정부는 얼마 없었다. 이런 조사는 원조가카도 못한 후덜덜한 대북 조사였다.

오죽하면 정몽헌의 동생인 정몽준이 이후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의원이 될 정도이다. 즉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대북송금특검 수사에 대해서 민주당을 겨냥했는데, 정몽헌이 이 사건에 연루가 되는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자살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 수사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이 책으로 머리를 맞는 일까지 벌여졌다 카더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637508

저건 엄연히 북한과 관련된 수사이자 거의 원조가카급 대공 분실 수사랑 맞먹는 클라스급이다. 그러면서 나 몰라라하는 노정권의 클라스다. 이명박과 박근혜도 못한 대공 수사다.

얼마나 빡쳤으면 당시 민주당 구주류인 김경천 의원은 당무회의에서 "특검이 정 회장을 죽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가 신주류 의원들 현재의 친노폐족들에게 강한 반발을 샀다.

병신같은 친노인 김희선 의원은 즉각 "이 발언은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정대철 대표도 "개인적인 의견을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공개적으로 나가면 안되니 없던 것으로 하자"고 말했다. 뭥미?

이때부터 친노vs친DJ의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양쪽눈 비대칭 박지원 현 국회의원 등 DJ 인사들 몇명이 구속되었다. 아마 탄핵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되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친노와 비노의 세력이 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친노와 동교동계의 통수레전드의 본격 시작이며 이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재계를 대변하는 우파 입장에서도 이 사건은 그야말로 노리둥절잼이다. 하필 정몽헌 회장이 운지해버리니 지금도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그러길래 왜 이용이나 당하냐는 입장에서부터 그래도 재계인사를 저렇게 다루면 되냐까지 참 다양할 정도다.

가장 우클릭한 정책으로 시위진압 못지않은 행보를 보였다.

대북 퍼주기식의 햇볕정책을 암묵적으로 부정한 가장 좋은 예로 우익들에게 손꼽히기도 한다.

아이러니한건 이 사건으로 빡친 동교동계 일부 인사가 지금 매우 우클릭했다. 뭐지?

그도 그럴만한게 정몽준이 후에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의원이 되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노무현의 탄핵을 그 누구보다 좋아했다. 보수 입장에선 대북송금특검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존나 헛저격해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마저도 엮는 대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이는 비노뿐만 아니라 특검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 악명높은 우익 정치인이자 인터넷에 보수화를 불러일으킨 전여옥마져도 황당하게 했는데, 전여옥조차도 "하란다고 정말로 할 줄 몰랐다." 라고 말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견을 보게되면 뭥미? 우왕 노짱 만세였다. 환호와 황당이 겹치는 분위기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12116

인터넷 보수들조차도 진짜 저걸 한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정작 본인은 NLL 문제나 야기시키는 빌미나 제공했던 것이다.

분당

대북송금특검을 비롯한 각종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열린우리당이라는 정당이 새로 창립이 되는데, 노무현은 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천년 민주당이 분당을 극렬히 반대하였고, 노무현의 이런 모습에 극렬히 반대하여 결국 대북송금특검과 분당 문제 등등등으로 민주당이 탄핵을 앞장서 결심하게 되었고, 특히나 조순형과 한화갑 등등이 이 사건으로 친노들에게 매우 악명높은 인물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지금도 이이제이, 통수, 팀킬 등의 이론을 더욱 가속화시키며 우익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다.

친노계파 부활의 신호탄이지만 동교동계를 엿먹였다는점에서는 우익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미친년 민주당이라는 소리까지도 나올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탄핵 정국 속 총선에서 승리한 덕택에 3김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슨상교도들의 타격을 줬지만 노슬람교도들의 부활을 알린 분당

친노계파 부활의 신호탄이었고, 탄핵정국을 형성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총선에서 기성 정당을 이겼다곤 하지만 애초부터 이때의 여당인 열린우리당 역시 좀처럼 손발이 맞지 않았고, 어쩔땐 매우 수구적으로 어쩔땐 매우 좌빨로 좌우의 개념차를 완전 망각하고 중립이라고 보기에도 편파성이 너무 짙어서 결국 이후에는 당은 붕괴되고 도로민주당으로 다시 돌아갔다.

감성팔이의 원조당이며, 사실 그 감성팔이 정책들도 누가봐도 뻔히 지키기 힘들고 실질적으로 와닿는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제대로 된 시행은 안되었다. 특히나 되도않는 친일 청산법을 들고 와서 되려 지들이 역풍이나 맞았다. 여당임에도 방어에 나서야하는데 오히려 공세만 나서고 네거티브만 수도 없이 해서 몇년동안 이 정당의 난장판을 그대로 보여줬다. 결국 노무현조차도 탈당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야말로 콩가루짓만 숱하게 했지 한거는 쥐뿔도 없었던 당을 만들어놓고 자기가 탈당했다. 물론 이 덕택에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2선을 하고 총선에서 2선을 했다지만 이런 정당을 몇년동안 보고 있는 덕택에 국민들이 많은 실망감과 염증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새민련을 개차반으로 만들 정당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 새민련 하는 꼴이 저 분당해서 온갖 개차반으로 돌아갔던 열린우리당이랑 다를게 하나도 단 하나도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지금 청와대에 있는 김경재 홍보특보를 보수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조순형은 자유선진당으로 가게된 계기를 만들었다. 한나라당도 처음 분당할때는 사태를 예의주시하다가 갑자기 노무현이 열린우리당 지지 선언을 하자 새천년민주당과 합세해서 탄핵에 동참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변희재가 애국보수가 되었다.

김대중 도청 사건 수사

노빠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DJ-뇌물현 묶는 짓인데, 정작 뇌물현이는 머중이에게 한번 더 대못을 박아버리는 짓거리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저것이다. 김머중 시절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광범위한 도청이 이루어졌는데, 그 대상 중에 하나가 다름아닌 뇌물현이었다. 물론 지만원도 있었고 박지원도 있었고 숨겨진 딸도 있었고, 그래서 수사를 실시해서 김머중을 그야말로 확인사살하는 결과를 낳았다. 김머중식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허상을 까발리는데 성공했으나 문제는 이수일 전 국정원 간부가 자살하는 일이 생기자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하는 일이 생겼다. 문제는 국정원의 조직적 도청은 불문에 부치고 이수일같은 엄한 간부를 잡은 것은 아니였다는 반론도 있었다. 칼날은 항상 엄한 곳에 돌리는게 문제였으나 시도 자체는 좋았다.

근데 시도자체에도 문제가 되는게 원래 국정원이 하는 일이 그런 일들인데, 김대중 정부에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도청한 측중에서 몇몇측이 에러라서 그렇지 민노당이라던가 범민련이라던가 한총련이라던가 하는 단체에 대한 도청은 하는게 좋다. 그걸 또 까발리는 것도 골때리는 짓이다.

또한 대북송금특검 문제로 감옥에 갔던 박지원이라던가 애초부터 권오석의 사위였고 노판석의 아들이었던 노무현에 대한 도청 문제도 100%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에 대한 도청으로 노무현이 빡쳐서 저걸 했다곤 하지만 NLL문제 이전에 이미 그걸 저지를 싹이 보일 인간인걸로 추측이 되었으리라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의사협회 의사들같은 엉뚱한 사람들까지도 도청한게 문제였다.

민주주의 관련 업적

노무현은 전자정부관련서비스 정착을 위한 노력을 하였다. 온라인 국민 참여 포털을 통해서 국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세계언론자유 순위를 30위까지 올렸으며, 권위주의 타파를 위한 노력을 하였다.

자주국방

역대 대통령 중에서 국방비에 투자한 돈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추진하여 자주국방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해양수산부 장관이였던 경력을 살려서 연안 어족자원 복원에 노력하였다. 또한 2020년 계획을 통한 국방부 효율화를 시도하였다. 또한 강정마을 해군기지 역시 그가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대왕함을 진수하였으며, 동급함 3척 추가 확보 추진을 하였다.

역시 개짖는 소리고 이라크파병의 규모를 그렇게 늘렸으면서 얻은 것이 뭐가 있는지나 보자. 실리도 잡고 명분도 잡겠다고 파병을 했는데, 정작 얻어온건 쥐꼬리만한 실리였던거다. 중동 국가들에게 숱한 비웃음이나 당했다. 이라크파병이 자주국방이던가? 물론 보수주의자들은 파병 자체에 반대를 안한다. 약속된 플레이가 개판으로 나와서 욕하지

국방제도 개혁

노무현은 병사도 직업군인화 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래서 직접 전문 부사관제도를 신설했다. 전문부사관은 총 복무기간이 3년으로 이등병으로 입대한 후 일반 사병처럼 진급해서 병장에 진급한 뒤 병장에서 하사로 진급하는 제도이다. 현재 병역의무기간이 1년 10개월 정도 되기 때문에 전문부사관은 현역병의 거의 2배 가까운 기간동안 군복무를 한다. 단, 하사로 진급한 순간부터는 일반 부사관 하사와 동일한 급여를 받는다.

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전문부사관은 제대로 된 병력선발과정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는 개짖는 소리고, 차라리 복무기간은 많더라도 장교나 부사관으로 가서 월급을 받던가 아니면 사병으로만 짧게 갔다와서 근무하던가 이도 저도 아닌 제도는 뭣하로 들였는지 의문이다.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국방제도 개혁하겠다고 해놓고선 당시에도 문제많던 육군참모총장에 남재준을 2년동안이나 올린게 노무현이다. 이유가 성실,근면으로 꼽았다. 지금 노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전직 국정원장 남재준을 2년 동안이나 육군참모총장으로 올렸다. 그리고 개혁을 울부짖다가 김동민 사건이 터졌는데, 그 당시 군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예이다. 또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그 시절에 열심히 출세를 했었다. 그로 인해서 불량품도 숱하게 쏟아졌었다.


독도 발언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의한 점령지의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 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 투옥, 강제 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 회복의 상징입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하지만 독도에 대한 또 다른 발언

"시작할까요? 그 생각대로 솔직히 모든것을 그 내놓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너무 솔직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아무런 소득이 없고 분위기만 나쁘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에...우리 한국에는 혼삿날은 장삿말 하지 않는다....이런 속담이 있는데....좋은 날은 되도록이면 좋은 말만 하자는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는...좀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고....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그래도 좀 솔직하게 말씀을 드릴라고 합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이 이야기를 다름 아닌 고이즈미 총리 앞에서 했다. 밑에는 동영상 링크이다. http://tvpot.daum.net/v/hbFKBDtVHpE%24 통역을 대통령으로 올리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참고로 이 문제를 프레시안이 거론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12143

주변 국가와의 동맹 강화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국 공식 방문은 영국과 한국의 양국 관계 증진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노무현 전 대통령이 캄보디아에 많은 원조를 하는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은 분이어서 안타깝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캄보디아와 한국 관계 발전에 많이 노력했는데 그런 소식 (사망)을 듣게 되어서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재임기간에 본인과 좋은 업무 관계와 개인적 우의를 맺었다. 우리는 여러 차례 만났으며 중국과 한국의 양국 관계와 공동 관심사로 되는 국제 및 지역 문제에 관하여 의견을 깊이 나누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對) 중국 관계의 중시, 그리고 그 분의 솔직함과 성실함으로 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줬다. 중국 정부와 중국 인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중국과 한국의 양국 관계의 전면적 발전 추진을 위해 기울이신 적극적인 공헌을 잊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

그의 기본적인 외교 정책은 동북아 균형자론 표방이다.[8] 그리스, 루마니아, 핀란드, 영국, 스페인 국빈 방문, 동남아시아, 남미, 러시아,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 바티칸 순방 등 49개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이집트, 나이지리아, 알제리, 아제르바이잔, 아랍에미리트, 스페인 6개국을 한국 대통령 최초로 방문하였다.

한미동맹 강화

그는 한미FTA과 이라크 파병 등을 추진하여 미국과의 동맹을 단단히 했으며, 미국으로 부터 무기같은 것을 빼먹을건 다 빼먹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동맹에 대한 그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그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노 대통령은 미국·영국 다음가는 대규모 이라크 파병에다가 FTA체결,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등 정책적으로 한미 동맹에 큰 공헌을 했다.

 
— 마이클 그린 전 미 NSC 선임 보좌관

재임 기간 노 전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간의 강력하고 활기찬(strong and vital) 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 버락 오바마

노무현 대통령은 국내를 의식한 반미 발언으로 미국을 당혹시켰으나 한미동맹에 대한 그의 기여는 (친미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 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노 대통령은 미국 영국 다음가는 대규모 이라크 파병에다가 FTA체결,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등 정책적으로 한미 동맹에 큰 공헌을 했다.

 
—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국제관계학부 마이클 그린 교수

한미FTA는 통상의 고속도로다. 국익을 위해서 너무나도 중요하고 커다란 한국경제의 탈출구, 비상구가 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열린 시장, 풍요로운 삶이 넘치는 사회를 정체성으로 하고 있다.

 
— 전여옥
그런데 정말로 한미동맹을 강화했나?

라고 전에 쓴 필자가 적었는데, 솔직히 그건 아니지... 대북문제로 인한 공화당 정부와의 충돌로 위험수위였던것은 여러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이하 인용문은 이라크 파병과 FTA, 그리고 퇴임하여 가는길에 립서비스 해주는 것으로 실제 평가가 이랬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 예로 미국 행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만나본 여러 인사들이 퇴임 후 회고록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혹평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hard to read) 사람 -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의하는 등 때때로 반미적 성향처럼 보이는 말을 했다"

별난 성격 (erratic nature) -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회담 말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관계정상화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기자회견 때 밝혀달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요청했다"며 "이는 2005년 9.19 공동성명과도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 부시 대통령이 이 내용을 얘기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언급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더 확실히 말해주시겠습니까?라고 요구해 모든 사람이 당황했고 부시 대통령도 당황했었다"며 "부시 대통령은 그 직후 기자회견을 끝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웃으며 부시 대통령과 악수했지만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이상했었는지(bizzare)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그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은 알았지만 한국에 무엇을 기대해야할지 몰랐다"며 "국무장관 재임시 노 전 대통령을 해석하기 위해 한국측 상대인 반기문 당시 외교부장관에 많이 의존했다"

 
— 콘돌리자 라이스 前 미국 국무장관 회고록 《최고의 명예(No Higher Honor)》

그가 반미적(anti-American)이고 아마도 약간 정신나갔다(a little bit crazy)고 결론내렸다.

 
— 로버트 게이츠 前 미국 국방장관 회고록《임무(Duty)》


김대중과의 차별화

한때 노무현의 최측근인 문재인은 김대중과의 차별화 차원을 부정하지만, 이미 당시 김대중과 그 측근들은 다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친노들이 김대중을 옹호하고 있지만, 참고로 열린우리당 시절 친노계파가 공천을 준 사람은 김대중 비난에 가장 앞장선 김홍신으로 김홍신의 공업용 비하 발언은 지금도 주목이 되는 상황이다. 거의 정청래급의 막말을 퍼붓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북송금특검 수용이나 분당 역시 김대중과의 차별화에 들어갔다. 김대중이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친노들은 이야기하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다고 이야기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일뿐 이후 탄핵에 참여한 것이 바로 아들 김홍일이다. 뿐만 아니라 동교동계는 이미 그때부터 노무현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그 탄핵 인사들 중에는 김경재와 같은 인물들도 있었는데, 사실 이들을 한나라당 2중대라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3당 합당에 반발해서 이제서 김대중 밑에 들어간 인물이 노무현이지만 사실 김경재와 같은 인물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김대중 밑에서 일했었다.

친노들이 동교동계를 김대중도 싫어했다곤 하지만 이는 상식적으로 맞지가 않다. 분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끝까지 남았고 동교동계의 주축인 박지원이 김대중을 대신해 감옥에 갔다. 그리고 김대중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안건 동교동계 인사들이다.

참고로 몇몇 노빠들조차도 도로 김대중보다 도로 노무현이 낫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다.

그럼에도 새민련에선 친김대중 친노무현 세력들이 함께있는데, 이는 새누리당과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그런 것일뿐 이미 노무현 시절만 봐도 답이 다 나온 셈이다. 그리고 노무현 시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쭉 진행된 분당과 당명 변경도 수차례나 했었다. 이렇게 된 것도 사실상 노무현 스스로도 분당이니 무엇이니 해서 이 계보를 완전히 끊어놓았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당제도 한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다당제를 무차별적으로 허용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새민련이다. 지금의 새민련은 사실상 노무현보단 노무현을 파는 정당으로 전략했을뿐 노무현 정신과는 상당부분 떨어져있다.

또한 당시 구 민주당을 한나라당 2중대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나라당 2중대 역할을 당시 열린우리당이 다 한것이다. 한나라당과 대연정도 하려 했었고, 한나라당이 할 한미FTA나 이라크파병도 열린우리당이 주도로 했다. 한미FTA나 이라크파병도 어느 정도 계획과 약속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계획과 약속을 깡그리 무시해서 미국 응디들에게 얻어온 성과는 그렇게 많은게 아니다. 오죽하면 이명박은 4대강을 빼놓고 노무현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니 이야기가 거의 다 끝난 셈이다.


보수들이 잘못알고 있고 친노와 비노 세력들이 잘못알고 있는 것중에 하나지만 애시당초 김대중과 노무현은 서로를 달리했고, 그리고 김대중에 대한 통수를 가장 적극적으로 친 사람도 노무현이었다.

대북송금특검 수용과 분당에도 노무현이 이렇다하게 별 큰 문제를 삼지도 않았었고, 김대중과의 차별화를 시작으로 3김 시대를 청산했다는 것만봐도 그 나름의 업적을 남긴 셈이다. DJP연합의 한축인 김종필도 낙선을 할 정도다. 물론 야당에게는 이것이 큰 상처로 돌아간 것이 문제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을 묶는 계획을 노무현 본인이 깼고, 김대중에 대한 비판을 굳이 박정희와 김영삼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들먹일 필요 없이 노무현만 들먹여도 이미 게임이 끝난 셈이다.

그 외의 업적

  •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저인망식 불법어로를 근절하기 위하여 강경 정책을 내세웠다.
  •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을 하여 지역감정을 타파하고자 노력하였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 "호남 사람들이 내가 예뻐서 찍었냐? 한나라당이 싫어서 찍었지?" 이런 발언까지도 했다. 참 전라민국 사람들만 노무현을 찍었나? 그리고 지역감정 타파는 친노들이야 씨부려재끼는 소리지 전남도청 리모델링질로 욕 바가지 처먹었다. 보수에겐 혈세낭비로 야당을 지지하는 호남 지지자들에겐 증거의 흔적을 없앤 짓이다. 당시 한나라당의 호남 비하야 원래가 그런 애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리 자유라던가 민주주의가 허용되어도 대통령이 되면서 지지를 얻고서 뒤통수치는 짓은 하지말자. 반칙과 기회주의 이야기를 욕해놓고 자기가 어기는 건 대통령으로써 신뢰받을 짓거리가 아니다.

  • 사학법과 대통령 첨령도비를 통한 비리퇴출을 시도하였다.
  • 비정규직 보호법을 통과시켰다.

말은 좀 똑바로하자 비정규직 비율이 35% 이하 안넘어갔다. 비정규직으로 굴린다는게 인재를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푸대접했다는 것 밖에 더 되겠나? 실패국가지수에서 2006년도에 인재유출 지수나 봐라....

  • 온라인 국민참여를 확대하였다.

권양숙여사발언

역사죄인은죽어도된다고말한다.

그외 의견

약간 밀덕 기질이 있었던지 무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재임 시절에 이미지가 바닥을 쳤을때 '노구리'라는것으로 풍자만화까지 나올정도로 신랄하게 까였다. 살아있을적엔 노구리, 무능의 대명사, 놈현스럽다 등으로 까였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귀엽다. 특히 "야~ 기분 좋다!"라고 말하는 동영상을 보면 노무현이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넷우익들의 여론

일반적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무능력한 사람, 혹은 사람은 좋은데 대통령감은 아니었다는 평이 많지만 일베합필갤발의 합성사진에는 찬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

일베저장소에서도 노짱이 정책은 말아먹었지만 인간성은 좋았다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정책과 사람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볼 줄 알기에 생전의 정책가지고는 비판을 많이 해도, 노무현 미공개 사진이나 영상 올라오면 꾸준히 일베 보내주는데가 바로 일베다.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낮더라도 인간 자체에 대한 지지도는 노사모 못지 않다.진짜 노사모

근데 대통령 시절에는 인간성도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였다. 대통령이 되면서 드물게 자기가 속한 새천년민주당의 당을 깨고 열린우리당 입당과 지지를 선언해 그 음흉한 슨상과 슨상교도들을 물먹이고 특히나 대북송금특검 수용으로 정몽헌 회장의 가혹 수사가 진행되자 본인은 몇일간 침묵을 했다. 분당도 감행했고 안상영 시장도 표적수사를 했으며 이인제에 대해서 표적 수사를 해서 이인제가 멘붕에 빠졌으며, 한화갑도 털렸었다. 열린우리당도 탈당해서 또 한번 통수를 쳤다.

더구나 김대중의 통수를 가장 심하게 친 인간 중에 하나이지 최후의 인간이다. 오죽하면 삼척동자도 그가 통수를 잘친다는걸 다 알 정도였다.. 사실 김영삼이 후보단일화를 깨고 김영삼이 본격적으로 권력에 눈이 먼 시점에서도 노무현은 공천을 받다가 3당 합당을 거절하다가 이후 DJP연합에 대해서 침묵을 하다가 김대중편에 서다가 나중에 또 김대중을 통수친 것만 봐도 그다지 좋은 인간성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봐야한다.

우리가 인간성이 좋다고 하는 순간 노무현은 말바꿔먹기를 밥먹듯이 하고 변경을 밥먹듯해서 인간으로써 보여주는 온갖 치사함을 다 보여줬다. 대통령이 끝나자마자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자기 아내도 통수를 쳤다. 명불허전 통수왕 노짱이다.

김대중은 밥먹듯 거짓말을 한다면 노무현은 밥먹듯 말을 뒤집는다.라고도 평가를 한다.

이명박을 통해 자수성가의 함정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이명박의 전 대통령 노무현부터 이미 자수성가의 함정을 발견한 대통령 중에 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과 그리고 의원 시절을 겪으면서 수 많은 굴곡에 싸웠고 당당했지만 그러한 초심 하나하나를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잃어버린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성완종도 이명박도 하다못해 노무현까지 모두 막대한 권력을 잡기 전에는 정치를 하기 전에는 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숨만 쉬면 거짓말을 했지만 대통령 되기 이전에 하다 못해서 정치를 하기 이전에 노무현도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것이다. 정치를 해서 사람을 버려버린 케이스 중에 한 사람이다.

따라서 노무현에 지친 사람들이 능력있어보이는 이명박을 뽑았는데, 결과는....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안습)

같이보기

노무현과 관련된 고인드립 합성과 관련 사건, 그 외 노무현과 관련된 문서들.


기타

777777777777777222777777777777777777

777777777288888888888887777777777777

777777778888888888888888877777777777

777777788888054494088888887777777777

777777788877777277208888887777777777

777777788871884745488888887777777777

777777778072482748525488887777777777

777777777227242728817588877777777777

777777777722052548882088877777777777

777777777777722298888888880777777777

777777777720852150888888888888027777

777758888888877545277888888888888885

798888888888872277778888888888888888

588888888888874880788888888888888888

888888888888278897888888888888888888

888888888888818808888888888888888888

888888888888872888888888888888888888

888888888888882728888888888888888888

888888888888887788888888888888888888

숫자로도 그릴수있다.



  1. ▲ 노 대통령이 자살하기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부부싸움이 있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갈 정도였다고 한다. 화가 난 노 대통령이 집기까지 집어 던질 정도였단다.
    Q 당시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 말해 줄 수 있나.
    A 내용은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말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뇌물수수혐의로 ‘치욕적인’ 검찰수사를 받고, 앞으로 수사망이 권 여사에게로 조여 오는 데에 대한 불만과 서로에 대한 원망이었다.
    Q 고성과 욕설이 오갈 정도였으면 두 사람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얘기인데.
    A 그렇다. 권 여사는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Q 소리가 크게 났으면 사저 근무자들이 알았을텐데.
    A 부부싸움이 워낙 격해 비서관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2. 사실 그 당시에도 북한에 회의를 느낀 반(半) 전향 상태였다.
  3. 여기서 말하는 왼쪽의견은 실상은 우파에속하는 깨시민새끼들을 말하는게 아니라 진신류를 말하는것이다
  4. 북괴새끼들이 이상하게 사용해서 그렇지 미 제국주의라는건 존재한다, 최근에는 중화제국주의도 미 제국주의만큼 애미뒤졌다
  5. 盧가 "밥그릇 노"다.
  6. .일본에서 회담할때 존경하는 인물은 김구에서 링컨으로 바꿨다고 발언했는데,링컨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친미파인가?여담으로는 대화록에서 미국에 대해 남북 공동의 적이라고 욕한적 있고,중국에 대해 경계할때 김정일이 동북4성이라고 경계할겸 노무현도 동북5성이라고 경계할 정도로 친중이라고 보기엔 어렵다.존경하는 인물이든 국졔관계든 별개다.
  7. [1]
  8. 동북아 균형자론이란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onlyinclude>{{둘러보기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