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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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대국적인 그분
출생 1926년 3월 6일(1926-03-06)
대한민국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 이문리
사망 1980년 5월 24일 (54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울구치소
국적 대한민국
직업 자유민주주의 혁명가, 전 중앙정보부장
종교 불교
활동분야 10.26 혁명
업적 유신의 심장이자 반인반신 박정희 처치
김재규가 공공칠빵 게임을 재연하고 있다




차지철, 너 이 새끼 Gun★Bang져!!
 
— 김재규, 차지철 경호실장과 공공칠빵을 하다가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 김재규, 박정희 대통령과 공공칠빵을 하다가
Jaegyu 'The democracy' Kim


개요[편집]

김재규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무직공무원이며 술자리 공공칠빵 게임의 창시자다.

별 특별한 것도 없는 장군이었지만 자기가 싫다는데도 육사 동기이자 동향인 박정희 대통령이 반강제로 중장에서 전역시키고 건설부장관 자리에 앉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맛이 달콤하긴 했나본지 중앙정보부장 자리는 마다않고 받아들였으나, 박정희가 차지철만 편애하기 시작하자 삐져서 10월 26일 박정희와 차지철을 두부외상시켰다.

테마곡은 마론5의 무브 라이크 예거다. [3] Jager는 예거라고 읽는단다

민주열사의 일생[편집]

유년기와 군인 시절[편집]

앞서 말했듯 김재규는 박정희와 같은 경북 선산 구미 출신이며 아버지가 정미소를 운영하는 지방 유지였던 덕에 일제시대에도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허나 일제가 패망을 앞두고 옥쇄니 뭐니하며 마지막 발악을 하기 시작한 1944년도에는 김재규도 예외없이 일본 해군 예과로 강제징집 될 수 밖에 없었고. 거기서 카미카제 훈련을 받던 도중 광복을 맞아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전쟁이 1달만 더 길어졌으면 김재규가 공공칠빵 대신 카미카제를 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재규어의 졸업사진

해방 후 잠깐 교편을 잡다 육사 2기로 입학해 1946년에 졸업했다. 그러나 그의 첫 장교 생활은 얼마가지 못했는데, 대전에 있는 2연대에서 소위로 근무 중, 자기 부대 병사를 연행하려던 미군 병사에게 일본도를 뽑아들며 거세게 항의하다 국군 최초로 명예면관을 당하게된다. 백수 신세가 된 김재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1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 2연대 시절 연대장이 좌익사범이었던 것이 드러나고, 김재규가 연대장에게 포섭되지 않았던 것이 면관에 큰 영향을 준 것이 드러나면서 다시 군인으로 복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하고 김재규 소령은 3사단 22연대 2대대장으로 북한군과 맞서 싸웠으며 전란 중 영양실조로 시력과 청력을 잃기도 했지만 운좋게 회복할 수 있었다.[1] 휴전 후 대령까지 진급하여 부사단장직에 오르나 사단장 송요찬과 대판 싸우고 삐져서 이번에는 짤리기 전에 자기가 옷털고 나가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전역을 결심하지만 이종찬 장군의 권유로 군에 남아 그의 빽으로 별을 달게 된다.

5.16 군사정변 당시에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김재규는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지 않은데다,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듯이 자신의 빽인 이종찬 장군의 모토가 '군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였기 때문이었다.[2]그래서 반혁명분자로 몰려 면관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박정희의 보증과 특별한 부정사실이 없어 면관은 피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별 3개를 단 뒤 3군단장[3]을 하며 무난히 꿈에도 그리던 사성장군이 되나 싶어했지만[4]박정희가 우리가 남이가 정신을 발휘하여 '너 나랑 고향도 같고 기수도 같은데 군인 그만두고 정치나 해라'며 떼를 쓰자 피눈물을 흘리며 중장에서 전역해야 했다. 군사독재국가에서 대통령이 까라면 까는 수 밖에 없다 ^오^

장관 시절[편집]

전역 후 김재규는 1973년에 위로직으로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등의 한직을 거친 뒤[5] 윤필용 사건의 여파로 충성파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박정희에 의해 1974년 건설부 장관 자리에 오른다. 이때부터 김재규는 본격적으로 박정희의 심복으로 키워지기 시작했으며, 김재규는 장군 시절 한계령 도로와 서빙고 분실 등의 건설을 지휘했던 적이 있던만큼 낙하산 인사치고는 나쁘지 않게 장관직을 수행했다.

특기할만한 사항으로는, 유신헌법이 선포된 날 김재규는 자신의 측근들에게 "각하께서 나라를 망쳐놓았다"라며 박정희를 씹었고, 중앙정보부 차장 시절에는 지학순 주교 건으로 그를 찾아 온 김수환 추기경에게 박정희와의 면담을 제안하면서 “추기경님, 환자는 딱딱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죽처럼 부드러운 음식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각하와 충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6]라며 뒷담을 깠다. 또 김재규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이종찬 장군에게 면박을 받은 뒤 뭔가 깨달은 것이 있어 건설부 장관 취임식 때 박정희를 암살하려 했으나 생각이 바뀌어 잠시 참고 박정희를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일단 이 이야기는 김재규 본인의 증언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앞의 두 이야기는 김재규 뿐만 아니라 관계자의 증언도 있는만큼, 아마 이때부터 김재규는 박정희의 강압적인 통치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관이 된 이후로는 입 싹 닫고 개처럼 일했지만 말이다.

중앙정보부장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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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직수의 뒤를 이어 제 8대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오른 김재규는 취임식 날 "여태껏 중정은 사람을 잡아들이는 일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사람을 풀어주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 선언했고. 실제로도 과거 철권통치 일변도의 중정과는 달리 김재규 지휘 하의 중정은 비교적 온건주의 노선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정황은 비둘기파인 김재규에게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 때는 박정희의 오랜 독재와 오일쇼크 등의 여파로 지친 국민들의 불만이 폭파하기 시작한 시기였고, 1979년도에는 아예 박정희가 하야하느냐 무하마드 카다피마냥 국민과 내전을 치루느냐 수준으로 시국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박정희는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 따위는 없었고 이것이 김재규 재임 전부터 기세등등했던 매파, 차지철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 준 격이 되었다.

박정희를 등에 업은 차지철의 월권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고 그를 견제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권력 다툼에서 Burn Burn히 지고 있었다.

게다가 둘의 성격 차이가 이 권력 투쟁의 격차를 더더욱 벌렸는데 차지철은 온갖 사탕발림 섞인 말을 하며 박정희의 비위를 맞추는 타입이었던 반면 김재규는 위에도 나와있듯 상관에게도 주눅드는 일 없이 자기 주장을 끝까지 밀어 붙이는 타입이었다. 이 때문에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큰 소리를 듣는 일이 잦았다.

결국 완전히 권력의 축에서 벗어난 김재규와 정보부에게 경호실은 온갖 더러운 일을 떠넘기면서[7] 정보부의 주요 임무인 정보수집은 자신들이 관여했으며, 심지어 김치열 법무장관이 김재규의 후임으로 결정됐다는 이야기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자존심 강한 김재규는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가 없었으나, 어찌어찌 분을 삭히고 잘 참고 있었다. 10월 26일 전 까지는.

10.26 사건[편집]

이때 맞은 편 자리에 조용히 김재규가 들어와 앉았다.
신○○은 노래를 부르면서 그가 들어와 앉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신○○과 박 대통령은 어느새 합창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에에에 얼마나아아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오오.
박 대통령은 1974년 8월(광복절날) 피격으로 죽은 육영수여사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실눈으로 애상에 잠겨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노래는 후렴 구절로 넘어갔다. 예이예이예이 예예예예예 예이예이예이…
이때 김재규가 오른손으로 옆에 앉은 김계원 비서실장의 허벅지를 툭 쳤다.
그리곤 오른쪽 바지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뽑더니 "건방진…"하면서 갑자기 차지철을 쐈다.

그니까 정치를 대국적으로 했었어야지 ㅉㅉ

10.26 사건 항목 참조.


최후[편집]

대통령경호실장대국적으로 만든 김재규는 암살후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암살전 중앙정보부 2차장보 김정섭,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미리 궁정동에 대기시켰다. 암살후 중앙정보부 본부와 육군본부를 두고 어디로 향할지 고민하다가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군을 장악해야 하기 때문에 육군본부로 가야한다'라는 부하의 말을 믿고 육군본부로 향했다.


육군본부의 도착한 후 국무회의를 요청해 국무회의를 소집한다음 대통령이 살해되었으니 계엄을 선포하고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을 숨겨야한다고 주장하였지만 국무위원이나 다른 장관들한테 동의를 얻지 못하고 결국 10월 28일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에게 체포당해 1980년 5월 재판[8]이 진행되고 내란목적살인내란미수죄사형선고를 받고 1980년 5월 24일 사형[9]이 집행되었다.

재규어니뮤ㅠ 사후계획도 암살계획처럼 좀 대국적으로 짜셨어야지ㅠㅠ

평가[편집]

세간의 평가는 좌우 막론하고 좋지 않은 편.

우측은 김재규가 그들의 우상을 이승 밖으로 탈출시켜버렸으니 당연히 평가가 좋지 않은 수준을 넘어 증오하는 수준이며, 좌측은 우파처럼 찢어 죽일 놈 취급은 안 해도, 박정희 아래서 한 탕 해먹은 게 있는만큼 그가 민주화를 위해 박정희를 쏜 게 아닌 우발적 살해라 보는 시각이 강하다. 김재규를 고평가하면 자기들 공이 줄어들기도 하고.

독특한 평가로는, 뚜렷한 하향세를 타고있던 박정희를 적절한 타이밍에 죽임으로서 더 이상 욕되게 만들지 않았으니 만고의 충신이오, 또한 북한의 김씨가문처럼 영구집권할 가능성이 높았던 그를 죽이고 자유민주주의를 되찾아줬으니몇 달 못 가서 문어대가리한테 도로 뺏겼지만 민주열사라는 평가도 있다.

인터넷에서[편집]

요지부동인 세간의 평가와 다르게 오히려 인터넷에서 그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는 현 집권 세력인 박근혜 정권 비난(조롱에 가깝지만)+전두환드립치다 진짜로 전두환을 빨게 된 일베충 븅신들처럼 일베충들이 김재규만 보면 파이어뱃 마냥 불타오른다는 걸 깨달은 좌익 커뮤니티와 디씨가 신나게 김재규 드립을 치다가 진짜로 김재규를 열사로 빨기 시작한 것 때문으로 보인다.

디씨에서는 김재규를 어감이 비슷한 '재규어'로 부른다.[10] 박정희 대통령 드립을 칠 때 아무 상관도 없는 상황에서도 꼭 '대국적으로'나 '이 새끼 건방져'같은 표현을 쓴다.

김재규가 술자리 공공칠빵의 창시자라는 드립은 롤갤에서 만들어진 드립으로 추정되며,[11] 이 드립에 영향을 받아 그레이브즈갱플랭크같이 총을 쏘는 남캐가 김재규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정글! 갱킹을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리븐 너 이 새끼 건방져!

반면 통베저장소에서 이 사람 드립을 쳤다간 씹정색한 통베충들이 당신을 웰던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10월 26일 궁정동에서 김재규가 박정희와 공공칠빵 게임을 했는지 탕수육 게임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주로 디씨의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는 공공칠빵 게임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4] 주갤에서 누가 성묘까지 갔다왔다. 무려 1000개가 넘는 추천수를 받았다. 그 와중에 통들통들하며 비추천을 누르는 100명의 통베충들

의사양반[편집]

일각에서 김재규를 의사라고 부르는 것을 비꼬아서 의사양반이라고도 부른다. 의사양반과는 전혀 상관 없다.

김재규를 의사라고 부르는 것에 그의 집안이 양반 가문인 것에서 따서 의사양반이라 부르는 것이다.

모에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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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ㄷ ㅁㅊㅇ 그릴거면 다그려야지. 단발머리의 전유미는 왜 안그렸어? 왜긴 왜야 이거 그린 사람 지금 남산에서 설렁탕 시식 중이니깐.


생존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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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이렇게 박근혜페이스북을 주고 받는다 카더라

같이 보기[편집]


  1. 허나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고, 이후로 김재규는 항상 큼지막한 돋보기 안경을 써야했다.
  2. 그래서 후일 김재규가 건설부장관이 되자 이종찬이 사적인 자리에서 김재규에게 '못난 놈, 장관이 그렇게 좋든?'하며 타박했다. 그러자 김재규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고 한다.
  3. 덕분에 여기 소속 부대가 가짜사나이에 못 나온다 카더라
  4. 김재규는 자신이 중장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5. 국회의원과 중앙정보부 차장이나 되는 자리가 한직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는데, 예비역 중장이었던(그것도 박정희만 아니었으면 충분히 대장으로 전역할 수 있었던) 김재규의 입장에서는 한직이 맞다고 볼 수 있다.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은 현재 기업의 고문직처럼 은퇴한 장성들에게 던져주는 명예직에 가까우며, 정보부 차장으로 임명됐을 때는 당시 정보부 부장이 김재규 밑에서 법무장교로 일하던 신직수였다. 한 마디로 상하관계가 역전 된 것.
  6. [1]
  7. 박정희의 여자 문제나 박지만과 박근혜의 일탈을 조사하는 등
  8. 군사재판
  9. 교수형으로 집행
  10. (BGM자동재생)최초로 재규어 드립을 친 게시물[2]
  11. 2013년도 9월 초 쯤 롤갤 개념글에 올라왔던 '박근혜가 게임 규제하는 이유가 아빠가 공공칠빵 게임하다 죽어서'라는 개드립이 공공칠빵 드립의 원조로 보인다. 이 글을 쓴 작성자가 당시 롤갤러여서 다른 갤은 안 가봤으니 원조가 어딘지 정확히 아는 분은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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