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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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웃는 김대중

김대중
대한민국 대한민국제15대 대통령
임기 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전임: 김영삼(제14대)
후임: 노무현(제16대)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24년 1월 6일(1924-01-06)
출생지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사망일 2009년 8월 18일 (85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학력 목포상업고등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세례명 토마스 모어(Thomas Hong-A)
배우자 차용애 (사별), 이희호
부모 부 김운식, 모 장노도
서명 Kim Dae-jung signature.png

노벨 화학상 수상자[편집]

북핵 수석개발자 핵대중

슨상 김대중은 쌀로 핵폭탄을 개발한 업적으로 한국인 전라민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홍어이다. [1] 예로부터 북한과 관계가 깊은 슨상님은 1998년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2000년 6월 북한측 핵개발 책임자에게 8억달러를 건네주는 노력끝에 핵연구를 급속도로 진전시켰다. 그리고 결국 기존의 화학 이론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햇볕과 쌀로 핵을 만드는 기술을 북한과 공동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카더라.

반박[편집]

..하지만 핵개발은 노태우 때 한 것이고, 김영삼 때 이미 만들어진 것이며, 퍼주기는 김영삼이 4조, 이명박이 로 더 많기 때문에 모두 사실이 아니다. (정권별 대북 송금액 김영삼 : 4조원 / 김대중 : 1조 5,500억원 / 노무현 : 1조 6,200억원 / 이명박 : 2조 5천억원) 머중이는 1조 5.500억원이 부족했는지 개눈깔을 통해 8억달러를 정일이 후장에 상납하였다

더군다나 노벨은 쌀을 줬다고 노벨상을 주지 않는다. 노벨은 오히려 한국에 역로비가 있다고 폭로했다. 여기서 '역로비'라 함은 김대중이 노벨상을 수상하길 원하지 않는 국내의 정적들이 'DJ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도록' 로비를 펼쳤다는 뜻이다.

관련기사 http://www.hankookilbo.com/v/89344c7c422b46c5bdf9546c93696d7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1&aid=0000005775

반박의 반박[편집]

핵은 이미 예전에 만들었어도,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하고 있으며,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하였다. 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 의원은 이때 송금됬던 금액이 북핵개발에 전용되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또한 직접적으로 핵개발을 하는데 돈이 들어가지 않았어도, 핵개발로 인해 국제적으로 경제 제재를 받게 되자, 주민들 통치할 자금은 남한에서 보내주는걸로 퉁치고 남은돈을 핵개발에 이용하게 됨으로 사실상 대북지원금으로 핵이 만들어진거나 다름없다. 정권별 대북송금액은 자료마다 다르나, 아래 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김대중 정부 24.9억 달러(현금 13.3억 달러ㆍ현물 11.6억 달러), 노무현 정부 44.7억 달러(현금 15.7억 달러ㆍ현물 29억 달러)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16.8억 달러(현금 9.7억 달러ㆍ현물 7.1억 달러)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액이 특히 비판받아야 하는 점은 임기초에는 IMF 위기로 외화 없다면서 국민들 금모으기 운동을 했으면서도 임기 후반에는 북한에 몇억달러씩 몰래 송금한 점이다. 그것도 방위백서상 주적이나 다름없는 반국가단체에게 말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북한에서 시도때도 없이 해제하라고 주장하는 5.24조치로 대북송금을 제한했으나 , 김대중 정부는 연평해전 이후 딱히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210929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689467

반박의 반박의 반박[편집]

그 노무현은 대북송금특검 수용으로 햇볕정책을 포기하는듯 했으나 보수들의 통수를 치고 44.7억 달러의 대북 송금을 했다. 북한인권법에 기권때리고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자 갑자기 찬성을 했다. 그리고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는데 하필 이때가 노무현 서거뒤 이틀 일이다. 하나는 노무현 정권 또 하나는 노무현 서거 이틀뒤 벌어진 일이다. 앞으로는 보수와 짝짝꿍하면서 뒤로는 북한에게 퍼주기한 이놈도 만만치않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편집]

  • "반만년 역사동안 지켜온 우리민족의 문화는 하루 아침에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
  •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이며 더이상의 문화 쇄국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두려움없이 대처하라"[3]
전설의 명언

이분 덕분에 덕후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센세, 나이스입니다!

반박[편집]

문화 개방 자체는 좋았으나 순서는 좀 에러인거 같다. 음반보다 만화를 개방한건 좀 아닌 것 같다. 만화보는 진성 덕후들 입장에서는 좋지만 음악을 듣는 덕후들 입장에서는 좀 아닌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바람의 검심이나 이런 역사적 논란이 되는 만화들도 들어온 것을 보면 좀 그렇다....

음반의 경우는 그다지 정치적/역사적으로 논란성이 없고, 오히려 그때는 아무로 나미에가 흥해서 오키나와 이야기가 흥했을수도 있다. 그래서 오키나와 프리라는 구호도 붙일수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한국 연예계에 위기가 닥칠수 있지만 음반의 경우는 정치적/역사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매체들이 아닐까?

문화개방이라고 해도 무엇을 개방할 것인가에 대한 순서를 배열하고 짜놓는 문제에 대해서 보다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개방 자체는 반대는 안한다. 그리고 좋은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발언보다. 불가피하게 일본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말을 해야한다. 무엇보다 불법복제가 만연해서 이런 결정을 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문화 특히 예술이나 이런 것들은 그냥 인긴이 즐기고 보는 단순한 유희일 뿐이다. 좋은이라는 말 자체를 쓸 필요도 없다. 그리고 쇄국 정책은 도움이 안된다며 우리가 문화를 받아들여도 뭐 반만년 역사니 이딴 소리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긴말없이 1번 2번 3번 이렇게 요점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끝낼 소리고, 뭔 저런 사탕발린 소리를 줄줄이 할까.

DJP연대 논란[편집]

DJP연대 옹호론[편집]

DJ지지자였던 강준만 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연합을 호남이라는 지역구에서 벗어나 전국구를 모색하기 위한 하나라고 했으며, 그리고 이회창 후보 본인이 여당에 걸맞는 조순과 김종필을 비롯해 이인제를 놓쳐버린 것이 너무 크다. 또한 초기에는 김종필 역시 내각제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부분 가저올 측면도 계산했으며 나름대로 견제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서화합을 이끌어냈다는 측면도 있고 화해의 정치를 했다는 측면도 있다.

DJP연대 비판론[편집]

그러나 김종필 총리는 과거 박정희 시절 측근이었고, 결국 전혀 맞지도 않는 연합을 했던 덕택에 이후 나중에 이 연대가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DJ가 햇볕정책으로 선회했다는 설이 제기가 된다. 뭐 어디까지나 설이고 사실 이건 3당합당이나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론이나 한치도 다를게 없다. 한마디로 타협이 아부의 극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 당장에 타협의 산물인 국회선진화법도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지 않고 있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여진다.

과거에 유시민이 이에 대해서 DJP필패론을 주장했다.

정보통신부 관련 논란[편집]

정보통신부를 김대중 정부가 신설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정보통신부는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체신부를 개편해 생긴 부서로서, 하나로통신이나 두루넷 같은 초고속 통신망의 민간사업자 선정도 이 때 이루어졌다. 즉, 김대중 정부 시절 IT 발전은 대부분 김영삼 정부 시절 인프라 구축의 과실을 따먹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외환위기 극복[편집]

김영삼이 싸놓은 설사똥을 치워냈다. 영삼이는 김대중이 IMF를 초래한 원인의 2/3 책임이 있다고 뒤에 병림픽을 벌이긴 했지만 말이다. 둘다 뭘 잘했다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금모으기 운동을 벌여 서민들의 금을 반쯤 자발적으로 갈취했다.[4] 당장 뚫린 구멍을 막았지만 정작 금이 짧은 시간에 시장에 너무 많이 풀려 똥값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극복한답시고 대우를 파탄내버렸다. 대통령과 재벌이 현피뜨면 무조건 대통령이 이긴다는 전례를 남겼지만 김머중은 애꿎은 김우중을 조져서 그 회사를 부수고 그렇게 짜낸 자금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반박: 비정규직을 병신같은 방법으로 도입하다[편집]

본디 비정규직이란 언제 해고당할지 알 수 없는 위험성 때문에 정규직보다 더 비싼 급여를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외환위기를 극복한답시고 대한민국에 비정규직을 도입할 때 철저하고 완벽하게 재벌들 후장만 빠느라 오히려 거꾸로 비정규직 급여를 아주 저렴하게 만들어서 도입시켰다.

김대중이 재벌들에게 너무 못된 버르장머리를 들여놓은 덕에 비정규직, 열정페이 이딴 버러지같은 것들이 생겨나서 노동력 착취의 근간이 되었다.

6.25 기념 시가행진 취소[편집]

2000년 6월 2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국내외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기념식을 갖고 그날 오후로 예정되어있던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의 시가행진을 당시 김대중 정부가 취소시켰다. 이것은 6.25전쟁 50주년 행사였다.

의약분업 논란[편집]

이걸 시행하게 된 계기가 의사들이 약을 빌미로 엄청난 부조리를 저지르게 되자 결국 할수 없이 단행한게 의약분업인데, 그걸 도입하자 의사들이 집단으로 항희를 하게된 계기가 되었고, 말미암아 나중에 의사들을 더욱 보수적으로 돌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약사가 의사를 침해한다는 논란도 있었고, 약물 부작용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러한 주장들은 다 근거가 없는 주장들이고, 그리고 의료인들의 부조리를 막기 위해서 저걸 단행한다는게 이해가 안간다. 리베이트 쌍벌제라는 법도 있었는데, 꼭 저걸 시행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참고로 저걸 추진하면서부터 요 몇개월동안 병원들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국민들 입장에서만 봐도 1번갈 약국을 두번이나 가니 불편하고 덕분에 의료보험료도 인상되었다고 한다. 특히나 의사들이 이 사건을 겪은 이후에 김머중 개새끼라는 소리를 절로 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노짱이 자기도 졸라게 도청당한게 졸라게 빡쳤는지 의약분업 시위를 했던 이 사건에서 대규모 시위를 감행했던 의사들의 도청마져 까발려서 의사들이 더욱 빡치게 되었다.

분업 옹호론[편집]

  • 과다복용으로 사망 할 수 있는 수면제를 약국에서 임의로 아무런 제지없이 판매한다.라고 생각해보자. 이를 보완하기위해 그나마 현재 약국에선 일반의약품, 전문의약품으로 나뉘어져서 처방전없이 쉽게 돈으로 줄 수 있는게 있고 없는게 있다.
  • 약사는 어셈블리 라인, 의사는 어셈블리 라인에 제작명령이라는 처방전을 내리는 작업반장이라고 비유해보자. 침해라는 단어가 성립이 안된다.

분업 비판론[편집]

  • 일반 의약품도 국민들 입장에서 위험한 약물이며, 전문 의약품이 아니라고 해서 안심할수 없다. 일반 의약품의 과다 복용도 위험하긴 매한가지이다. 일반의약품으로 사는 수면유도제나 이런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으며, 기타 약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반 의약품이라고 해서 처방전없이 먹는다고 해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 약사는 어셈블리 라인, 의사는 어셈블리 라인에 제작명령이라는 처방전을 내리는 작업반장이라고 비유해보자. 침해라는 단어가 성립이 안된다. 라고 했는데 오히려 약사 입장에서 침해이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의사나 약사 모두에게 안좋은 것이 되어버렸다. 2가지 토끼를 잡으려다가 2개 다 놓친 사례가 될수가 있다.
  • 결론적으로 의약분업은 결론적으로 한국의 실정에 맞게해야 하는데 너무 앞서간 것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언론사 세무조사[편집]

2001년 벌어진 것으로 말은 거창하게 언론사 세무조사라고 앞세웠으나 실 타겟은 조중동, 그 중에서도 조선과 동아였다. 마치 재벌기업의 분식회계IMF 시대를 불러온 것처럼 수십년 누적된 메이저 언론사의 갖은 비리와 검은 돈을 다 헤집은 사건이었다. 조선과 동아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누적된 증오가 얼마나 뿌리깊었으면 표적 감사란 거 뻔히 아는데도 아무도 욕하긴 커녕 박수만 쳤다 카더라. 물론 조선일보동아일보 자신은 1면 머릿기사로 언론 탄압이라며 길길이 분노하고 중앙일보도 덩달아 같이 화내다. 이당시 머중이의 좌빨언론밀어주기가 극에 달한사건이라 할수있다카더라. 머중정권에의한 언론탄압의 표본 이사건 이후로 좌빨언론들의 찌라시성 기사와 머중정권빨아주기 쓰레기운동권 종북주의자와 간첩들의 대한 옹호기사 허위,날조된 기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카더라.

3김 시대의 마지막 지도자[편집]

흔히 3김 시대의 주축이 된 한 사람으로써 3김의 마지막 시대를 열었던 사람이다. 참고로 3김 시대란 민주화 운동을 타도 하기 위해서 중앙집권보단 지방을 위시해 민주화를 이룩한 시대를 3김 시대라고 하는데, 그 보스정치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영남에선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면 호남에선 "아따 사자 필승론이랑께!"로 대표되는 사람으로 그래서인지 김영삼이 영남의 몰표를 얻고 당선되었더라면, 김대중은 호남의 몰표를 얻고 당선되었다.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결국 내세운 3김의 카드가 흔히 지역이었다.

김영삼은 영남 김종필은 충청이면 김대중은 호남이었다. 지역적 기반에 의거한 후진적 공천을 김영삼이 영남으로 즐겼더라면 김대중은 호남으로 즐겼고 김종필은 충청으로 즐겼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지금처럼 학연,지연,혈연 중에 지연이라는 뿌리가 생각처럼 깊지가 않았다. 참고로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호남의 표가 전북과 전남으로 분산되고, 경남과 경북의 표가 분산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서울은 수도권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로 영남지역주의를 강화시켰다곤 하지만 호남도 이중곡가제 실시로 곡창지대였던 호남도 수혜를 입었다.

그렇다고 독재정권도 쉴드가 불가한게 흔히 관피아라는 것을 구축한 원조라는 것이다. 특히나 김형욱과 김재규와 같은 측근들도 사실 관피아의 관료었다. 김종필도 관료었고, 이후락도 마찬가지이다. 지역감정보단 관피아의 구축이 더 문제일뿐 지연이라는 문제를 일으키긴 했으나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본격적인 지역감정의 출발은 3김 시대였다.

독재정권의 특징이 행정적으로 중앙집권제라서 지역감정이 일어나진 않고 오히려 그걸 배제하여 중앙정부의 강화로 군인, 경찰, 검찰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을 비롯해 정부의 관료들의 힘이 막강해지는게 문제가 되는게 독재 정권이다. 공무원 채용도 지금과 달리 경쟁률이 높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 당시의 경쟁률이 지금도 이루어지면 너도 나도 공무원행이다. 왜냐하면 공무원의 파이를 키워서 정부를 더욱 과대화를 해야 독재정권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뭐 결국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명 덕택에 지연이라는 뿌리가 더욱 깊어지고, 그들이 만든 지방선거는 그걸 더욱 노골화시켰다. 그 마지막 바통을 받은것이 바로 김대중 정권이었다. 그래서 다음 정권에선 난닝구라는 비하가 쏟아져나왔다. 홍어드립 이전에 난닝구드립이 호남을 비하하는 발언이었는데, 이것을 지어낸 쪽은 바로 친노였다.

친노의 입장에선 3김 시대는 곧 개혁의 대상이었던 것이고, 그 마지막 표적이 바로 김대중이었던 것이다.

한가지 3김 시대의 장점은 김대중을 비롯한 3김들의 힘으로 지방선거를 민선으로 도입하여 공무원들의 관피아를 뿌리뽑았던 것이다. 시군구 출신들 중에서 시험을 쳐서 들어온 고위직 공무원들이 시군구의 우두머리가 되는걸 차단했다. 이러한 지역주의적 기반으로 공무원들의 끼리끼리를 깬 것은 훌륭하나 문제는 시군구 우두머리들을 공무원들이 아닌 죄다 정당에 입맞에 맞는 정치인들과 정치적 야망이 있는 인간들을 지방으로 마구 꽂아넣어서 당리당략에 의거한 탁상행정으로 공무원들이 그들의 뻘짓에 똥을 치워야 했고 공무원들도 당리당략에 따라 점점 더 정무직화가 되어갔다.

도청정국[편집]

소위 국정원 미림팀 사건으로 도청의 범위가 생각만큼 너무나 광범위했다. 당장에 지만원을 비롯해 박지원, 노무현과 의약분업으로 대규모 시위를 일으킨 의사들과 노조들과 숨겨진 딸 등등등을 수도 없이 도청을 했다. 당장 알려진 것만 유명 인사 3천명과 그들의 가족이었는데, 자식이 2명이라는 가정하에 곱해도 만 2천명이 도청대상이었다.

황장엽까지도 도청의 대상이 되어서, 흡사 유신정권과 5공 시절의 도청을 보는듯했다.

이 사건은 한나라당 정형근의 폭로와 당시에 의협 간부로 주 타켓이 되었던 신상진 의원과 노무현조차 도청을 당한걸 알자 노무현 대통령의 분노로 이 거대 사건들이 까발려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이수일 전 차장이 자살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고무통도 이명박과 박근혜를 비롯한 수백명을 도청, 사찰해왔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건.

비노의 입장에선 국론 분열을 일으켜 법외노조로 규정된 각종 노조들과 기타 범민련이라던가 이러한 이적단체들에 대한 도청을 드러낼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나왔고, 실은 DJ도 피해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이런 도청 정국을 만들어놓고, 인권이네 민주주의를 외치는게 웃기긴 웃긴다. DJ가 피해자던 자시건간에 당시에 이걸 컨트롤을 못했다고 울부짖어봐야 저런 것에 민주주의나 인권을 외친다는게 웃긴다. 결국 참여정부가 까발렸는데, 자칭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쳐대는 노무현 정부를 짓밟아야 될 판국이다.

박정희 기념 도서관 건립 (역사의 화해 작업)[편집]

박정희 기념 도서관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데, 이를 건축하기로 생각한 사람이 다름아닌 김대중이다. 역사의 화해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웠었고, 이에 208억[5]이라는 거대한 예산을 책정했던 것이다. 실제로 1999년 5월, 김대중은 기념관 건립추진위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전략)...나는 정치적으로 박 대통령을 반대했지만 사람 박정희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도 인간이기에 과거의 政敵(정적)을 증오까지 했으나 그것을 넘어 추모하고 기리는 사업을 협의하는 자리에 오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찬반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나는 민주주의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 대통령은 경제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와서 보니 두 가지를 병행해야 했다... (중략)... 公人의 삶은 전부 다 박수받거나 전부 다 비판받을 순 없다. 박 대통령은 6ㆍ25 이후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 서구국가처럼 된다. 큰 공장을 짓고 우리 물건을 만들어 세계에 팔 수 있다. 고속도로도 놓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중략)...그간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가슴 아픈 일만 있었는데 박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에서 재평가받아야 한다...(중략)..미국인은 대들보같은 지도자로 워싱톤, 제퍼슨, 링컨, 케네디를 꼽고 있다. 우리는 미국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위대한 지도자로 세종대왕, 이순신 정도만 말하고 있다.이제 박 대통령은 역사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라고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선거 때 (영남지방) 표를 얻기 위해 그러는구나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6] 박정희기념관 건립은 진심.


박근혜는 이걸 잊지않고 한나라당 대표를 맡던 시절인 2004년에 김대중의 동교동 사저를 찾아가 "아버지 시대에 있었던 고초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김대중은 "그 말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겠다. 동서화합의 사명을 갖고 잘해달라."고 말했고, 자서전에는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았다”고 적었다.

박근혜도 역사화해 작업을 시도했었다. 이에 대해서는 박근혜 문서로.

오늘날 서로 죽이지못해 안달난 양 측 지지자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닐까.

반박[편집]

애시당초 DJP연대의 정당화를 위해서 저러한 발언을 했고, 저런 발언에 일일이 우리가 화해니 뭐니 좋게 볼 필요가 없다. 더구나 더 웃긴 것은 박정희를 비난하는 여당 세력도 있을 것이고 야당 세력도 있다. 특히나

"우리는 미국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위대한 지도자로 세종대왕, 이순신 정도만 말하고 있다.이제 박 대통령은 역사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라고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

이런 발언은 대사급 외교를 맺고 있는 미국에 대한 아주 무지한 발언으로 우리가 미국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진다고 그 나라의 역사까지 조롱하는 것은 그 나라 문화에 대한 그야말로 몰상식한 발언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짧아도 선진국 중 유일하게 군주를 없앤 나라가 미국이고, 더구나 위그노 전쟁과 청교도혁명으로 인하여 그 사람들이 쫓겨나다시피 고생해서 세운 나라가 미국이다. 물론 인디언 학살이라는 희대의 역사적 우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그들이 사과하고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세종대왕과 이순신 앞에 박 대통령을 붙이는 것은 역사관조차도 의심되는 발언 중에 하나이다. 참고로 세종대왕 시절과 이순신 장군 시절은 세계 전역이 봉건주의 사회였다. 반대로 박정희 정권은 세계 전역이 봉건주의 국가가 아니였다. "그가 독재를 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으나 알고보면 부단히 생각하던 군인이고, 세계는 몰라도 대한민국 당시 상황이 낳은 불가피한 인물이고 박정희 대통령보다 실은 야당이 너무 무능했다."라는 이런 식의 평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애초부터 저러한 발언에 일일이 화해니 뭐니 붙일 필요도 없다. 이런 식으로 치면 여당 일각에선 DJP연대와 야당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의 한광옥 비서실장 임명안을 동시에 비난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DJP연대와 한광옥 비서실장 임명의 공통점만 봐도 저런 식의 이야기들은 전형적인 정치적 행태이자 정치적 담합이 담겨있다. 이른바 짜고치는 고스톱에 말려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제2연평해전 관련 문제[편집]

김머중이는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호 정장 윤영하 대위 등 6명의 우리 국군 해군 장병들이 북괴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고 참수리호 부정장 이희완 중위[7]는 한쪽 다리를 잃으면서까지 지휘를 끝까지 책임져서 결국 나라를 지켜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머중은 이 당시 현직 대통령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영하 등 이 전투 전사자들의 묘소를 참배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2002 FIFA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러 요코하마로 날아갔다. 근데 참 궁금하다. 김머중은 브라질과 나치 중에서 누굴 응원했을까?

반박[편집]

하지만 김대중은 그 당시 월드컵 개최국의 국가수반 자격으로 일본에 간 것이라 불참할 수가 없었고 국가이미지 문제 때문에 서해교전을 언급하기 힘들었다.

반박의 반박[편집]

라고 말하기엔 김머중의 그 이후 행보로 인해 개소리다. 그러면 왜 살아생전 단 한번도 참배하지 않았을까? 전두환, 박근혜는 매년 참배하고 있었고 전현직 대통령들 중에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에 참석한 유일한 전현직 대통령이 전두환이었다.

물귀신[편집]

그 중력 대통령 노무현은 6월 6일 현충일날 제2 연평해전 전사자가 뭍여있는 곳에 가지 않고 일왕한테 찾아갔다. 김머중을 욕하지만 중력 대통령 역시 한심하긴 매한가지다. 김머중을 욕하기란 현충일날 제2연평해전 전사자를 찾을 생각 안하고 일왕한테 쳐간 뇌물현도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모자를 판국이다.

그리고 김머중보다는 당시 박지원 비서실장이 더 문제였다.

라지만 노무현이 잘못을 했건 잘했건 뭔 상관인가 김머중 애기하는데 괜히 노짱얘기 꺼내서 초를 치는건 이상한 논리이다. 결국 김머중 잘못을 인정하는거 그이상은 될 수가 없는 개소리인데..

뭐 결국 둘다 쌍쌍바. 근데 머중이의 저런 잘못은 인정하는데 뇌물현이가 첫해부터 현충일날 일본으로 쳐건너간건 뭐 초를 친다고 하시네.... 현충일이 어떤 날인지는 알고나 씨부려대냐?

뭔가 잘못 이해하신가본데 대체 김대중깔때마다 흥 그래도 노무현이 더븅신이라능 ㅉㅉ 하고 김대중이 잘못한거 다시 한번얘기하면 아무상관없는 노무현썰풀면서 흥 그래도 노무현이 더 븅신이라능 ㅉㅉ 라는건데 이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박혀있는 새끼가 할말임? 대체 김대중까는데 뜬금없이 노무현개새끼가 왜나옴 누가 뇌물현이 잘못을 인정안하고 노짱은 잘못한적도 없고 최고라고 했노? 그런말한마디도 안했는데 괜히 지혼자 찔려서 노짱 잘못인정안한다고 빽뺵뺵뺵지랄이고?

장택상과의 관계 논란[편집]

사실 김대중이라는 자를 김구나 이런 위인으로 추켜세우는데, 애시당초 김대중이라는 자는 장택상이라는 자 밑에서 꼬봉짓했던 인간이었다. 참고로 김구 선생과 그 측근들 장택상 선생과 그 측근들과는 대단히 앙숙이었다. 실제로 박일원이라는 자는 김구 선생과 이승만 선생을 이간질시킨 장본인이다. 정작 엉뚱하게 남로당 애들이 암살했지만,... 장택상은 김대중의 은인이라고 말했던 것은 장택상의 딸인 장병혜가 실토한 것이다. 반면 이철승 선생은 장택상과 사이에 매우 금이 가고 조병옥 박사와 친하게 지냈으나 결국 이철승 역시 조봉암 박사와 결별을 선언했다. 한때 제 2공화국 시절 장택상과 그 측근들도 4.19혁명에 타도 대상이라고 야당 일각에선 강력하게 반대하고 받아들이길 거부했으나 조봉암 사면에 기여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결국 장면이라는 무능한 자는 장택상과 그 측근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쪽지밀약 사건 논란[편집]

당시 야당의 원로들은 이미 몸 상태가 매우 안좋았고 야당을 운영할 기력을 매우 상실해 결국 세대교체를 위해 YS,DJ,이철승 3명을 밀기 위해 40대 기수론을 밀기로 했는데 먼저 유진산 선생이 YS를 밀었는데 유진산 선생의 경우는 영남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 YS를 밀었는데, 이철승 선생은 맹렬히 반대했다. 그러다 이철승 선생은 아니다 그냥 내가 나가서 호남의 표를 얻어어고 영남 출신인 박정희와 싸우겠다고 하자 결국 이철승 선생의 대선 후보 진출은 좌절되었다. 결국 그 표는 무효표가 되었고 그틈을 탄 김머중은 자길 대선 후보로 올리고 이철승씨는 당수를 주겠다는 말에 이철승 선생은 당수에 만족하기로 결정하고, 김머중을 대선 후보 올리게 되는데, 이후 약속했던 당수 자리는 커녕 국물도 없었고, 김대중이 대선에서 패하자 이철승 선생은 그를 태세전환이 능한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하며, 이후 김대중과 이철승은 앙숙이 되었고 오히려 이후 김대중은 YS를 밀기 시작했다. 신민당 당사 습격 사건과 중도통합론으로 이철승을 사쿠라라고 매도했지만 참고로 이철승 선생은 야당에게 숱한 해악을 끼치고 여당에겐 병신이라고 욕먹던 김형욱 해임에 기여한 사람이고, 자신이 당수를 이끌며 이후 총선에서 사실상의 승리를 거둔 인물 중 하나이자 박정희 대통령 암살로 이어지게했던 인물이다. 신민당 당사 습격 사건은 애초부터 쪽지 밀약 사건을 일으킨 원흉을 김대중과 김영삼 두 자가 신나게 분탕질 쳤는데, 사죄한번 없었고, 먼저 쪽지밀약 사건 논란을 일으킨 군상들이 YS나 DJ였다. 사실 그 쪽지밀약 사건은 헌정사 경선에서 길이 빛날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경선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이후 대통령 경선 잡음과 공천의 잡음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만든 역대 경선 중 가장 최악의 대통령 경선 사건이었다. 이것에 가장 큰 책임자는 YS나 DJ였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경선 싸움은 이것과 비교하면 쨉도 안되는 사건이다.

신한민주당 탈당 논란[편집]

당초에 야당은 대통령제가 독재와 연결된다는 것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YS나 DJ가 뻔히 알고 있음에도 대통령제를 즉각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애시당초에 대통령 5년제 단임제 자체가 OECD 선진국 헌정에서도 유례가 없는 제도였다. 반대로 영국, 독일, 스페인등 유럽 국가들은 의원내각제를 했고, 특히 애틀리, 처칠를 비롯해 대처,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콜과 같은 수상을 발굴했다. 더구나 지금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지금 국회와 달리 당시 국회의원들은 지금과 달리 정치금지법 규제등등으로 인하여 국회의원들이 매우 힘들었고, 박종철 치사고문때는 야당 내부에 누군가가 여당에 사전에 정보를 흘렸다는 의혹으로 꼼짝을 못했다. 더구나 제2공화국때 쿠데타를 우려하는데 박정희 대통령 이후에도 대통령은 최규하였고, 당시에도 대통령제였음에도 12.12가 일어났다.

더구나 87년도 당시 재향군인회에 우두머리인 최경록은 쿠데타에 반대했던 참군인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쿠데타의 확률이 사실상 매우 낮았고, 예비역의 우두머리가 들어줄리도 만무했다. 그리고 쿠데타를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쿠데타를 하는 인간들이 잘못된 것이지 내각제에 삿대질을 하는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한마디로 이것도 쿠데타 한 군인들이 아니라 내각제가 무능했다는 개논리 중에 하나였다. 오래전부터 전두환과 노태우를 둘러싼 하나회 멤버들의 갈등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오히려 대통령으로 12.12 쿠데타에 가담자인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1당 독재는 애초부터 88총선때 야당이 승리를 거뒀고 박정희 암살전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의원내각제를 하게되면 노태우가 당 수상에 오를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이것은 이후 88총선에서 여소야대로 나타났다. 단 문제가 뭐냐면 당시에 국론이 장난아니게 분열된 87년 상황이었고, 여당내 계파 갈등과 야당내 계파 갈등이 생각보다 심해 의회의 해산이 염려되던 상황이었다. 결국 선거는 또 다시 치루어야하는 둥 엄청난 예산의 낭비가 되었다. 더구나 국론의 분열로 북한의 도발이 염려되기도 했다. 결국 의원내각제가 시대를 앞서나갔다고 하면 김땡삼과 김머중이가 과거에 이민우 이철승 두 사람에게 "우리가 쥐려고 하는 대권 그리고 의원내각제와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야당이 직접 자체적으로 국민투표로 붙이도록 하겠다"라고 했어야 했다. 이러면 되는 것이다. 결국 이걸 입법안으로 내고 부결이 되면 대통령제로 나가면 되는 것이지 김대중이나 따라서 졸렬하게 당을 쳐나간 김영삼이 할짓거리가 아니다. 정작 김영삼이 자민련이 당에서 이탈하자 강력 반대했고, 노무현이 열린우리당을 대규모로 탈당하자 김대중은 데꿀멍했다.

사실 김머중, 김땡삼 두 인간은 이런 여러가지들의 생각이나 그것에 대한 지식도 없이 그저 저 대통령해처먹으려고 했던 인간이라서 홧김에 서방질하고 아몰랑식으로 대규모로 탈당을 감행한 인간이다. 이 일로 인해 야당은 세계사에 유례업는 이합집산 집단이 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야당의 악명을 남긴 선례가 되었다. 이후 3당합당이나 DJP연대로 여야의 선명성을 매우 엉망으로 만들었고 이는 현재 여야 모두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쳤다. 그리고 의원내각제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게 김대중이라는 자는 의원내각제하겠다고 김종필을 속인 장본인이다.

추가[편집]

군인 몇명죽는 걸로 소란피우지 말라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군인 몇명죽은걸로 소란피우지 말라는 말은 머중이가 한 적이 없다. 이미 조작된 발언으로 밝혀졌다. 오프라인이나 일베를 제외한 타 커뮤니티에서 이런 개소리를 퍼뜨리고 다니면 좆무식하다고 욕을 쳐먹거나 운이 없으면 형사처벌을 당할 것이다.

모두까기인형 진신류들의 반박 (보다가 어이없어서 같은 우파들끼리 우파좌파나누는거보고 한심한 진신류 성님이 일침 놓고 간다 좆급식 새끼들아)[편집]

그냥 김머중은 신자유주의 우익새끼인데 ㅋㅋㅋㅋ 옹호하는 새끼글도 노답이고 좌파라면서 좆도모르고 까는새끼들도 노답 ㅋㅋㅋㅋ


그냥 노동자 학살한 새끼다.


민주화? 신자유주의 자체가 비민주적인 이념인데 어찌 김머중이 민주화운동가라 할수 있느냐


당장 대중경제론만 봐도 군사정부가 너무 공산주의식으로 간섭많이했으나 간섭최대한배제하고 세금줄이고 노사관계원만하게 하고, 필요없는건 민영화시키자고 한 새끼가 좌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옹호하는 새끼들도 개노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머중 대북정책 좆나 노답인건맞는데 이건 좌우파랑 무관하다, 그런논리면 북괴좆혐오하는 진신류는 새누리보다 우파냐?


그냥 씨발 헬조센은 답이 없다. 진신류같은 레알좌파가 집권하지않는이상 ㄹㅇ (지금은 노동당으로 당명변경했고)


그게 아니라면 짐싸들고 이민가자 씨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틀에는 재밌다고 써있는데 ㅋ자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노잼이다.

입만열면 거짓말이[편집]

목포 해상방위대[편집]

하지만 공식적으론 별다른 기록이 없다
해상방위대 목포해군경비보위 직속으로

해상방위대 전남지구 부대장 계급 대한민국 해군 소령 어 이렇게 해가지고 제가 어 저희 선박이나 뭐 이런것을 동원해서 공비 토벌한 어 일선에서 제가 어 싸웠습니다.

학력 위조 논란[편집]

한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종학력이 만주에 있는 건국대학 졸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의 중국땅인 만주는 한때 일본인들이 와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일본인 거주자들도 많았다. 그래서 건국대학을 설립하고 일본인 거주자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일본인만 입학하는 대학이 아니고 만주에 거주하는 중국인 자녀들 중에서 우수한 학생도 입학했고 한국인들 중에서도 엘리트라고 할만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대학이었다. 한국인으로서 만주 건국대학을 졸업한 인사는 적지 않지만 전 국무총리 강영훈 예비역 중장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1961년 5.16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었던 강 장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육사생도들을 군사혁명 지지대열에 참여시키라”는 권유를 반대했기 때문에 ‘강직한 군인’으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다.

그 뒤 영국주재 한국대사,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인들과의 접촉도 많아지게 됐다. 그러던 중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앉아 환담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출신대학 얘기가 나왔는데 김 전 대통령이 “만주 건국대학을 나왔다”고 했더니 강 전 총리가 반색을 하면서 “그래요, 그러시다면 저하고 대학 동창생이 되시네요. 몇 년도에 입학하셨지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김 전 대통령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이 한때 국회출입기자들 사이에 넓게 퍼졌던 소문이었다. 1995년도 ‘동아연감’(동아일보사 출판)에 의하면 김 전 대통령은 목포상업고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 경제과를 나온 것으로 돼있다. 대학을 거치지 않고 ‘대학원 수료’라는 학력이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김 전 대통령도 포함되는 것 같다.

정치 안해요우[편집]

정치안해요 제가 안해요

이건 내문제니까 내가 안하는거요 누가 나를 강제로 시키는거요

김대중은 후에 북한을 방문할 미국의 특사로서 독재자 킬러로 유명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추천하면서 정계에 복귀한다. 마침 김일성은 북한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김영삼을 만나야만 한다면서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는데, 나이 먹을 대로 먹어서 쇠약해져있던 김일성은 카터의 저주에 걸려서 결국 회담 성사 직전에 죽어버렸다. 김영삼은 후에 '김대중, 노무현은 북한에 뭐 갖다바쳐서 정상회담 했는데 난 그쪽에서 제발로 찾아왔다'라며 김대중, 노무현을 에둘러 디스했다.

슨위치 히터[편집]

어느 쪽으로 지팡이를 쓰는건지는 김대중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 카더라. 노벨상 수상할 적에는 지팡이를 안 쓰고 서 있었다고 하니 더 모르겠다카더라. 지금 지팡이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 전시되있다. 김머중이 이것까지 사기쳤는지의 여부는 이 지팡이뿐만이 알겠지 아마?. [8]

아니 이양반아 애비가누구야[편집]

숨쉬는것 빼곤 모든게 거짓인 머중이답게 출생마저도 거짓투성이다. 이상하게 아빠가 여러명이다. 누가 친부인지는 머중이도 모른다. 맘마미아? 친부 후보는 다음과 같다.

  • 제갈성조
  • 제갈성복
  • 윤창언
  • 김운식

지옥에서 친부가 누구인지 서로 대질심문중이다 카더라

고향세탁[편집]

역시 우덜국 출신 아니랄까봐 고향세탁을 그것도 김정일 앞에서 했다. 김대중이 김정일보고 서울로 내려오라고 했는데 김정일이 안 간다고 하니까 김대중이 김정일 앞에서 떼를 썼다. 여기에 학을 뗀 김정일이 김대중보고 전라도 출신이라 집요하다고 하니까 이 미친놈이

나는 김해 김씨니까 경상도 사람이요

이 지랄을 쳐 했다 하더라

부정적 평가[편집]

는 개뿔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98년 클린턴 정부의 CIA에서는 "북한이 점점 악화되는 상황을 5년 이상 버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김정일 정권 앞에 놓은 여러 문제들을 고려하면 북한 스스로 조만간 겪게 될 급격한 붕괴는 대처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9].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북한은 핵과 더불어 김일성 장군님 모래로 쌀 만들던 시절 버금가는 시기를 누릴수 있게 되었다.

북괴에 불법송금하여 한반도를 핵긴장 상태로 만든 원흉이다.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가축과 건축자재를 비롯한 여러가지 자원을 퍼주었다. 한반도 비핵화를 대내외적으로 외치며 돈이라는 돈을 다 긁어모아주고 쌀을 많이 북한에 퍼준 덕택에 북한은 핵을 실험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공헌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 물리학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의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을 무력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이전까지 있던 북한 내부 연락책들을 모두 북한에 꼬질렀으며 [10]수백명의 베테랑 직원을 자르고 특정 지역 사람으로 채워넣었다. [11] 또한 지금의 여성가족부, 정부에서 가장 쓰잘데기 없고 돈만 쳐먹는 여성부를 처음 만들었다.

그가 신설한 정보통신부가 IT산업을 급성장시키는데 한몫 했다하지만 실상은 통신계열만 발전하고 알맹이인 소프트웨어는 개차반 신세가 된 데다, 당시 유일한 소프트웨어 관련 국책연구소였던 시스템공학연구소가 전자통신연구소에 통폐합됐고, 대학의 컴퓨터학과들은 전자공학과로 통합됐다. 노무현도 ‘IT 강국에서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드립을 쳤으나 실상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정책이 흘러갔다. ICT 경쟁력이 19위로 운지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가?

박정희 대통령경부고속도로를 만들려고 했을때 당시 국회 건설위원회 소속이었던 김대중이 고속도로 건설이 지역 불균형을 가져온다며 적극 반대하였다. "고속도로를 만들어 봐야 달릴 차다 없다. 부유층을 위한 호화시설이 될 뿐"이라고 말하며, 차라리 그 자리에 쌀과 옥수수를 심는게 더 낫다며 대답했다. 심지어 몸소 경부고속도로 예정지에 드러눕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물론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가히 대한민국의 척추라 불릴 정도로 한국 교통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박[편집]

이 역시 사실이 아닌데.. 김대중은 퍼포먼스를 한 적이 없다. 당시 사진에 돌아다니는 건 조작으로, 김대중과 체형이 다르다. 그리고 야당이 반대한 건 고속도로 자체가 아니라 경상도만 발전하는 경부고속도로였다.

고속도로는 원래 이승만이 계획하고, 시행했던 것으로, 미국에서도 남한의 고속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가를 내렸으며, 경상도만 발전하는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라 전국토가 모두 발전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계획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는 전국토에 고속도로를 세울만한 자본이없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당장에 보여줄 것이 필요했기에 경부선만 밀어붙였는데.. 경부고속도로만 밀어붙여서 사고가 속출하고, 불량으로 만들어서 복구비용만 10배나 들었다. 당시 야당의 뜻대로 관철됐더라면 전국토에 모두 고속도로를 깔았을 돈이었다.

더군다나 박정희 대통령 추종자들의 말과는 다르게 당시엔 차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급하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차량은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박정희 대통령에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장기프로젝트였고 무식한 머중이 똥꼬성애자가 쓴것처럼 고속도로가 필요하지 않은게 아니다

대체 뭔 헛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그럼 머중센세가 지역감정을 부추겼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경상도 발전이 아니라 인프라가 확보되고 차후 성장가능성이 높은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한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주효했고, 실제로 건설비용도 적게 들었다. 복구비용 운운하는데, 다른 고속도로도 어차피 기술딸려서 똑같다. 꼬우면 일본 건설회사에 외화주고 맡기든가.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줄알지 도무지 답이 안나온다.

그리고 복구비용이 10배가 들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며, 대체 어디가 복구대상인지 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국토교통부나 국회 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딴기록은 나오지도 않는다. 좌빨새끼들 선동은 정말 알아줘야 한당께?

제2 연평해전 당시 일왕과 월드컵 축구 결승전 관람을 중시, 연평해전에 대한 처리가 미흡했다는 평가가 있다. 니들 죽던 말던 그럴수밖에 없는게 머중이는 홍어들의 왕이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아니다

또한 한일공동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암초로 인정하면서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고 하지만 이는 수구들의 거짓말로 어업협정의 빌미는 김영삼이 시작한 것이고, 동해의 영해권을 모조리 뺏길뻔한걸 그나마 김대중이 지켜낸 것이다. 더군다나 어업협정 어디에도 영해,영토에 관련된 사항은 없으며, 일본이 독도,동해를 자국영토로 주장할 때 어업협정을 근거로 든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특히나 가장 중요한 건 일본이 독도,동해를 자국 영토로 망언하며 세계에 알리게 된 시기는 김대중 때가 아니라 박정희 때란 점이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은 직접 총리 앞에서 다케시마라는 발언을 하고, 노무현은 총리 앞에서 평화의 바다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을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여는 물론이고 야까지도 비난했다. 김대중조차도 하지 않았던 헛소리들이었다. 지도자의 말이라는건 엄청난 파급력을 끼치고, 외교적인 관계에 있어서 지도자의 말은 더욱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하는데, 저러한 발언들을 쏟아부으면서 결국 독도가 외국에선 암초로 지명이 되어버렸다.

집필한 문서로는 앙망문이 유명하며, 온갖 민주화 운동을 했다. 정권에 반대하는 일을 도맡아 해 대통령들이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홍어를 매우 좋아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야갤에서 재평가 되고 있다고 한다.

김영삼은 슨상님에 대해 숨쉬는거 빼고 다 거짓말이라고 했다 카더라. 이젠 숨도 안쉬지.....

일베에서도 노무현은 차라리 귀여워하기라도 하지, 김대중은 아예 인간 취급조차 안해준다. 노무현은 해놓은 정책이 뭣해서 그렇지, 개인적으로 봤을때는 사람이 음험한 모습은 별로 보이지는 않았고 소탈한 면도 있고 괜찮았다고 보기도 하는데, 김대중은 아예 그런 평가조차 없다. 그냥 프로 거짓말쟁이 통수꾼으로만 볼 뿐. 그리고 엔젤두환형님은 머중이를 살려준것만으로 영구까임권을 얻었다. 전형적인 과가 공을 덮는사례

는 노무현은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면서 현대유니콘스를 작살냈으며, 통수를 깠으며, 당시 그 특검을 반대했던 사람 중에는 노사모들 때문에 현 정부의 측근이 되었음. 그 노사모를 만든게 노무현이며, 현 노무현의 측근들이 굉장히 멍청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은 그러한 노사모를 만들기 시작하며 소위 "노빠"라는 정치적 빠돌이 정치적 빠순이를 만든 자이다. 적어도 김대중은 팬클럽을 만들지 않았으며, 그리고 음험한 모습은 노무현도 만만치 않았다.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면서 북한과 연루되었다는 문제로 현대그룹을 들쑤시고, 본인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 북한 방문을 하는 웃긴 짓을 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대연정도 하며, 또한 분당한 정당을 지지한 이력도 있었다. 특히나 그가 말한 노빠들이 문제인데 그런 대북송금특검같은 수용같은 문제를 수습도 못한게 노무현이며 그 측근들이었다.. 그러면서 종북몰이니 색깔론을 펼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는 뻔뻔스러운 위선자들이다. 여는 물론 야까지도 그 소위 "노빠"들을 현재도 당권을 잡고 야당이 장악해서 역사상 최악의 야권을 만들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은 윤태영 전 대변인이 말하길 향후 대선 후보로 한명숙을 밀었다고 한다. 즉 친구라고 말했던 문재인과 정동영은 안중에도 없던 것이다. 통수를 당한건지 통수를 한건지.

일베에서도 김대중은 거짓말쟁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치 9단 10단 11단의 모습을 보여주며, 진보는 물론 김종필같은 보수 우익들까지 낚으면서 프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한다. 오히려 노무현은 현 야당의 감성팔이를 주입시킨자이며 그 감성팔이를 통해서 온갖 음험한 짓거리를 한것 또한 노무현이다. 참고로 김대중 시절 의원을 했던 자들과 측근들 몇몇이 훗날 박근혜를 지지하게 되었다. 참고로 박근혜는 노근혜라는 명칭을 쓰지만 오히려 동교동계랑 더 가깝다. 근혜슨상니뮤ㅜㅜ 김경재가 청와대 홍보특보가 되고 한화갑, 한광옥도 보수와 가깝게 지낸다. 뿐만 아니라 DJ도 박근혜를 밀기도 했다. TK DJ라는 말을 한화갑이 꺼내기도 했다.

근데 이 사실은 박지원의 그짓말일 확률도 있다. 엔젤두환 형님은 머중슨상의 정치적 감각에 속아넘어갔다. 프로 거짓말쟁이 통수질은 실은 노무현도 만만치 않았다. 원래부터 정치는 국민을 속이는 게임이다 김대중이 김종필과 연대해 구워삶았으면 노무현은 정몽준과 연대해 구워삶았다. 그래서 나중에 통수치고 그 통수꾼인 김대중도 대북송금특검 수용으로 통수쳤다. 김대중은 그나마 보수우익들 말이라도 들어주고 이성은 있는데 노무현은 그냥 자기 꼴리는대로 좌클릭하고 우클릭한 중력차가 난 인간이였다. 물론 음흉함 까지 갖춘건 기본이다. 그리고 자살까지 해서 당시 국민들 정신건강에 크나큰 타격을 입히고 부엉이 바위가 자살 명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친노라는 정치적 지지자들의 이성을 더 마비시켰다. 제 명에 살다 죽은 슨상은 지지자들의 정신건강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않았다.

대중센세는 프로통수꾼이지만 그 프로통수꾼을 통수친건 대북송금특검과 분당으로 통수친 노무현이다.

노빠들은 동교동계를 폄하하는 짓도 서슴치않는데, 도로 김대중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3당합당 이전에 김영삼 밑에 일한게 노무현이고 그로 인해 3당 합당전 김영삼을 재평가하고 있는것이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빠들이다. 노빠들의 시발점은 3당 합당 이전에 ys 지지자들이 그 원류였던거다. 하지만 김종필과 연합으로 멘붕을 먹다가 그것에 지쳤는지 대북송금특검 수용을 한 덕택에 이걸 쉴드를 치면 칠수록 일게이들이나 할법한 발언들도 툭 튀어나온다. 김현철과 강삼재가 문재인을 지지해서 노빠들은 환호까지도 했다.

사실 김대중과 그 측근들은 과거 정부에 대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고, 3김의 한축이었고 김대중조차도 전두환 시절에 주요 인사인 박지원을 기용한 전력이 있고 DJP연합으로 과거 독재정부의 공도 인정한다.

참고로 위에 김대중에게 유리한 모든 반박들은 김대중 지지자들이 아니라 다름아닌 노무현 지지자들과 민노당이나 정의당같은 좌빨들이나 대부분 다 하는 것이다. 친일청산법을 시행한 것도 김대중 정권이 아닌 노무현 정권이고, 민주당 중진이자 김대중 시절 인사였던 조순형의 아버지를 친일파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서슴치 않았던 것도 바로 친노들이다.

참고로 위에 한일외교들보다 더 한심스러운건 이후 노무현 정부의 한일외교다. 프레시안조차도 노무현의 다케시마 발언을 문제삼았고, 일본 국민과의 대회에서 김구는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발언하면서 링컨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도 했고, 뿐만 아니라 아베 신죠 앞에선 평화의 바다라는 망언을 했다. 참고로 김대중조차도 총리 앞에서 다케시마 발언을 하지 않았고, 김구를 실패한 정치인이라서 링컨을 존경한다는 헛소리도 하지 않았고 평화의 바다라는 개소리도 하지 않았다.

박정희에 대한 독도나 동해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 것도 사실 김대중 지지자들보단 노무현 지지자들과 구 통진당 인간들이나 하는 소리다. 근데 노무현 지지자들도 웃긴 것은 일베충들이나 수꼴들의 눈치때문에 문재인이 박정희나 이승만 묘소에 참배를 했다고 한다. 일종에 불가피론이고, 뒤에선 정청래가 반발하는 웃긴 일까지 생겼다. 그 노무현조차도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별 연관성도 없고, 오죽하는 이재오가 이를 지적할 정도였다.

결국 친노 골수 강경파들이나 구 통진당 인간들이나 저런 비판들을 한다. 사실 위와 같은 왼쪽의견의 반론들의 원류는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노사모라던지 진화한 문재인 골수 지지자들 즉 문베충들이 더 즐겨하던 것이었고, 구 통진당 인간들이 즐겨하던 것들이었다.

진짜 김대중 지지자들의 경우는 박정희나 이승만에 대해서 별 큰 문제는 삼지 않는다. 종편에 나오는 김대중 시절 인사들 대다수는 그들을 역사의 한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나름 객관적인 평가도 한다. 노무현 즉 문베충들의 경우는 겉으로나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난하지 막상 문재인의 이승만과 박정희의 참배가 시작되니 새누리당과 정부가 그냥 여당이고 정부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그랬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결국 김대중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이후에 노무현의 행적들과 발언들과 정책들을 살펴보면 노무현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상황이다.

하나원 완공[편집]

하나원에 대한 공사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1997년 12월이지만 완공은 1999년에 이미 다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을 받아들이고 적응 교육에 대해서 시작한 것도 탈북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후생복리를 했던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정부였다. 노무현이 뭐 탈북자 복리를 아꼈다고 하지만 하나원 완공같은 큰 일을 한적이 없다. 새터민이라는 명칭을 쓰자 탈북자들이 상당히 반발을 했다.

과연 북한과 종북에게 호의적이기 까지 했는가?[편집]

최측근인 박지원의 의견에 따르면 문익환 목사가 북한에 방문을 하려고 하자 엄청나게 반발을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지원은 신은미조차도 좋아하지 않고 빌미를 준다는 발언을 그것도 종편에 나와서 했다. 물론 신빙성은 100% 없다곤 하지만 이미 인정할것은 인정한 셈이다.

남북공동성명을 좌빨들이 지지를 했다곤 하지만 그 민혁당 사건의 주동자 이석기도 수사를 했었다. 사실 대북 비자금 문제나 북한방문을 빼놓고는 거의 사실상 보수 우익들과 다를바없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더구나 김대중 정부 시절의 경우는 민노당과 같은 정당이 들어서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나 민노당과 같은 정당이 들어서고 종북 인사들이 여럿 사면이 된 노무현 시절과는 다르게 김대중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서 그런 것들에 알짤이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문익환 목사와의 상당한 갈등은 문익환을 비롯한 아들 문성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그대로 반증한 셈이다.

이왕 박지원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간들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다.

반박[편집]

사실 뭐 동교동계였다고 친박인 인간들 박지원같은 사람들이 대북불법 송금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저런 식의 발언을 한걸로 보인다. 진짜 웃긴게 하나원 완공하고, 이석기를 구속시키고 앞으론 햇볕정책 따윌 하면 북한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이른바 화전양면전술이라고 북한은 햇볕정책을 받아주는 척 하면서 의심을 한다던지 꿍꿍이를 보이며 뒤로는 도발을 때린다. 세계 최고의 거짓말쟁이들이지만 웃긴게 남을 의심하는 세계 최고의 의심병자 집단들이다. 남에겐 진실을 마구 요구하며 자신들의 진실은 다가리는 것이 아주 특화된 집단인데, 남을 믿지도 않고 진실도 말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쩌는 이런 집단들에 대해서는 화해를 하며 뒤로 간첩잡고 이렇게 양극단을 오고가는 외교를 하지말고 그냥 차라리 잡으라는 간첩이나 잡고 대통령조차도 북한방문을 하고 이딴걸 하질 말아야 한다.

그 이외[편집]

김대중 본인은 몰라도 김대중의 DJP연합과 박정희에 대한 화해를 선언하고 과거 독재정권도 인정할 것은 인정한 나머지 김대중 시절 측근들 중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후에 사실상 우클릭을 했다. 보수 종편에서 늘 항상 출연하는 패널들만봐도 김대중의 인사들이 상당부분 많은데, 민영삼이나 장성민이나 황장수나 이영작이나 한화갑이나 조순형이나 기타 많은 김대중의 인사들이 보수 종편에 패널로 나와 김대중에 대한 비판은 다 빼버리고 통진당 해산에 적극 지지를 보내고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반감도 상당부분 올라가고 탈북자들과 교류를 의외로 가장 적극적으로 한다. 그리고 전 경향신문 출신인 고영신 박사 역시 김대중 지지자임에도 노무현에게 그다지 호의적인 사람도 아니고 문재인을 누구보다 비난한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시절 측근인 김경재는 향후 박근혜의 측근이 되어, 새민련에게는 기회주의자로 낙인이 찍히고, 일부 보수들조차도 그의 사상을 의심한다.

그를 부르는 명칭[편집]

[편집]

  • 핵펭귄
  • 슨상님
  • 쩔뚜기
  • 전라민국의 수령
  • 홍어
  • 윤대중
  • 제갈대중
  • 장대중
  • 도요다 슨상님
  • 도요다 다이쥬센세
  • 김정일 따까리
  • 수령님의 남자
  • 수령님 그거하자 낑낑
  • 수령님 후빨러
  • 머중이
  • 김 고머중
  • 슨위치 히터
  • 슨틀러
  • 슨~~ 칙칙폭동 칙칙폭동
  • 핵슨상
  • 홍어왕
  • 신성전라제국 황제
  • 핵찌릉내
  • DJ대중
  • 해군 소죄
  • 민족의 등드름 아시아의 히틀러 김대중 생선님

진신류[편집]

  • 수꼴 새끼 - 노빠들이나 진신류들은 이렇게 부른다 카더라.
  • 신자유주의의 악마 - 진신류들 한정, 참고로 비판자들에 의한 마거릿 대처 별명도 이것과 동일하다, 참고로 진신류들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신자유주의의 악마라고 부른다 솔직히 틀린말은 아니다

[편집]

  • 선생님 슨상님
  • 인동초
  • 민주화의 상징
  • 민족의 등불이시자 민주주의의 인동초이신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민족의 영도자, 대한민국의 국부, 한민족의 아버지, 민주주의의 수호자,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평화의 상징,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한줄기 빛, 없어서는 안될 소금, 자애의 젖줄기 같은 분,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신 분, 대한민국 현대사의 유일한 성인,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 민족의 등불이신 위대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각하 선생님
  • 갓대중

[편집]

  • 김대충

야갤러[편집]

  • 김머중 전 머통령

김대중빠[편집]

  • 빌 클린턴 - 전 미국 대통령. 생전에 이 둘은 죽마고우와 같은 사이였다.
  • 아키히토 - 일본 천황. 빌 클린턴과 더불어 이 둘 역시 죽마고우와 같은 사이였다. 나중에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김대중은 요코하마까지 가서 아키히토와 서로 같은 자리에 앉아 브라질 vs 독일 결승전을 관람했다.
  • 김정일 - 전 북한 주석
  • 장성민
  • 민영삼
  • 고영신
  • 한화갑
  • 한광옥
  • 김경재
  • 박지원
  • 박주선
  • 김영환
  • 문희상
  • 강준만
  • 박준영

김대중까[편집]

  • 박정희 - 전 대통령. 박정희는 김대중을 정말로 증오했다. 틈만 나면 김대중을 죽이려 들었으니!
  • 전두환 - 전 대통령
  • 노태우 - 전 대통령
  • 김영삼 - 전 대통령. 처음에는 사이가 굉장히 좋았지만, 김영삼이 전두환&노태우와 협력하면서 씨발 그 뭐다냐 3당 합당인가 뭐시긴가 하면서부터 김영삼이 김대중&노무현에게 통수치면서부터 사이가 나빠졌다. 숨쉬는 것 빼고 다 구라라고 말했다.
  • 김종필 - 전 총리
  • 이회창 - 정치인
  • 이철승 - 통수에 가담하다 통수당하고 80년대 말 정계은퇴뒤 대중이 시절 도청먹고 거하게 싸웠다.
  • 김홍신 -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버려야 한다."며 김대중을 극딜했다. 이후 노무현 지지를 천명했다. 나중에 태세전환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 재수없게 유시민과 엮여버리는 바람에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
  • 계훈제 - 야당 대선후보로 김대중이 출마했을 때 지지를 부탁하는 최기일의 거듭된 부탁을 모두 거절했다.
  • 김현철 - 김영삼의 아들로 김대중 혐오는 김영삼과 동일이다. 이후 문재인 지지를 천명했다.
  • 장기표 - 노무현의 진영중 선배로 4자 필승론을 맨 처음 깐 양반이다. 노무현을 더 혐오하지만 노무현을 혐오하기 전엔 DJ를 더 혐오했다.
  • 조갑제
  • 최기일 - 5.16 이후 김대중을 지지했다가 김대중의 미국에서의 행적을 보고 거리를 두던 중 98년 djp연합을 보고 그의 행적을 공개했다.
  • 강삼재 - 김영삼의 최측근으로 역시 김대중 혐오는 김영삼과 동일하다 이후 문재인 지지를 천명했다.
  • 유시민 - "김머중 대통령은 하야해야한다." "정신이 나간것 같다." 등등등의 발언으로 노무현의 충복으로 문재인보다 사실 더 유명한 노빠이자 노무현의 충복으로 김홍신은 약과로 가장 적극적으로 김대중 비난에 앞장섰다. 뒤에 이희호 여사에게 찾아가 사과는 했으나 이미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 김홍신을 자신의 행사에 초대해 축사를 보게해 김홍신의 정치적 생명력을 망가트린 장본인이다.
  • 손주항 - 원래 DJ의 동지였고 이철승에게 압도적인 승리로 DJ에게 전북 의석을 안겨줬지만 거하게 통수맞고 DJ의 지지를 완전 철회했고, 결국 DJ에 지지를 완전히 접게된다. 작년엔 유승민이 팽당한 것에 대해서 DJ에게 팽당한 것을 비교했다. 본인이 이철승을 미워했으나 정작 이철승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호남인의 모임에서 이철승과 화해를 선언했다.
  • 진보신당원들 - 사실 구스위키에서는 편의상 좌파라고 하지만 김머중 노시계는 이념상 우파에 속한다. 당장 김대중의 대중경제론 저서만봐도 세금감면, 작은정부, 민영화 등 우파적인 관념으로 도배되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서양 기준에서 좌파는 진신류밖에 없다.

같이 보기[편집]


  1. DJ = 홍어 출처 뉴스기사
  2. 한일 정상기자회견, 청와대 공보실, 2002년 3월 22일 작성, 2014년 2월 8일 확인.
  3. 日 대중문화 단계적 개방,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98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2월 8일 확인.
  4. 하지만 자신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1인당 국민 평균에도 못미치는 45g 정도만을 모았다. 그냥 서민들이 봉이지 이건 뭐
  5. 노시계는 이 208억 중에서 170억을 행자부예산으로 빼돌려 사업 백지화 지경까지 내몰았다. 김대중때의 대북사업 특검을 동의했다가 탄핵당하기까지 한 걸로 봐서, 노무현은 김대중의 후계자는 절대로 아니었다.
  6. 급조한 계획이 아닌게, 이미 저 말을 하기 7년전인 9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박정희의 묘소를 참배하며, '사후에라도 박 대통령과 화해하러 왔다'고 말했었다.
  7. 현재 제2 연평해전 참전용사 중에 유일한 생존자다. 박경수 중사는 이후 천안함으로 배치되었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8. 사실 공식 석상에서는 지팡이를 안쓸 때가 더 많다.
  9.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601/200601210090.html 미 CIA, 97년 북한 붕괴 시나리오 마련
  10.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22/2011122202945.html '휴민트' 어떻게 붕괴됐나?
  1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25/2011032502079.html "국정원은 13년간 뒷걸음질만 했다"